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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나라를 사랑하는 예술

[김상수 칼럼]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한다 ③

1929년 10월, 미국 월 스트리트 붕괴는 당시 미국의 극단적인 자본주의가 단서가 됐다.

탐욕적인 자본의 전횡, 금융시장의 무제한적인 대출과 가진 자들의 투기, 불균등한 소득 분배, 이런 마구잡이 자유방임 경제방식은 시장을 왜곡시켰고 미국 경제구조 자체를 박살냈다. 압도적인 지지로 후버가 대통령에 당선된 지 겨우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다.


후버는 경제를 살린다고 대기업과 부자의 소득을 증가시켜 성장을 촉진하겠다면서 감세정책을 펼쳤다. 소위 경제낙화 효과를 기대했지만 노동자의 소득은 전혀 늘지 않았고, 양극화와 높은 실업률로 사회는 혼돈의 상태로 내달렸다. 그러나 후버는 자기 확신에 빠져있었다.

친기업적인 후버의 경제대책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고 실업자들의 고통은 거의 방치됐다. 결국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은 후버의 뺨을 세게 갈겼고, 1932년 민주당의 프랭크린 루즈벨트가 새로운 대통령이 된다.


▲ 당시 미국 농촌 민중들의 일상을 담은 F.S.A 사진.

루즈벨트는 농업안전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에 사진작가를 끌어 모으게 했다. 미국을 찍어라! 그리고 미국인에게 미국의 실상을 알려라! F.S.A.의 사진들은 미국인들을 울렸다. 정책홍보를 위한 기록사진들이었지만 생생한 미국인들의 고통을 담고 있었고 당시 미국 농촌의 피폐함을 그렸다. 그러나 이 사진들엔 미학이 있었다. 프로파간다로서의 사진이 지니기 쉬운 과장이나 정치적 목적에 의한 왜곡, 포장용 사진은 일체 없었다. 리얼리즘이었고 그 시대를 그대로 반영했다.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조작된 노동자상, 일본군국주의의 침략미화, 나치독일의 게르만족의 우월성 같은 선전용 사진들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었다.

거꾸로 헐벗음과 고통에 괴로워하는 미국인들이 찍혔다. 스산하게 뿌리 뽑힌 농촌과 농부들 모습, 황폐화된 공장 노동자들의 비참한 일상이 사진으로 드러났다.

국가권력이 스스로 자기 국민과 국가의 빈곤을 숨기지 않았다. 사진으로 국민을 현혹하고 국민에게 최면을 걸고 막연한 환상을 전혀 투입하지 않았다.
(http://en.wikipedia.org/wiki/Farm_Security_Administration)

'국립현대미술관을 말한다' 글이 처음 연재되고 나서부터 메일과 전화를 계속 받았다. 그중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람으로부터 '고맙습니다'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 그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역시 신분을 밝히지 않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내 글에 "글을 쓰려면 제대로 알고 쓰세요. 그리고 사실 확인이 안 된 이런 글을 올렸다는 것은 프레시안 책임도 커보입니다"라고 비난하는 댓글을 달았다.

그러나 나는 국가의 예술기구의 발전을 위해 현재의 모습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무책임한 글은 쓰지 않는다.


다시 얘기하지만 한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 파행 운영의 절정을 치닫고 있다. 그 근본 원인은 국민대중을 이끌어내는 주제의식이 강한 전시기획이 부재한 까닭이고, 미술관의 핵인 학예연구실을 위축, 배제시키는 미술관 운영의 기초 상식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금의 미술관 운영에 있다는 것을 나는 앞 글 '국립현대미술관에는 심장이 없다'에서 지적했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은 제대로의 국민의, 시민의 미술관이 되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미래를 위한 중장기적 발전 계획을 치밀하게 세우고 면밀하게 실천해 나가야 하며 최소한 이런 조건을 만들기 위한 전제로 뼈아픈 자기 쇄신도 뒤따라야 한다.

영국의 국립현대미술관인 데이트 모던 갤러리 경우, 수상실이 직접 나서서 현대미술의 세계 리드를 실현시키고자 건립시켰다. 프랑스는 루브르와 오르세이, 퐁피두로 이어지는 전통과 근, 현대미술의 연결을 통해 문화의 자부심을 구축한 것이 드골 이후 퐁피두, 미테랑 대통령에 이어지는 '국가문화총체계발' 프로그램 안의 결과였다. 미국이 2004년에 수립한 혁신미국 'Innovate America' 국가혁신보고서에서 미국의 전 미술관들을 개성화시켜 '미국의 자부심으로 미국을 리드 한다'는 대담한 시도를 한 것 등은 우리에게도 우리 나름의 독자적인 미술관 역량을 거듭 쇄신시키고 개편 확충할 것을 자극한다.
▲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나는 한국의 국립근,현대미술관, 트라이앵글 스트럭츄얼을 제안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본관을 근, 현대 미술의 중심으로 하되 과천 본관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근, 현대 미술의 소장센터, 연구센터, 미술교육센터의 역할을 수행케 하고, 그간 미술계에서 계속 거론되었던 경복궁 옆 기무사 터에는 첨단미술의 전초기지로 새로운 현대미술관을 설립하고, 덕수궁 석조전 동관과 서관을 통합해 덕수궁근대미술관을 독립적으로 새롭게 구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제반 준비를 시작하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근대미술관을 만들어 자국의 미술에서 근대성을 재발견하는 노력을 하는데, 우린 늦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간 10여 년 간 비좁은 덕수궁 석조전 서관에서 현대미술 분관 덕숭궁미술관을 운영해 근, 현대미술을 연결시키는 전시를 꾸준히 보여 왔다.

석조전 동, 서관 통합을 통한 덕수궁근대미술관 설립

특히 98년부터 운영되어 온 현대미술관 분관 덕수궁미술관은 그간 과천 현대미술관이 운영의 파행을 거듭하며 관람객이 90년대 초반 수준 이하로 감소하면서 미술관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비해 볼 때 성과가 있었다고 보여진다. 덕수궁미술관은 99년부터 현재까지 연간 50만 명 이상, 지난기간 동안 연 400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하는 성과를 이뤄내면서 국내외 근, 현대미술을 소개하는 전시를 하고, 시민들에게 미술관의 바람직한 상을 구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해왔다. 이는 비단 관람객 숫자의 중요성만이 아니라 전시기획, 전시방법, 전시효과의 측면에서 성과가 있었던 것으로, 그간 척박한 국립미술관 운영의 우리 현실에서 충분히 격려 받고 칭찬받을만한 구체적인 역할이다.
▲ 러시아 에르미타쥬 미술관 내부.

이에 오늘의 시점에서 덕수궁미술관은 과천 현대미술관의 분관체제를 탈피, 따로 독립시켜 덕수궁근대미술관을 발전적으로 설립, 우리나라의 근대미술의 형성과 전개 과정을 체계화하고, 근대미술에 나타난 우리의 미의식과 역사관을 정립할 것을 요구하는 시점에서 적기라할 수 있다.

이는 우리의 현대미술이 어떤 뿌리와 근거에서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미술관으로의 독립적인 구축을 통해 근대미술 전문기관으로서 근대미술의 조사, 연구, 근대미술 관련 기획전 및 소장품 전시, 교육프로그램의 운영과 개발, 학술활동과 출판, 근대미술 관련 세계 각국의 정보 수집 및 교류와 전시 등을 담당하게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근대성의 재해석을 동반한 현대미술의 특별전시 등에서 현대미술관과 차별을 두어 바람직한 근대미술관 운영을 하게하는 본격적인 근대미술관으로 발전시킨다는 차원이다.

여기서 반드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은 현재 서관만을 사용하는 비좁은 미술관을 석조전 동관을 같이 사용하게 하여 우리나라에도 근대미술관의 면모를 제대로 갖출 수 있도록 문화재청과 문화재전문위원들도 적극 협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외국의 수다한 사례에서 보듯이 역사적인 궁전이나 문화재 건축물을 근대미술관으로 활용하여 옛 건축물을 살아 숨쉬게 속 내용을 채우는 성공적인 경우를 우리는 본다.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마우리츠하위스 (Mauritshuis) 왕립미술관은 1633부터1644년 설립된 궁전을 1822년에 미술관으로 개관시키고 19, 20세기를 거쳐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성장시키면서 1982년에서 1987년 동안 궁전을 개조하여 근대미술관으로 재탄생 시켰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Musee du Louvre)은 12세기 말부터 프랑소와 1세 왕의 거주지로, 루이 14세 때에 튈리르 정원과 함께 개보수 및 확장을 거쳐 1883년 튈리르 궁의 소실 이후로 루브르 궁은 본격적으로 박물관으로 변경되는 계기를 맞으면서 20세기 중반부터는 그랑 루브르 사업(le Projet de Grand Louvre)에 박차를 가한다.
▲ 덕수궁 석조전.

또한 스페인 티센-보르미자(Thyssen-bornemisza) 미술관은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에 신 고전주의 양식으로 세워진 궁전인데, 스폐인 정부에 의해 수집된 미술품들과 티센-보르미자 가문이 모은 컬렉션의 중요한 일부분이 덧붙여져 만들어진 미술관으로 옛 궁전을 제대로 활용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에 있는 에르미타쥬 미술관(Hermitage Art Museum)이 1754부터 1762년 사이에 만들어진 6개의 거대한 궁전 건물을 미술관으로 활용하여 현재는 세계 3대 미술관 중 하나로 꼽히는 사례 등은 대표적인 문화재 건축과 궁전을 미술관으로 이용한 경우다.

우리도 덕수궁 석조전 동관과 서관을 통합하여 덕수궁근대미술관을 제대로 개관시키고, 과천 현대미술관을 미술의 소장, 연구, 미술교육 센터의 장으로, 경복궁 옆 기무사 터에는 첨단현대미술관 등의 실현으로 삼각 트라이앵글 스트럭츄얼 체제의 미술관 시스템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국립 근, 현대미술관의 새로운 기본 형식이 비로소 마련된다.

오늘의 한국 사회현실은 한치 앞을 전망하기가 불투명할 만큼 어지럽다. 그러나 이런 시간일수록 국가의 영속성에서 지향해야 하는 가치들에 대한 노력들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산 정약용은 그가 살아가던 세상을 온통 썩고 부패한 시대라고 규정했다. 어느 것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탄식했다. 세상은 썩어버린 지 이미 오래며(天下腐已久), 썩어 문드러졌다(腐爛)고 그는 개탄했다. 그러나 그는 절망에 빠져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는 그의 유배생활 18년 포함 말년까지 500권의 책을 밤낮으로 열심히 썼다.

(☞바로 가기 : 필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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