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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여전히 롤링 스톤즈 세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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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여전히 롤링 스톤즈 세대인가

[신기주의 이야기 속으로] 마틴 스콜세지의 <샤인 어 라이트> 리뷰

김태용 감독은 <온 더 로드, 투>에서 윤도현 밴드의 이야기를 다룬다. 윤도현 밴드는 2005년 봄 한 달 동안 유럽 공연 여행을 떠난다. 아무도 윤도현과 윤도현 밴드가 누군지 모른다. 록의 본고장에서 윤도현과 박태희와 김진원과 허준들은 이방인에 불과했다. 관계자가 관객의 태반인 무대에 올라서 윤도현 밴드는 절망한다. 윤도현 밴드가 길 위의 고독을 이겨내고 낯선 땅의 두려움을 딛고 일어나 런던 공연을 훌륭하게 해내기까지가 <온 더 로드, 투>의 줄거리다. <온 더 로드, 투>가 초점을 맞추는 건 밴드의 이야기다. 음악이 아니다. 음악 다큐멘터리의 흔한 형식이다. 음악을 하는 뮤지션의 사연을 다룬다. 김태용 감독은 <온 더 로드, 투>에서 윤도현 밴드의 어떤 진심을 포착한다. 그러나 윤도현 밴드의 음악을 담지는 못한다. 영화는 이야기를 다룬다. 스토리 텔링의 매체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둘 다 논리의 언어를 바탕으로 한다. 언어는 이야기를 만든다. 음악은 다르다. 음악은 간헐적인 음표와 쉼표로 이루어진 직감적인 매체다. 감성은 순식간에 전파되며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언어 바깥에 있다. 한국에 영화평론가는 차고 넘치지만 음악평론가는 한 줌 밖에 안 되는 이유다. 이야기를 다루는 언어로 형언 바깥의 음악을 논하기 보단 영화 줄거리를 구구절절 설명하는 게 훨씬 쉽다.
샤인 어 라이트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샤인 어 라이트>를 콘서트 영화라고 했다. 흔한 음악 다큐멘터리가 아니란 얘기였다. <샤인 어 라이트>의 주인공인 록밴드 롤링 스톤즈도 콘서트 영화여서 촬영을 수락했다고 했다. 40년 넘게 활동한 롤링 스톤즈는 이미 여러 차례 음악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1970년대엔 메이슬 형제와 <Gimme Shelter>를 찍었다. 1972년엔 로버트 프랭크 감독과 <Cocksucker Blues>를 찍었따. 모두 다 롤링 스톤즈의 어떤 이야기를 다뤘다. <Gimme Shelter>는 롤링 스톤즈가 공연하던 와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이 줄거리다. <Cocksucker Blues>에서 롤링 스톤즈는 공연을 하다 말고 섹스를 하고 마약을 한다. 마틴 스콜세지의 <샤인 어 라이트>에는 어떤 사건도 없다. 롤링 스톤즈의 음악과 공연이 유일한 사건이다. 이야기라는 형식에 매달리면 영화와 음악은 영원히 만나지 못한다. 영화 음악처럼 음악이 영화의 장면을 과장하는 형식으로 전락하거나, 뮤직 비디오처럼 영상이 음악의 조미료 역할을 할 뿐이다. 전설적인 록 밴드 롤링 스톤즈를 다루면서 롤링 스톤즈의 음악이 조미료가 된다면 작업은 무의미하다. 마틴 스콜세지는 알아주는 음악광이다. 1960년대부터 롤링 스톤즈를 들었다. 마틴 스콜세지는 말했었다. "롤링 스톤즈는 내 영화의 원천이 됐다. 자라면서 내내 롤링 스톤즈를 들었다." <샤인 어 라이트>에선 롤링 스톤즈의 음악과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가 나란하다.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의 시녀가 되지 않는다. 스콜세지는 일단 이야기의 틀을 벗어던졌다. 아무도 보지 못한 롤링 스톤즈의 뒷 얘기를 들려주겠다는 식의 다큐 저널리즘을 버린다. 대신 공연 순간 순간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와 로니 우드와 찰리 와츠의 표정과 몸짓과 노래와 땀방울을 담는다. 마틴 스콜세지는 <샤인 어 라이트>에서 화면의 편집마저 하나의 음악성을 갖게 만든다. 클로즈업과 롱샷이 박자에 맞춰 사용된다. 이야기는 없다. 아주 가끔 롤링 스톤즈의 옛날 인터뷰가 끼어들지만 시선은 오직 무대에 머물러 있다. 스콜세지가 롤링 스톤즈의 라이브 공연을 처음 본 건 1969년이었다. <샤인 어 라이트>는 40년이 지나 오랜 팬이 무대에서 다시 그들을 지켜보는 영화다. 단지 올려다보기만 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사랑한 뮤지션의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모든 걸 입체적으로 담는다. 롤링 스톤즈가 40년이 넘게 활동했고 멤버들이 환갑이 다들 넘었다는 걸 생각하면, <샤인 어 라이트>는 반세기 이후에도 롤링 스톤즈의 실황 공연을 보는 이가 체감하게 해 줄 유일무이한 자산으로 남들 게 틀림없다. 음악의 일회성이 영화의 영원성으로 극복된 셈이다. 어쩌면 마틴 스콜세지가 자신이 평생 사랑한 밴드 롤링 스톤즈에게 선사한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샤인 어 라이트
롤링 스톤즈는 비틀즈와 함께 브리티시 인베이전을 이끌었다. 비틀즈가 해체되고 죽어가는 한편에선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와 키스 리차드가 아옹다옹하면서도 자리를 지켰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지배했던 저항적이고 실험적인 유럽과 미국 대중문화의 유산은 롤링 스톤즈에 의해 보존되고 있단 얘기다. <캐러비안의 해적>의 조니 뎁은 짙은 눈화장과 치렁치렁한 머리 장식을 선보인다. 롤링 스톤즈의 기타리스트 겸 보컬인 키스 리차드의 풍모다. 급기야 <캐러비안의 해적> 시리즈의 마지막편에선 키스 리차드가 조니 뎁의 아버지로 깜짝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키스 리차드의 존재감과 조니 뎁 분장의 유례를 즐겁게 떠들어댄 관객은 많지 않았다. 한국 대중문화에서 롤링 스톤즈가 차지하는 무게감엔 한계가 있다. 대중문화는 가르치고 배워서 공유되는 게 아니다. <샤인 어 라이트>는 올해 베를린 영화제 개막작이었다. 마틴 스콜세지와 롤링 스톤즈의 만남은 베를린의 대문을 열 만큼 큰 사건이었다. <샤인 어 라이트>엔 롤링 스톤즈의 인기곡 'Jumping Jack Flash'를 들으며 촐랑대는 거장 마틴 스콜세지의 들뜬 기분이 배어있다. 그러나 그걸 공유하는 건 모두의 몫이 아니다. 공연이 끝난다. 카메라는 무대를 내려와 문 밖으로 나서는 롤링 스톤즈를 좇는다. 문 앞엔 작달막한 마틴 스콜세지가 서 있다. 잔뜩 흥분한 그는 어서 빨리 밴드를 따라잡으라며 카메라맨한테 소리친다. 마틴 스콜세지는 무척 행복해 보인다. <샤인 어 라이트>는 그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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