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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감독, 새로운 영화, 그리고 전환기

[신기주의 이야기 속으로] <스페어> 만든 이성한 감독 인터뷰

영화로 성격을 버리는 사람이 있다. 영화로 사람 되는 사람이 있다. 이성한 감독은 후자라면 후자다. "원래 불 같은 성격이었다. 사무실에선 욕도 많이 했다. 영화 하면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지금처럼 온화하게 말하는 버릇도 생겼다. 그랬더니 요즘 들어 나를 처음 본 사람은 원래 이렇게 온화한 성격인 줄 안다. 절대 아닌데 말이다." 성격이 바뀐 건 영화계와 부딪히면서부터였다. 이성한 감독은 원래 건설회사에 다녔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겉은 평범했다. 이성한 감독은 중학교 때 봤던 성룡을 여전히 마음 속에 품고 사는 열혈남아였다. 언젠간 영화를 할 거란 꿈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서른 다섯 살이 되던 2005년이었다. 그 때 딱 느꼈다. 일 년만 늦어도 못하겠구나. 인생은 한 번 뿐이다. 지금 못하면 나 자신한테, 내 인생에 할 말이 없겠구나. 아내와 아이들을 봤다. 난 결혼이란 건 아이들한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한테 꿈을 이야기하려면 내가 꿈을 포기하지 않아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어쩌면 아이는 핑계다. 그의 인생이 영화를 빼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24년을 살았다. 중학생 시절 성룡의 <쾌찬자>를 처음 본 뒤로였다. "영화... 그걸 빼면 의미가 없다. 안되나 보다 생각하고 포기도 했다. 그 때마다 자꾸 안에서 꿈틀대는 거다." 이성한 감독은 자기 돈으로 <필름 더 데이즈>라는 영화사를 차렸고 23억 원이나 들여서 <스페어>를 찍었다. <스페어>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됐고 근 1년 만인 8월 28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페어
<스페어>는 별주부전을 모티브로 했다. 두 주인공 길도와 광태 토끼와 거북이다. 영악한 토끼는 거북이의 간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고, 의뭉스런 거북이는 순진하게 토끼를 믿지만 결국 제 몫을 찾는다. 판소리의 형식을 영화에 빌려왔다. 문득 문득 만담을 나누는 해설자들의 목소리가 껴든다. 일본 조직의 2인자 사토와 광태가 보여주는 액션은 댄스 배틀을 닮았다. 이성한 감독은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서 분명하게 자기 목소리를 낸다. 보여주고 싶고 해보고 싶은 게 있다. 그러나 이런 창의적인 신선함을 뒷받침해주기엔 영화를 매만지는 솜씨가 부족하다. 솜씨는 경험에서 나온다. 경험을 쌓기에 이성한 감독은 신인인데다 영화계의 이방인이다. 그는 영화계에서 나고 자란 인물이 아니다. 어느 날 불쑥 영화 한 편을 들고 등장했다. 솜씨가 아쉬운 부분은 도처에 있다. 영화의 도입부는 교차 편집이 과도하게 쓰여서 플롯이 엉킨다. 중반 이후부턴 호흡 조절에 실패한다. 길도와 광태와 사토와 주변 인물들은 서로 좇고 좇는다. 그 안에서 플롯의 직진성이 생긴다. 그러나 중반부턴 추진력이 떨어진다. 광태는 사토에게 자신과 함께 길도를 좇자고 말한다. 길도한테 속았으니 길도를 찾아야 한다는 거다. 광태의 간을 일본으로 가져가지 않으면 보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그런데도 사토는 광태를 따른다. 광태와 사토는 어렵사리 길도를 찾는다. 그러나 정작 길도와 결말을 짓는데는 무심해 보인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지점이다. 이야기와 편집의 리듬감이 부족해서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는 단선적이어서 따라잡긴 쉽지만 식상해지기도 쉽다. <스페어>는 분명 완성체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스페어>는 이성한 감독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스페어>는 홍콩과 할리우드의 오락 영화 공식 안에 있다. 직선의 플롯과 볼거리가 있고 속편을 기약하는 열린 결말까지 전형적이다. 이성한 감독은 스스로 할리우드와 홍콩 영화의 문화적 충격을 접하곤 영화를 꿈꾸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스페어>는 오랜만에 보는 할리우드 키드의 영화다. 오락성에 대한 순수한 환희야 말로 <스페어>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이성한 감독은 군더더기 없이 오직 활극과 추격과 코미디라는 오락 요소만으로 영화를 구성하고자 한다. 그가 추구하는 가장 큰 미덕은 재미다. 그리고 <스페어>의 몇몇 지점은 재미있다. <스페어>는 영화계 바깥에서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영화가 산업이 된 시대에 영화계 바깥에서 상업 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희귀한 일이다. 그 영화가 흥미롭다면 발견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저널이 없어서 못 쓰는 소재다. <스페어>는 혈혈단신 감독이 의지로 만든 독립 영화로 꿈은 이루어진다 식으로 포장될 여지가 많다. 이성한 감독이 <스페어>를 만들면서 가장 우려했던 것도 그 지점이었다. "영화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다.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페어>가 만들어진 과정 때문에, 왜 영화를 만들게 됐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 어쩌면 그 질문 밖에 안 받는 것도 같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아쉽다." <스페어>는 저널에선 의미 부여의 대상으로 소비되기 쉽고 그렇게 소비되고 있다.
스페어
하지만 정작 영화계 안에서 <스페어>는 이방인의 영화다. 이성한 감독은 말한다. "영화를 만들면서 늘 이런 얘기를 들었다. 영화가 처음이시라 잘 모르시나본데요. 이런 거." 그는 말한다. "영화 작업을 하면서 여러 일을 겪었다. 처음 계약을 맺는데 그러는 거다. 우린 선금으로 돈을 다 받는다는 거다. 우리 영화가 자빠질테니까 돈부터 받고 보자는 심뽀였다. 돈을 다 받더니 더 주면 해주겠다고도 했다. 소품도 자기네가 제작했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빌렸다는 거다. 제작비를 다 받았는데 말이다. 나도 그게 다 경험치로 보이는데 또 어떻게 할 방법이 없잖아. 그래서 알고도 당했다. 하지만 아무 말도 못했다. 소문은 그 사람들이 내는 거니까. 영화계에 이상한 놈이 들어와서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이상한 짓을 한다. 이렇게 낙인 찍힐 수 있으니까." <스페어>를 만들면서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건 영화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계에 진입하는 거였다. 영화계만큼 이방인한테 낯설고 차가운 곳도 없다. 그는 말한다. "사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사람 잃고 돈 잃고 싶진 않았다. 지금도 확신하는 건 그 분들 모두 내가 다시 일하자고 하면 다시 일할 거다. 난 돈을 잃었지만 신뢰를 얻고 싶었다. 그래서 성격도 많이 변했다. 지금처럼 온화하게 말하게 됐다." 영화로 성격을 버리는 사람이 있다. 영화로 사람 되는 사람이 있다. 이성한 감독은 어쩌면 전자일지도 모른다. 이성한 감독은 여전히 영화를 꿈꾼다. 그가 영화를 대하는 태도는 맑다. 지금 한국영화계에서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인생을 거는 사람을 찾기란 어렵다. 영화는 돈이고 산업이고 비즈니스이고 생계 수단이고 승부이고 고난이고 그리고 나서야 행복이고 자기 만족이다. 이성한 감독은 말한다. "난 사람들이 여전히 영화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관객 수준이 너무 낮다고 하는데 내가 오래 관객이어서 그런지 틀린 말 같다. 관객은 선택을 할 뿐이다. 편하게 울고 웃고 싶어할 뿐이다. 난 관객이 제일 현명하고 여전히 재미있는 영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스페어>는 전국을 돌며 시사회를 열고 있다. 주연배우 정우와 임준일과 이성한 감독은 매일 밤 포스터에 싸인을 하고 음반을 나눠주고 인사를 하고 있다. 이성한 감독은 이미 다음 작품 구상도 끝냈다. <스페어>의 속편도 물론이다. 영화로 성격을 버리는 사람이 있다. 영화로 사람 되는 사람이 있다. 이성한 감독은 분명 영화로 자기 인생을 찾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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