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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신념과 객관적 진실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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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적 신념과 객관적 진실 사이엔 무엇이 있을까

[뷰포인트] 두기봉, 위가휘 감독의 신작 <매드 디텍티브> 리뷰

목까지 단추를 다 채운 셔츠에 발목 위에 기장이 걸린 양복바지, 거기에 양말을 신지 않아 훤히 드러난 발목에 낡은 구두, 붕대를 두른 머리 위로 아무렇게나 튀어나온 머리카락들, 그리고 광기로 번득이는 눈빛을 한 남자. 그는 자신의 빈 옆자리에 대고 아내로 추정되는 환영과 끝없이 대화를 나누고 갑자기 허공을 향해 고함을 치는가 하면, 얌전히 있던 누군가를 향해 다짜고짜 주먹을 날린다. 누가 봐도 딱 광인 노숙자일 수밖에 없는 이 남자의 이미지만으로 영화는 충분히 강렬하다. 오래 전 경찰계를 떠난 이 남자, 번 형사와 그에게 도움을 청한 현역 경찰인 호형사가 팀을 이루어 형사실종사건을 뒤쫓긴 하지만,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캐릭터이며, 캐릭터들의 대결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인간의 본성이다.
매드 디텍티브
영화의 전반부는 괴짜인 번형사가 보는 세상을 그대로 관객에게 보여주면서 일찌감치 사건의 범인을 지목한다. 번형사의 주장에 따르면 무려 7개의 인격을 달고 다니는 치와이 형사의 모습은 외모도 성별도 나이도 각기 다른 7명의 배우가 함께 휘파람을 불며 나란히 걷는 장면으로 관객에게 제시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번형사의 능력을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영화를 지켜보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영화가 중반을 넘어가면서, 영화는 번형사를 의심과 회의의 눈으로 보는 호형사의 눈으로 서서히 시점을 전환한다. 관객들 역시 이 시점에서 번형사에게, 그리고 영화 자체에 의심을 갖게 된다. 사건을 재연한다며 번형사가 호형사를 땅에 묻은 채 그대로 떠나버린다거나 엄밀히 형사가 아닌 번형사가 호형사의 신분증과 권총까지 훔쳐 날뛰고 다니는 데에까지 이르면, 아무리 초자연적인 능력을 인정한다 해도 어느 정도의 통제를 가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호형사에게 십분 동의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번형사의 전 부인이 나타나 번형사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고 증언한다. 그렇다면 번형사는 정말로 신통력을 가지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광증으로 날뛰는 미치광이에 불과한 걸까. 어차피 영화는 번형사가 보는 세상을 보여준 것인 만큼 관객에게 반칙을 한 적은 없다. 이 순간 관객인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이것이다. 과연 번형사가 믿고 있는 세계는 진실일까? 나아가 진실이라 해도, 그것이 우리 모두의 진실이 될 수 있을까? 개인의 주관적인 진실은 과연 어느 순간에 객관적 진실의 자격을 얻을 수 있는가? 혹은, 객관적 진실을 구성하기 위해 개인의 주관적인 진실은 어느 선까지 고려될 수 있는가? 아무리 그가 과거 100% 범인 검거율을 자랑하는 신통한 형사였단 사실을 고려한다 해도, 다중인격체가 거의 귀신처럼 묘사되는 이 영화에서 귀신을 보는 심령술사처럼 행동하는 번형사의 주장을 우리가 객관적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는 근거는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만약 번형사의 진실과 치와이 형사의 진실이 서로 대립할 때, 단순히 번형사가 주인공으로 다뤄진다는 이유 외에 설득력 있는 객관적 근거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우리가 번형사를 기꺼이 믿어야만 하는가? 나아가 영화가 등장인물의 시점을 통해 관객에게 제시하는 여러 장면들 중 관객은 어떤 장면을 사실로, 어떤 장면을 그저 등장인물의 환영으로 처리해야 하는가?
매드 디텍티브
형사실종사건의 중요한 관련자인 인도인과 치와이 형사, 호형사와 번형사가 서로 대립하게 되는 영화의 절정부에서 이 영화는 다중인격을 다루는 영화답게 거울방 씬을 선보인다. 단언컨대 이 거울방 씬은 오슨 웰즈의 <상하이에서 온 여인>만큼, 그리고 오우삼의 <페이스 오프>보다 훨씬 더 매혹적이다. 각자의 뒷통수를 향해 연쇄적으로 권총을 겨누고 있는 이들의 대치상황에선 서로 적만 있을 뿐 그 어디에도 믿을 수 있는 동지나 파트너란 없다. 거울은 적의 숫자를 확장하고, 실제 존재를 왜곡하며 거짓의 허상을 한 차원 더 왜곡한다. 거울이 모두 깨지는 순간 진실은 밝혀지지만, 이미 이 시점이 되면 진실 그 자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 진실이 어떻게 다른 이들에게 전달되고, 어떻게 객관의 혹은 공공의 진실이 되는가라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다. 영화가 여기에서 우리에게 물음을 던지는 것은 오히려 윤리와 도덕의 문제이다. 이 모든 소동의 근원점에 손해를 감수하고 윤리와 원칙을 지킬 것인가, 생존을 위해 욕망을 따를 것인가의 문제를 배치하는 것이다. 집단의 윤리가 개인의 윤리와 꼭 합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집단이 윤리적이기 위해서는 그 집단에 속한 개개인 역시 윤리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개인은 각자 진실의 순간, 그리하여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며, 이 순간 윤리적 시험대에 오른다. 이는 우리가 흔히 보는 영웅물에서처럼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시험대가 결코 아니다. 악당이나 사이코패스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선한 사람도 자신의 생존을 위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신뢰는 그렇기에 더욱 복잡한 문제가 되며, 집단의 윤리는 더더욱 어려운 문제가 된다. 과연 진실의 다면적인 얼굴과 다층적 차원의 반사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타인의 진실을 우리는 어디까지 신뢰하고, 어디서부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의심해야 하는가? 혹은 나의 진실은 과연 타인에게 어떤 층위까지 증명하고, 어떤 층위부터 신뢰를 요구할 수 있을까? 진실 앞에서 우리가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을 때, 과연 우리의 선택은 어디를 향할 수밖에 없는가? <매드 디텍티브>가 최종적으로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문제이다. 섬뜩한 사이코드라마와 빛나는 액션씬 사이에서 두기봉, 위가휘 감독이 던진 이 묵직한 질문들은 영화가 끝나고 마지막 자막이 오르는 순간까지도 관객의 머릿속을 휘감고 쉽게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두기봉 감독도 이제 거장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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