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선수의 속구(速球)가 왜 빠른가를 분석하기 위해 공의 회전 속도 분석은 물론 물리학까지 동원해 설명하는 게 일본의 야구 문화다. 일본 특유의 '현미경 야구'는 이처럼 열광적인 일본 국민의 야구사랑에서 시작됐다.
이런 바람이 극적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매년 프로야구 센트럴리그 한신타이거즈의 홈구장인 효고현 고시엔(甲子園)에서 열리는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 본선이다. 1924년 완공 직후부터 본선이 여기서 열리면서 이 대회는 통칭 '고시엔 대회'로 이름이 굳어졌다.
고시엔구장 흙을 밟을 수 있는 팀은 일본 전체 4000여개 고교야구팀 중 지역별 예선에 우승한 49개 팀뿐이다. 일본 특유의 애향(愛鄕)의식과 맞물리면서 이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모두 "혼(魂)을 던지고 신(神)께 기도한다"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한다.
세계 최대의 스포츠이벤트인 축구 월드컵 기간에도 축구 중계를 취소하더라도 고시엔 생중계를 감행할 정도로 고시엔의 의미는 각별하다. 베이징 올림픽 열기가 한창인 지금도 <요미우리신문> 산하의 <스포츠호치>의 야구면 톱기사는 고시엔 소식이다.
따라서 일본을 대표하는 투수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 레드삭스)가 1998년 대회 당시 8강전에서 연장 17회까지 250개를 투구한 일화가 이 무대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얘기다. 일생에 한 번 뿐인 대회기 때문이다. 대회가 끝나면 고시엔의 흙을 담아가는 행위는 이제 신성한 행사처럼 이어지는 관습이다. 일본 고교야구 대회가 열리는기간 동안에는 한신 타이거즈가 고시엔 구장을 비워주고 25박 26일의 원정을 뛴다고 한다.
고교 야구가 이 정도니 국가 간 대항전의 경우 일본 국민이 대표팀에 보내는 성원은 올림픽 다른 종목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다. 이번 올림픽의 경우 일본의 각 방송사는 베이징에서 처음 맞붙을 상대인 쿠바의 훈련 모습과 선수 면면을 살피기 위해 한국과의 평가전을 가진 쿠바팀에 대해 갖가지 상세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한 방송에서 쿠바 선수가 "솔직히 일본보다 한국이 강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하자 온 일본 언론이 나서 "국가의 명예를 걸고 쿠바를 꺾어야 한다"고 바람몰이를 하기도 했다. 베이징 출전에 앞서 대표팀을 이끄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선수 24명 전원에게 "한 여름의 베이징에 벚꽃을 피우자"는 자필 편지를 돌려 강한 국가의식을 표출했다.
과장 섞어 얘기한다면 '종교적 행사'이자 '국가적 스포츠'인 올림픽 야구 예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일본 대표팀이 지금 어느 정도로 궁지에 몰렸을지는 뻔하다.
특히 한국과의 경기 당시 9회초 어이없는 송구 실수로 패배의 결정적 원인을 제공했던 아베 신노스케(29)는 <니칸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전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데 대해) 밤새도록 반성했다. 수비도 나빴지만 배팅이 문제였다"며 특타를 자청했다고 밝혔다.
특타는 공식 훈련과 상관없이 개인이 자율적으로 하는 배팅훈련으로 일종의 반성문 의미를 지닌다. 아베는 당시 9회말 곧바로 이어진 공격에서도 찬스를 살리지 못해 일본 야구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했다.
또한 캐나다전에 앞서 일본 대표팀은 경기장에 승리를 기원하는 소금을 뿌리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스포츠호치>는 18일 경기 결과를 전하며 "대표팀의 아오키 신야가 타자석과 일본팀 타자 대기석에 소금을 뿌렸다. 다르빗슈 유와 카와사키 무네노리 역시 아오키에게서 소금을 건네받아 벤치 앞에 뿌리며 필승 의지를 다졌다"고 보도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소금뿌리기는 부정한 귀신이 물러가기를 기원하는 행위다. 결국 야구에 앞서 신(神)을 찾았다는 말이다.
신령이 다녀간 것일까. 일본은 캐나다에 1대 0으로 신승하며 올림픽에서의 마지막 야구 금메달을 향해 다시 전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한 듯했다. 호시노 감독은 경기 후 "타선이 1점 밖에 못 뽑았다. 나를 죽일 셈이냐"고 한숨을 쉬었다.
일본은 아직 '생활 야구'팀 미국과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 또한 토너먼트에 올라가더라도 국부(國父) 피델 카스트로가 메이저리그 선수를 꿈꿨던 '아마 야구의 제왕' 쿠바, 그리고 일본만 만나면 더 힘을 발휘하는 한국과 다시 맞붙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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