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불행은 올림픽이 끝나고 시작됐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불행은 올림픽이 끝나고 시작됐다"

[완군의 워드프로세서] 그 이후…

'중국, 그 100년의 꿈'이라던 올림픽도 끝이 났다. 동시 아니 하루 더 늦게 한 여름 밤의 꿈만 같던 우리의 올림픽도 끝났다. 그 100년의 꿈을 금메달 51개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꿈도 당연히 금메달 숫자 때문에 달콤했던 것은 아니다.

나 그리고 우리에게 올림픽은 동시대의 젊음이 살아있음을 확인케 한 즐거움이었고, 누구나 갖출 수 없는 신체적 향연의 극한을 만끽하는 희열이었다. 이미 오래 전에 '화폐'의 위대함에 굴복한 올림픽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감동'도 말하기 힘들지만, 올림픽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세포와 근육의 움직임을 선사하는 '선수'들의 몸짓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감격'의 숙연함을 보여준다.

이배영의 웃음과 이용대의 윙크와 이봉주의 일그러짐에 도취됐었는지 나는 마운드에 태극기를 꼽는 퍼포먼스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때 한 번 봤으면 족했지 싶었다. 이른바, '된장 빅볼' 그 믿을 수 없이 완벽한 승리의 여운은 애석하게도 마운드에 '쌍태극기'가 펄럭이는 장면에서 끝나버렸다. 결코, 그 선수들을 뭐라 하고자 함은 아니다. 그것은 철저히 언제나 국가가 너의 앞에 있다고 가르쳤던 나쁜 교육과 질 낮은 사회의 문제이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새벽잠 마다하며, 신체가 허용하는 인내의 마지막을 갱신하며, 운동에 매달렸을 선수들의 인생. 그에 대한 감격을 고작 태극기 흔드는 세레모니로 환원하는 감수성과 표현력의 문제는 어쩌면 이번 올림픽이 또 다시 우리에게 남긴 숙제일지도 모른다.

MB 정권의 금·은·동

그렇지만 일상다반사. 언제나 그렇듯 슬픔과 기쁨은 교차한다. 진정 최선을 다한 선수들을 향한 기꺼운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한층 성숙해진 관전 태도는 기쁨이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 대통령과 국위를 앞세웠던 어떤 미디어와 해설의 태도는 참을 수 없는 짜증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이야기해 볼만 하고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는 아쉬움이었다.

불행은 올림픽이 끝나고 시작됐다. 이번 올림픽의 최악의 부조리함은 스포츠가 또 한 번 시대착오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는 선수들의 값비싼 땀 값을 끝내 싸구려로 만들었다. 80년대의 전두환처럼 금메달이 지배 질서의 모순에 무감각한 개인을 마취할 수 있으리라 착각했고, 은메달이 체제에 순응하고 '획일적 시민 감수성의 확산에 기여하리라 오판했고, 동메달이 비판과 대안의 모색이 아닌 다음을 기약하는 감동적 민족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것이라 확신했다.

때때로 불만은 있지만 애국심 그 자체에 뭐랄 생각은 없다. 진짜 분노는 애국심을 과잉 조직하기 위한 체제의 난리법석에서 생긴다. 그러한 애국심 조작이 역사적으로 무엇을 의미해왔는지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이번 올림픽은 히틀러의 베를린 올림픽(1936)이 아니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 역시 전두환을 위한 '바덴바덴의 기적'(1981)은 아니었다. 아무도 올림픽이 정권을 위한 '쑈'(show)여도 마땅하다고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경찰청에서 만든 '찌라시' 한 장이 말해주는 것
▲ ⓒ프레시안

시간을 잠깐 일요일로 돌려보자. 오후에 삼청동 공공미디어연구소 사무실 앞에 잠깐 차를 세웠다. 대략 15분쯤의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 사이 차량 앞 유리에는 '태평로 서울광장 주변 차량통제 안내문'이 끼워져 있었다. 만든 곳은 서울경찰청, '베이징올림픽 선수단 귀국 환영식' 퍼레이드 때문에 태평로 양방향 차량 통제를 실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지도까지 인쇄된 친절한 안내문과 짧은 주차 시간도 놓치지 않는 기민함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곤 지금까지도 인터넷을 화끈하게 달구고 있는 이른바 '광화문 카퍼레이드'의 논쟁이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이지 '단순하고 무식하고 지랄 맞은' 정권이다. 이 정권과는 어떠한 논쟁도 무의미할 뿐더러, 우리가 단련해 온 어떠한 민주적 상식도 정권의 본질을 설명하지 못 한다(고 확신한다). 한 마디로 이번 퍼레이드는 70년대 발상, 80년대 스타일이다. 90년에 했어도 낯 뜨거웠을 '진상'이다. 정부 주관 쥐잡기 캠페인과 같은 관제 동원 행사였고, '새마을지도자=정부'처럼 '기업=정부'임을 선전하는 정권의 대국민 홍보 행사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경찰청에서 만든 '찌라시' 한 장이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일단, '퍼레이드'냐 아니냐를 두고 말들이 많았는데,(문화부는 퍼레이드가 아니라는 공식 입장까지 밝혔었다.) 순도 100%의 완벽한 '퍼레이드' 이다. 정권의 '견(犬)찰'이 된 경찰이 친절하게도 알려줬다.

인수합병 전문 재벌 STX로부터 2억 원을 후원 받았으니 민간행사라던 대한체육회의 궁색한 설명에 경찰청의 찌라시 제작비용도 포함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찌라시를 STX가 사전 제작했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STX 직원이 그 찌라시를 차에 꽂으러 돌아다니지는 않았을 것이다. 분명, 공권력이 동원됐다.

그리고 민간 주관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STX의 돈이 사용 된 것이 아니라면 세금을 함부로 사용한 서울경찰청장의 배임 혐의에 대한 감사 청구를 해야 한다. 그나마 꼭 해야 한다면 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마땅할 행사에 기업의 후원을 받고, 또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민간 행사라고 주장하는 정부도 우습지만,(그렇다면 오히려 공적 목적을 갖는 행사를 홍보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 팔아버린 문제가 생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정부의 거짓말은 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가뜩이나 사회 다른 분야에 비해 수준이 한참 떨어지던 정치였는데, 이명박 정권 취임 6개월 만에 우격다짐으로 스포츠를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의 통치가 이뤄지는 것은 참으로 비감한 일이다.

'올림픽에 떠밀린 세상살이'

하긴 진즉에, 그러니까 서울시장 하던 시절에 이미 '광장'을 기업에게 팔아먹었던 경험이 있던 이명박 대통령이다. 2006 독일 월드컵 때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아주 헐값에 시청광장을 SK에 팔았었다. 봉이 김선달이 울고 갈 장사속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슴푸레 기억이 살아난다. 그는 2002년 월드컵 때는 아들에게 히딩크와 함께 사진을 찍는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했던 좋은(!) 아버지이기도 했다. 베이징의 감격을 잊더라도 그것들은 잊지 말기로 하자.

올림픽 때문에 획일화된 신문과 방송은 그저 신문지의 낭비나 전파의 남용에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많은 국민들의 알 권리와 정보 접근권을 봉쇄한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집단인 학생과 노동조합, 그리고 정부 당국의 대응은 물론 시정의 경제 동향마저 알 길이 없어졌고, (…) 민족의 명절인 추석이 코앞에 있고, 올림픽이 끝나면 물가 태풍이 닥쳐올 텐데 서민들은 잠실벌의 함성과 폭죽의 불꽃 속에서 멍청해졌다가, 이내 삶의 대책을 마련할 생활 정보에 목말라 한다. - 유일상, '올림픽에 떠밀린 세상살이', <발가벗긴 한국 언론> 중

어떤가? 88올림픽이 끝나고 1990년 출판된 책에서 인용해봤다. 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 있는가? 올림픽 기간 동안 YTN의 낙하산은 고착화되고 있고, KBS는 사장이 바뀌었고, MBC는 굴종을 선택했다. 기륨의 단식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고, 재벌을 향한 노골적 구애를 던진 8.15 대사면은 별 탈 없이 지나갔다. 공공 부문에 대한 '묻지마 사영화'에도 시동이 걸렸다. 어디 그 뿐이랴, 물·전기·가스·보험·교육을 거침없이 민영화하려는 계획은 '하이킥'을 날릴 자세를 잡았다.

그래서 스포츠는 언제나 거짓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채 60여 개도 되지 않는 고교 야구팀을 가진 한국이 4,163개의 고교 야구팀을 가진 일본을 이길 수 있겠는가? 그런데,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체적 향연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는 소시민일 수밖에 없는 나는 스포츠가 동시에 카니발(carnival)을 가능케 하는 선의의 거짓말임도 믿을 수밖에 없다. 그 나약함에 괴롭다.

'대한민국은 스포츠 공화국이다'라는 MB의 답가
▲ 26일 베이징올림픽의 메달리스트 선수들이 서울 광화문에서 서울시청까지 도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뉴시스

그래서 결론이다. 역시나, 문제는 스포츠를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코드로 활용하려는 정권의 비열함에 있을 뿐이다. 많은 말을 만들었던 일탈의 올림픽은 끝났고, 유독 탈이 많았던 2008년의 일상은 다시 시작되었다. 그 일상의 시작이 낡아빠짐의 극한인 국위 선양 귀국 퍼레이드로 시작했다는 것은 내가 아는 한, 민주 공화국의 수치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를 그토록 외칠 때는 대답이 없더니, 이명박은 뜬금없이 '대한민국은 스포츠 공화국이다'라는 답가를 불렀다. 태평로를 끊고 태평성대를 외쳤다. 그래서 이제 어쩔 텐가? 삼미 슈퍼스타즈를 인용하자면,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 즉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세계를 강요할 것인가?

그 '단무지(단순무식지랄)'스런 강요를 거부해야 한다. 올림픽 그 이후가 우리의 현실이다. 예고되고 있으나 준비되지 못한 경제위기가 닥쳐온다면 '한국시리즈' 우승 퍼레이드를 할 텐가. 그리곤 내년 3월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를 기다리자고 할 것인가? 정권의 중간 평가를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성적으로 할 수는 없다. 올림픽 그리고 퍼레이드 다시 그 이후를 생각하면 정말 해도 너무 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막나가는 정권이다.

올림픽아! 즐거웠다. 딱 거기까지이다. 이번 주의 열쇠는 정확히 퍼레이드 그리고 '그 이후'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