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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는 여전히 '노예'허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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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허가제는 여전히 '노예'허가제?"

이주노동행동 "고용허가제 시행 4년째, 브로커 통한 '송출 비리'는 여전"

산업연수생제도가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에 따라 정부가 이주노동자 고용 정책을 고용허가제로 바꾼 지 올해로 4년째다. 하지만, 정부의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고용허가제는 곳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05년 고용허가제가 첫 시행될 당시, 미등록 이주 노동자에게 3년 간의 체류만 허용했었다. 하지만 시행 후 3년이 지난 지난 2007년 당시, 미등록 이주노동자 수는 23만여 명. 정부는 고용허가제 때문에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줄어들고 2007년에는 4만 명의 미등록자가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예상 수치의 5배를 넘어섰다.

또, 사업주의 편의를 도모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여전히 인신 구속적인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36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차별 철폐와 인권·노동권 보장을 위한 공동행동(이하 이주노동행동)은 13일 오전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평가와 달리 고용허가제는 그 제도 자체에 매우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며 현행 고용평가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모든 이주노동자에게 노동권을!" 이날 기자회견에 민주노동당 이수호 최고위원, 이영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 사무처장, 장창원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운영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프레시안

사업주는 언제든 해고 가능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불가

이주노동행동은 "이 제도는 고용주들에게 100% 자유로운 해고를 보장하면서, 노동자에게는 직장 변경을 금지해 놓았다"며 "심지어 이주노동자가 고용주의 부당한 행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직장을 변경하려 할 때조차 사업주의 승인을 받아 오라고 요구한다"고 지적했다.

민변 소속 장서연 변호사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산업연수생 제도와 고용허가제가 본질적으로 얼마나 다른가 싶다"며 "이 제도는 사업주의 의사에만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근로 계약을 맺게 하는 등 사업주의 입장만 대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용허가제는 사업장 변경을 원칙적으로 금지해 놓고, 변경하더라도 최대 3회로 제한해 놓았다"며 "사업주에 종속적으로 매인 위치 때문에 저임금과 근로조건의 악조건을 감수하지 못하면 이 나라를 떠나라는 등 저임금과 종속적 위치를 강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주와 일산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을 상대로 상담 활동을 하고 있는 '아시아의 친구들' 김대권 사무국장도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의 직장 이동 권리를 제한하고 있다"며 "계약 기간 내 산재·임금 체납·사업장이 문을 닫는 등 노동자의 귀책사유가 발생하지 않는 한 사업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옮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캄보디아에서 온 한 노동자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구타가 일상적이어서 견디기 어려웠지만, 사업장을 옮기는 것이 불가능했다"며 "하지만, 그는 결국 옮겼다. 한 달 동안 고의로 일을 못하는 척하며 불만을 표시하니 그때야 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을 허락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개월 안에 새 사업장 못 구하면 강제 출국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주노동자가 어렵사리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돼도 2개월 내에 직장을 잡지 못하면 추방당해야 한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형편없는 일자리라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김대권 사무국장은 "2개월 안에 직장을 잡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앞서 말한 캄보디아에서 온 노동자는 노동부의 구인 리스트의 7~80%가 부산, 울산에 몰려 있어 파주에 살면서 부산·경남 등지로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확실히 취업이 보장되지 않는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새로 구하는 직장의 사업주도 직장을 이동한 경험이 있는 노동자를 피한다. 그런 사람 오면 또 옮기려 한다는 것이다"면서 "이런데도 2개월 내에 못 구하면 출국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부의 고용지원 센터 직원이 때론 편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병원에 가서 10만 원 정도 주면 진단서를 끊을 수 있으니 끊어 오면 연장해 주겠다고 그들이 말하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전히 이주노동자들은 인권 침해 사업장에 메여 있고, 이런 비현실적 제도로 말미암아 편법이 난무하다"고 지적했다.

또 이주노동행동은 "고용허가제 시행이 4년째이다 보니 정해진 3년의 기간이 만료된 이주노동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며 "이들이 재입국하려면 마지막 사업장의 사업주의 승인이 있어야 하므로 사업주가 이것을 빌미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강요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대권 사무국장은 "실제로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체류 3년째 되는 해 근무한 사업장의 사업주에게 퇴직금도 안 받고 다시 들어오겠다고 해서 겨우 재취업 허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가족과 생이별 강요 당하는 이주노동자

이 밖에도 그는 "정부는 영구 체류 위험 때문에 이주노동자는 가족결합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며 "3년 동안 가족과 생이별해야 하는데,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한국이 이주노동자의 가족은 무시한다. 이 때문에 이주노동자들은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꼬집었다.

또, 정부는 애초 고용허가제 도입으로 송출 비리를 없애거나 대폭 줄일 수 있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입국 과정뿐 아니라 구직 과정, 계약 연장 등 거의 모든 단계에서 브로커들이 대거 생겨나고 있다. 이주노동행동은 "지금도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들어오려고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게는 1천만 원 이상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주노동자는 월급만 받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이다"

이주노동행동은 "이 문제들은 모두 고용허가제라는 제도가 이주노동자에게 차별을 감수하도록 강요하고, 무엇보다 사용자에게 극도로 종속시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원천 봉쇄하기 때문이다"고 비난했다.

이주노동행동은 "이주노동자는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며 모든 노동자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을 비롯한 차별 없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며 "고용허가제 시행 4년을 맞은 지금 한국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김대권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30년 전 독일에서 고용허가제를 처음 도입할 때 그 당시 독일 총리가 '우리는 노동자를 수입했지만, 사람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월급만 주면 될 줄 알았는데 사람에게 필요한 욕구도 같이 들어왔다는 말"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은 3년 동안 월급 주고 이주노동자의 노동력만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인간의 기본적 권리를 누리게끔 한국 사회가 비용을 지불할 것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노동자들은 이주노조 탄압, 단속 추방 등에 시달리고 있다. ⓒ프레시안

▲이주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이 담긴 현수막. ⓒ프레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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