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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기도' 공화국의 나팔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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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기도' 공화국의 나팔수 이야기

[완군의 워드프로세서] 박재완

여명이 밝아오기 직전의 시간. 그러니까 저 멀리서 걸어오는 음영이 개 같기도 늑대 같기도 해 도저히 구분하기 어려운 흐릿한 혼돈의 시간. 그 시간은 '거짓'과 '음모'가 숙성되기에 딱 알맞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바야흐로 한국 사회는 피도 눈물도 없는 그 '개와 늑대의 시간'으로 접어든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적을 만들어내는 게임'으로서의 정치를 본격화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가보안법의 토씨 하나 못 고친 일이 아득하건만, "10년 좌파 정권의 좌편향 정책을 바로 잡겠다"는 날이 시퍼렇다.

뭐가 뭔지 도저히 구분이 어려운 이 시간을 뭐라 부르면 마땅할까 고민하는데 개그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반복되는 역사는 언제나 이렇게 희극이다. 그야말로 '같기도'의 시간이다. 그리고 지난주는 이제 "여기는 '같기도' 공화국입니다"를 선포하는 한 주 같았다.

민주 공화국의 특징이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것에 있다면, 아마도 '같기도' 공화국의 특징은 어떤 권력이 눈뜨고 코 베어 가는데 있겠다 싶다. 그렇다면, '같기도' 공화국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큰 움직임 보다는 아주 사소한 동작들을 우선 예민하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같기도' 공화국의 나팔수가 한 명 있는데…
▲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지난 달 29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연찬회에 참석해 새 정부의 국정철학, 비전과 국정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시스

여기 '같기도' 공화국의 나팔수로 활약하고 있는 한 명의 가라사대가 있다. 그에 따르면 경제는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공기업은 선진화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뭘 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같기도'만 하다.

그는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이다. 그 전에는 정무수석을 지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대통령으로부터 '일을 잘 한다'는 칭찬을 들을 만큼 신뢰받는 비서라고 한다. 그런 그가 연일 독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모양새로 볼 때, 작심한 태세이다. 앞뒤 좌우를 가리지 않는 그의 발언들을 보며 국정기획수석이 뭐하는 자리인가 찾아봤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보니 국정기획수석은 '국책과제, 미래비전, 방송통신'을 담당한다고 한다.

그래서 포털에 '국책과제'를 검색해봤다. 청와대 명의로는 특별한 게 걸리지 않는다. 설마 싶어 유사 단어인 '국정과제'를 검색했다. 인수위 시절 있었다는 192개 국책과제와 대통령 취임 때 발표되었던 193개 국정과제(43개 핵심과제, 68개 중점과제, 82개 일반과제) 같은 것이 나온다. 그런데 이후 별다른 추진은 없었던 모양이다. 최근 기사는 거의 없다. 도대체 그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다시, '미래비전'을 검색해봤다. 그 뜬금없음 때문에 말이 많았고 여지없이 부실했던 내용 때문에 여전히 탈도 많은 '저탄소 녹색성장'에 관한 얘기가 주를 이룬다. 역시 다른 특별한 건 없다. 그래도 그나마 '국책과제' 보단 낫지 싶다.

마지막으로 '방송통신'과 박재완을 검색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구현할 인물을 하루빨리 KBS 사장으로 앉혀야 이명박 정권이 산다"는 그의 발언이 걸리고, "다공영 1민영, 선진국과 동떨어진 것"이라는 그의 견해가 많이 인용 보도되었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을 무겁게 해석하는 기사들이 넘쳤다.

그의 말은 사무라이의 칼과 맞설만큼 종횡 무진한다

그렇게 해서, 별다른 '국책과제'와 '미래비전'이 없었던 한 주였지만 지난 주 내내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뉴스의 중심에 섰다. 그의 전천후적 발언과 개념을 달리하는 논리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 6개월을 평가하며, 이만하면 잘 한 거라고 뻐기더니, 더 잘하기 위해서는 공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단다. 그러더니 그 칼끝을 난데없이 KBS2와 MBC로 겨눠 다공영 1민영 체제의 방송을 (1공영 다민영 체제)로 전환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의 지난주는 가히 사무라이의 칼과 맞설 만한 종잡을 수 없음의 연속이었다.

작심한 태세로 종잡을 수 없이 행동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좀 더 검색을 해봤다. 박 수석은 기획재정부 장관(강만수), 금융위원장(전광우), 한국은행 총재(이성태), 청와대 경제수석(박병원) 등과 함께 "거시경제 운용지표를 논의하는 이른바 '서별관회의(거시경제정책협의회)'의 멤버"라고 한다. 그런 그의 입에서 노무현 정권과 비교할 때 경제 성적표가 나쁘지 않다는 말이 나왔으니 개인적인 의견은 아닐 듯싶다. 바쁜 시간들 쪼개서 모이는 걸 텐데 모여서 그렇게들 얘기 하나보다. '경제 어떻게 생각해? 우리 참 잘하고 있지 않아^^'

그렇다. 그래서 오히려 이 정권의 스타일로 봤을 때, 강한 주문이라고 봐야 한다. 증권가 찌라시에서부터 저잣거리까지 '9월 위기설'이 깔려있는 상황이다. 심심치 않게 외환 보유액이 화제에 오르고, 순 채무국 같은 어려운 용어들이 술집을 뒹군다.

언젠가 겪어 본 그런 상황이다. 맞다. IMF다. 실제로 환율, 유가 등 거시 지표의 위기적 징후와 삼겹살로 연명되던 회식의 횟수마저 잦아드는 미시 경기가 동시에 위축되는 폼이 딱 IMF 때와 비슷하다. 때론 그 어떤 슈퍼 컴퓨터보다 개구리의 울음이 재앙을 먼저 예고하는 법이다. 그리고 무릇, 정치란 그것을 먼저 살피는 행위여야 마땅하다.

그런데 이 예측 불허의 예민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다는 박재완 수석은 더 이상 '경제'를 들먹이지 말라는 철지난 호통 개그를 들고 무대로 올라왔다. 지난주를 종횡 무진했다.

그 결과는? 대번에 <조선일보>까지 박재완 수석을 질타하고 나섰을 정도이다. 그 발언의 현실 동떨어짐과 질 낮음은 굳이 통계 몇 개를 인용하지 않아도, 팍팍해진 주머니 사정을 일일이 환기하지 않아도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총체성과 디테일은 어디 가고, 뜬구름만 남았나

종합 추론해 보건대, 국책(정)과제를 담당하는 박재완 수석에겐 그나마 나라 전체를 193개로 쪼개어 두루 살펴야 하는 총체성과 디테일은 모두 사라진지 오래인 것처럼 보인다. 한 두 개의 뜬구름 잡는 슬로건(미래비전)과 몇 개의 지상목표(국책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방송을 장악해야 한다는 강박만 남은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약속했던 7% 성장률은 4.7%로 낮아지고 3.3%로 잡겠다던 물가 상승률은 4.5%가 넘을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에서 이만하면 경제는 호성적이라 외칠 수 있겠는가. 정보의 바다에서 '국책과제'란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상황에서 공기업 선진화의 노래만 부르겠는가.

어떤 것도 또 모든 것도 감당이 어렵고 도처엔 강적이 천지인 상황에서 그나마 합리적이라고 알려 졌던 박재완 수석마저 나팔수를 자처하고 나선 상황을 어찌해야 할까. '국책과제', '미래비전' 그리고 '방송통신'을 담당하고 있는 박재완이 이번 주의 키워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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