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한을 풀었다"고 외치지만…
스포츠 중계를 볼 때마다, 북받쳐오는 갑갑함과 감정 이입을 방해하는 한심스러움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싶어 사전을 찾아보니 한(恨)이란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이란다. 심리학자 최상진은 한이 생겨나는 3대 조건으로 '①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았을 때, ②타인에 비해 현저히 결핍되어 고통을 받았을 때, ③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를 범했을 때' 등을 들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좋게 가져다 붙여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 중에 한을 풀었다고 말할 만한 경우는 특별히 부당한 차별 대우를 극복했거나(편파 판정), 결핍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을 받았거나(체중 조절),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결정적 실책)를 저지른 경우에만 써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글을 시작하기 직전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이효정-이용대 선수가 금메달을 땄다. 그 금메달은 다른 무엇보다 캐스터와 해설자들의 값싼 호들갑과는 달리 선수들의 세레모니는 훨씬 진화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쿨(cool)'한 즐거움을 선사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뒤 카메라를 향해 '므흣'한 윙크를 날린 배드민턴 이용대 선수는 너무 로맨틱했다. 그러고 보니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환한 웃음으로 사유할 만한 인터뷰를 들려준 역도 이배영 선수도 멋졌었다. 수백 번 공을 받아 넘겨 겨우겨우(!) 동메달을 따낸 여자 탁구 선수들이 부둥켜 안고 우는 모습은 신선한 감격이었다.
어찌 생각해보면 흔히 '한(恨)의 문화'라고 일컬어지는 사회에서 올림픽이란 '오랜 세월을 통해 형성된 한이라는 어떤 습속'을 공동체가 동시에 뛰어넘는 훈련일지도 모른다. 세대가 흘러갈수록, 그 훈련의 경험과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우리의 올림픽도 극대화된 신체적 즐거움의 향유로 풍성해질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그런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기도 하다. 이용대 화이팅!
정말, 문이 닫히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올림픽은 4년에 단 17일 뿐이다. 이번 올림픽도 이제 그 절반을 돌아서고 있다. 유독, 대회 초반부에 금메달이 집중되었고, 이제 남은 절반에서 금메달을 기대할 수 있는 종목은 태권도와 체조 정도가 될 것이다. 아직도 별 탈 없이 달리고 있는 유일무이의 마라토너 이봉주 선수의 경기가 마지막으로 이번 주면 '중국 100년의 꿈'이라고 요란을 떨던 올림픽의 문도 닫힌다.
올림픽이 닫히는 것이 다소 아쉬운 당연함이라면, 괴담처럼 떠돌았던 '올림픽 기간에 '2MB'가 한국 사회의 문을 닫을 것'이란 소문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은 정말 참혹한 안타까움이다. 정말, 문이 닫히고 있다. 문이 닫히는 것을 막아 보고자 '슬프도록 아름다웠던' 100여 일이나 촛불을 들어봤지만, 어느 구전동요의 가락처럼 우리 사회의 시계는 이제 확실히 12시를 지나고 있다.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되어야 할 저널리즘은 '경영'의 논리에 할퀴어지고, 사회적 공기라고 일컬어지는 공영방송은 '이사'라는 오염물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월 15일 안국역에서 경복궁역까지, 광화문역에서 광화문까지 길은 종횡으로 또 끊어졌다. 이른바 '건국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왜 갑자기 '광복'이 아니라 '건국'일까, 또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 몸살을 앓았어야 했던 것일까?
역사에 문외한이라 역사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잘 모르나, 생의 감각은 그것이 아마도 사소한 것이든 정치적인 것이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상관없이 거리낄 것 없이, 그 무엇이라도 '국가'만이 통제와 호명의 힘을 갖는 바로 그런 사회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신호로 벌써 받아들이고 있었다. 금메달의 환희에 격앙되었다고, 온 국민이 바보가 되는 것은 아닐텐데, 올림픽 기간 중에 2MB는 너무 많은 일을 저질렀다.
향연은 끝끝내 한(恨)이 될지도 모른다
개인은 약소하여 무엇이 옭고 그른지 전혀 알 길이 없는 사회. 강인한 국가만이 모든 대답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리를 갖는 사회.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했던 바로 그 해, 1945년에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피해 뉴질랜드로 망명했던 칼.포퍼라는 유대인이 영국에서 출간했던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규정하고 있는 '닫힌 사회'의 모습이다.
정부 수립 60년 동안 이뤄낸 개개인들의 경제적 약진과 병목 현상 없이 첨단의 정보통신 사회로 진입한 선택에 대한 감격이 '금메달'이란 실체적 물질로 표상되어 넘쳐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올림픽이 끝나면 우리 모두는 눈을 질끈 감고 피하는 것 외엔 어찌할 방법이 없어 망명길에 올랐던 칼.포퍼의 신세가 될 지도 모른다.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 파시즘의 사회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올림픽이 우리의 일상적 우울함을 단절했다면, 그 올림픽 기간에 2MB는 부분적이되 지속적으로 사회 개혁을 시도해왔던 점진적 사회 공학을 해체했다. '열린사회'를 '닫힌사회'로 바꾸었다. 어느덧 YTN의 낙하산(구본홍)이 자리를 잡았다. 한국방송(KBS)은 사장을 해임하고 후임 사장 인선에 들어갔다. 문화방송(MBC) 경영진은 저널리즘의 최소한을 포기했다. 국회는 한나라당 홀로 연다고 한다.
흔히들 방송을 '사회적 공기'라고 한다. 이번 올림픽에선 베이징의 오염된 공기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다행히도 그 공기가 올림픽에 직접적인 해악이 되고 있지는 않은 듯싶다. 이번 주 올림픽이 끝나고, 올림픽 몰입 편성이 걷히고 나면 이제 본격적으로 오염되어버린 '사회적 공기'의 무서움이 심장과 허파를 압박해 올 것이다.
남아 있는 한 주의 향연을 마저 즐길 것인가. 그런데 어쩌면 그 향연은 끝끝내 한(恨)이 될지도 모른다. 이명박식 법이 부자가 아닌 당신을 차별 대우 할 것이고, 부동산이 없는 이들은 그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시작 될 것이고, 이 모두를 외면한다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가 될 것이다. 호소하는 심정으로, 역설적으로 던진다. 이번 주의 열쇳말은 바로 한(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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