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장, 검찰총장 등 이른바 권력기관장의 임기 문제부터 국영 기업체, 문화단체, 연구기관 등 엄청나게 많은 인사들의 잔여 임기 문제가 있는데 국외자의 눈으로 보면 'Winner takes all'(승자독식)의 원칙이 적용되는 싹쓸이 판 같기만 하다. 으레 그러려니 여기다가 다시 생각해 보면 왕조시대 아닌 민주사회에서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는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처음에 화제가 된 것은 문화부 장관이 산하에 사표를 내라고 공개로 강압했다가 민예총 측으로부터 모진 표현의 반박 성명을 받은 때다.
그리고 가장 진통을 겪었고 나라 전체가 온통 시끄러웠던 것은 KBS 사장의 잔여 임기 전 사퇴 문제를 놓고서다. '공영' 방송의 문제이기에 이 문제는 매우 중차대한 것인데 이제야 거론하는 것은 "행차 후 나팔"격이라는 빈축을 받기가 십상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앞으로의 한국 정치사회를 위해 늦었어도 짚어 볼 일이다.
여기서 그 많은 케이스에 하나하나 의견을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연구기관의 장들까지 굳이 일괄사표를 받았어야 했느냐는 점은 짚고 넘어가고 싶다. 또한 정연주 사장의 경우에 관해서는, 예를 들어 언론사 간에도 흑과 백으로 의견이 확연히 갈라져 논쟁을 하고 있어 간단히 끼어들기가 어려우나 "정연주 KBS 전(前) 사장 체포"라는 제목이 신문 1면에 큼직하게 나는 그런 사태가 과연 정상이냐 하는 것이다. 마치 동네에 잘못 들어온 노루를 여기저기서 몽둥이를 들고 사냥하는 것과 같은 그런 풍경이다. 안 그런가. 일반이 편향은 인정하지만, '범죄'라는 느낌은 없는데 말이다. 우리 정치사회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진단해 볼 일이다.
다음 정권에서도 MB 정권에서 임명되어 갓 해임된 고위 인사가 즉각 "체포" 운운하고 기사화되는 사태가 벌어져도 괜찮겠느냐는 것이다. 악순환을 내다보는 듯 하다.
결론적인 말을 먼저 한다면 우리 사회가 민주사회를 지향한다면 다원 사회가 되어야 하고 대통령도 그런 다원 사회의 여러 지도자들 가운데서 여러 손가락 가운데 첫째 손가락으로 꼽히는 지도자 정도에 그쳐야 하는 것이다. 따져보자면 그 '대권(大權)' 운운하는 무심코 쓰는 표현부터가 왕조시대의 제왕을 암시하는 듯해 잘못 된 것이었다. '대권의식'이 정말 암적인 의식이다.
이런 일을 당하니 새삼 그레고리 헨더슨(Gregory Henderson)의 책 <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한국-회오리의 정치)(1968)이 생각난다. 헨더슨은 주한미대사관의 문정관을 지낸 한국통이며 관직을 떠난 후 한국 연구를 계속한 학자다. 책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말하면, 한국 정치사회는 원자화된 개인과 중앙의 권력중심(청와대) 사이에 중간매개집단(intermediary groups)이 매우 약하여, 밑으로부터 정상으로까지의 회오리 바람이 불고 있는 형상의, 취약하고 불안정한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니 지방자치의 강화, 각종 직능 조직의 활성화 등을 통해 중간매개집단들을 강화해 회오리바람을 잠재우자는 이야기이다.
공교롭게 필자가 그 책을 하버드 대학 출판부에서 나오기 전에 하버드 대학의 한국학 교수인 에드워드 와그너 박사에게 서평용으로 온 것을 입수해 <조선일보>에 신속히 소개한 일이 있다. 첫 소개일 뿐만 아니라 그 책이 30여년 후 우리말로 번역 출판되었기에 오래도록 유일한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관계하던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강원용 목사(지난 8월 16일이 2주기)에게 설명해 강 박사가 그 유명했던 '중간집단 교육'을 실시하는데 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여성, 농촌, 노동 등 분야로 나뉘어 대규모로 진행된 중간집단 교육은 매우 활발했고 성과가 있는 것이어서 드디어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일망타진되는 이른바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이라는 큰 시국 사건이 되었다. 정연주 씨의 <서울·워싱턴·평양>이라는 자서전적인 실감나는 책에도 그 사건에 걸렸던 이우재(국회의원), 장상환, 김세균, 황한식(교수), 한명숙(총리), 신인령(이대총장) 씨 등 제제다사의 이름이 일부 나온다.
헨더슨의 책은 한국정치를 분석한 책으로는 몇 권 안에 손꼽을 만한 훌륭한 책인데도 그것이 한국에서는 오래도록 번역이 안 된 채 지내왔다. 권위주의적 권력의 눈치를 보아서 그랬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일본에서는 1973년 <조선의 정치사회>라고 나왔고, 한국에서는 책이 나온 지 30년이 지나서야 2000년에 <소용돌이의 한국정치>라는 번역본이 한울에서 나왔다. 번역 출판 기념회에는 헨더슨의 부인이 미국에서 왔는데 이름의 중간에 von이 들어가는 독일 귀족 계통이다. 그때는 DJ 정권 때라 박준영 청와대 대변인이 나와 축하해 주었다. Vortex를 필자도 처음에는 '소용돌이'로 번역했으나 헨더슨의 뜻은 '회오리'에 있었다는 후문이다.
물론 헨더슨 책에 대한 비평에 들을 만한 것도 많다. 한국 사회는 가족이나 친족 중심의 사회인데 그것을 원자화된 개인의 사회라고 본 것은 잘못이 아니냐는 반론이 있다. (헨더슨은 해방 후 북쪽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예를 들어 서북청년단 등으로 활성화되어 권력중심을 향해 회오리를 일으킨 것을 관찰한 데서 영향을 받은 것 같다는 설명도 있다.) 또한 중간 집단을 강조하면서 왜 그 중요한 노동조합의 역할에는 소홀히 했느냐는, 그것은 그가 국무성 관료 출신이란 경직성 때문도 있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있다.
헨더슨과 관련해 마침 요즘 들어선 막강한 자리가 된 듯한 방송위원장을 지낸 김정기 교수가 <국회프락치사건의 재발견>이란 의미 있는 책을 두 권으로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도 헨더슨 책처럼 출판 전에 보게 되었다. 김 교수는 헨더슨이 1988년 66세로 타계하기 전 몇 년 동안 그와 친밀하게 지냈고 그가 남긴 여러 문서들을 볼 수 있어 헨더슨의 지적인 전기를 겸하여 책을 썼다.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국회의원 13명을 포함, 모두 15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죄로 기소되어 1심에서 최고 10년, 최하 3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고, 피고들이 이에 불복해 항소 중인 가운데 6.25가 터졌다. 이들은 북측에 의해 서대문 형무소에서 풀려났으며 서용길(徐容吉) 의원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원이 북한으로 끌려(?)간 뒤 역사의 망각 속으로 버려지고 말았다.
이승만 박사 측에 의한 "의회주의에 대한 쿠데타"라는 것이 헨더슨의 지적이라는 것이다. 필자 개인의 느낌으로는 서대숙 교수의 다른 비유를 빌려 두더지 둔덕(mound)을 산(mountain)처럼 침소봉대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지만…. 책의 부록으로 당시 미 대사관의 국회 담당이었던 헨더슨의 국회 프락치 사건 공판 기록과 에른스트 프랭켈 변호사의 법률 보고서가 첨가되어 있다.
헨더슨은 진보당 사건을 프락치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라면서 "이 재판이,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정치적 반대 세력에 대한 경고로 여겨진다는 사실은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1972)고 쓰고 있다. 우리의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사법 살인을 인정한 것은 2007년이니 35년이 지난 뒤이다.
김 교수의 책은 그 자체도 많은 새로운 자료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헨더슨의 책과 함께 읽어보면 한국 정치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얻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헨더슨의 책이 나온 지도 40년이 되었고 강원용 목사의 중간 집단 교육도 30년쯤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 사회는 다양성, 다원성이 존중되는 사회라고 볼 때 그러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아직도 중간 집단이 강화될 필요성을 느낀다. 그것이 소용돌이가 되었건, 회오리가 되었건 여하간 그러한 불안정성을 잠재워야 한다는 인식도 아직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권'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면 법령에, 정관에 규정된 임기들이 모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니…. 감사원장의 임기가 문제가 되었을 때 무심했다. 국립현대미술관장 등의 임기가 문제가 되었을 때 민예총이 발끈했다. 연구원장들의 임기가 문제가 되었을 때 '너무했다'고 탄식했다. KBS 사장의 임기가 문제가 되었을 때 모두 긴장해 주목했다. 아직도 신문에 나오는 대로 언론재단 등 임기 문제는 많이 남아있는 것 같고 말썽은 얼마간 더 계속될 것 같다.
바람이 센 바닷가 등에서는 방풍림을 조성한다. 사막지대에선 모래 바람을 막는 방사림도 설치하려 애를 쓴다. 우리 정치사회의 소용돌이, 회오리를 잠재우는 방풍림, 방사림 가운데 제도상 보장된 임기제의 존중 문제는 결코 작은 일이 아닐 것이다. 고도의 정치성이 있는 자리에는 앞으로 아예 입법기술로 해결해둘 수도 있을 것으로 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