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기인들 이주노동자들, 특히 불법체류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편안하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서고부터 90년 초중반 경에 발생했던 일들이 다시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을 요즘 자주 보게 된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검거할당제로 대표되는 인간사냥식 검거방식이 계속되고 있다. 시도때도 없는 강력단속으로 부상자와 사망자가 속출하고 임신 8개월된 여성, 출산한지 고작 4개월밖에 안된 산모에 이르기까지 검거하여 보호소에 수용시키는 비인권적 행위가 자행되고 있다. 출입국관리법을 어긴 것 외에는 다른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은 이들에게 행해지는 행정처분치고는 지나치게 잔인하다.
지난 6월에는 노동부에서 '공무원의 선구제 후통보' 지침을 뒤바꾸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공무원의 통보의무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직무를 수행하다가 불법사실을 인지했을 경우 해당 국가기관에 통보해야 하는 의무를 말한다.
이 통보의무를 이주노동운동 쪽에서 매우 민감하게 주시하는 이유는, 체류자격은 불법이지만 엄연히 노동자로서 노동을 제공하던 이주노동자들이 임금체불이나 산업재해, 사업장내 폭행 등의 인권침해 또는 여러 불의의 사건을 겪었을 때 정당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법체류자가 노동부나 경찰에 진정하거나 경찰의 수사에 도움을 주기 위해 출석하였다가 담당 공무원에게 불법체류 사실을 들켜버리는 경우가 문제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경찰이나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통보되어 추방당해버리곤 했다. 이에 따라 이주노동자들은 인권침해를 당했을 때나 동료를 위해 나서야 할 때 관공서에 협조하기를 주저하게 됐다. 또 귀신같이 이런 것을 간파한 악질 한국인들이 이를 악용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해마다 한두 건씩 이런 일들이 발생하면서 이주노동자들과 지원단체들이 여러 차례 항의하고 시정을 요청하는 등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법무부에서는 '선구제 후통보' 원칙을 마련했다. 즉 인권침해 사실에 대해 먼저 법률적 구제절차를 밟고 후에 관할 기관에게 통보하는 것으로 법을 개정한다는 방침이었다. 노동부는 각 지방관서에 이 같은 방침을 통보하였다고 공언했다. 그게 불과 1년여 전의 일이다.
공무원이 솔선해서 법을 지키겠다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규범적 감수성은 인권적 감수성과 서로 조화를 이룰 때 그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다.
만약 법이 악질적인 사람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데 현실적으로 기여하고 있는데도 규범을 앞세운다면 이는 보호가 필요한 약자들을 호랑이 우리로 밀어 넣는 것과 같다. 똑같이 임금체불을 했더라도 미안해하면서 사업이 풀릴 때 꼭 주겠다는 사업주와 '불법체류자니 잡아가라'고 경찰 불러 넘기는 사업주는 다 같은 사업주가 아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이런 '나쁜' 한국인들을 정당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될까봐 염려스럽다.
앞으로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은 바빠질 것 같다. 어디나 이주노동자 상담의 절반은 임금체불상담인데, 앞으로는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이 노동부니 경찰서 등에 출석할 것을 꺼릴 것이 분명하니 단체 직원이 대신 출석해주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