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은 조사에 나섰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탈세를 조사한다면서 그 대상에 민주노총 법률원과 구 금속노조 법률원인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을 끼워넣었다.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반대세력 옥죄기다. 이명박 정부에 대립각을 세워온 민주노총과 전교조의 발목을 잡으려는 것으로 해석할 소지가 다분하다.
논란은 피할 수 없다.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고 해서 얼굴을 부라리는 게 과연 정부가 내보일 태도인지 물어야 하고, 반대세력 옥죄기 후에 하고자 하는 게 뭔지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제쳐놓자. 그보다 먼저 짚을 게 있다.
방식이 낯간지럽다. '좁쌀 행정'이란 표현이 어울릴 만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두 단체의 정책노선을 정면 공격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주변'을 치고 '발밑'을 판다.
백번 양보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비록 '좁쌀'이라 해도 그것이 절차가 정당하고 내용이 합리적이라면 뭐라 할 수가 없다. 헌데 그렇지가 않다.
전교조 서울지부가 자조관에 입주한 건 단체협약에 따른 일이다. 서울시교육청과 단체협약을 맺고 정상적으로 입주한 것이다. 절차상 하자가 전혀 없다. 그래서일까? 이번엔 서울시교육청이 전교조와의 단체협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고 나섰다. 자조관을 어린이용으로 써야 한다며 일찌감치 대체 공간을 요구한 전교조 서울지부의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절차가 너무 일방적이다.
노동 법률원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는 합리적이지 않다. 국세청은 "신고 내용의 탈루·오류 혐의" 또는 "동종업체 중 신고 성실도 하위"를 특별 세무조사의 이유라고 밝히고 있지만 설득력이 없다. 수익보다는 지원을 우선시하는 게 노동 법률원이다. 그래서 형사 사건 수임료가 로펌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소속 변호사들은 월급을 받고 있다. 당연히 소득세는 원천징수 된다.
고소득 자영업자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이런 노동 법률원을 상대로 '동종업체 중 신고 성실도 하위'를 운운하는 건 난센스다. '신고 성실도'가 하위인 게 아니라 '신고액'이 하위일 수밖에 없다.
국세청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없다'는 신념으로 임하는지 몰라도, 혹여 털어보니 먼지가 나오는 일이 있을지 몰라도 비합리적이긴 매 한가지다. 기회비용이란 게 있다. 털어서 먼지를 얻기 위해 인력과 시간을 쏟아붓느니 뒤져서 대박 칠 곳을 둘러보는 게 훨씬 생산적이다.
새삼 궁금해진다. 국세청이 돈냄새를 못 맡을 리 없다. 서울시교육청이 단협 일방 파기에 따른 부담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이들은 '좁쌀 행정'을 마다하지 않는 걸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가? '좁쌀 행정'의 연유를 이 속담에서 찾을 수 있다. 방식이 '좁쌀' 같더라도 효능만 크면 마다할 일이 아니다.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는 건 만고의 진리다. 물적 기반이 갖춰져야 지속적인 활동이 가능하다. 전교조 서울지부에 대체 공간은 제공하지 않은 채 퇴거를 요구하는 건 활동의 물적 기반을 허물기 위한 기초공사다.
이미지가 실체를 규정하는 건 불합리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다. 노동 법률원을 뒤져 탈세 꼬투리라도 발견할 수 있다면 민주노총이나 금속노조의 이미지는 얼룩진다. 부도덕성을 부각함으로써 이른바 '귀족 노조'의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시킬 수 있다.
정책노선을 놓고 맞장 뜨는 장면을 연출하면 득 될 게 없다. 민주노총과 전교조에 대한 거부심리를 일부 자극하는 효과를 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정반대로 두 단체에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선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두 단체의 존재감만 키워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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