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가 해임을 제청하고, 대통령이 사인을 했지만 정연주 사장이 아직 해임된 것은 아니다. 그의 해임을 향한 정권의 의지는 강하지만 간단한 일은 아니다. 검찰은 주중에 정연주 사장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할 것이라고 흘리고 있다. 정 사장은 해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거라고 한다. KBS 사장 자리는 하나 뿐이다. 그 한 자리를 놓고 정연주, 이명박 그리고 우리 모두의 민주주의가 백척간두에 섰다.
KBS의 떨림으로 민주주의를 느끼게 하라!
백척간두라고 했는데, 방송은 사회적 공기라고 하는데, KBS는 스스로를 공영방송이라고 하던데,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도통 모르겠다. "정치적 독립은 KBS의 생명! 총단결로 낙하산 사장 막아내자!"는 깃발은 보이는데 기다리는 기자, PD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간단한 산수로 셈하면, '구체적 공간'과 '실체적 인물'이 있는 경우 투쟁은 여러모로 유리하다. 그 유리함의 단 하나의 전제는 구체적 공간의 실체적 인물들이 움직이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 단 하나의 전제가 성립되지 않으면 투쟁 자체가 완전히 불가능하다. 지금 KBS의 상황이 딱 그렇다. 'KBS'라는 구체적 공간과 수만에 이르는 실체적 주인이 있으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 움직이되 움직이지 않는 것만도 못하게 움직이고 있다.
굳이 KBS 노조의 얘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지금 KBS 안에는 '1/3은 방관하고 있고, 1/3은 KBS 장악을 돕고 있고(그래서 방관하는 사람만 못하고), 1/3만 KBS 독립을 위해서 싸우고 있다'는 자조가 있다고 할 정도이니 더 이상 보탤 말도 없을 것이다.
이러면 못 이긴다. 아니 차라리 져도 싸다는 욕을 먹기 딱 좋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배이자 세상을 진심으로 대하는 어느 미디어 '활동 연구자'(activistic researcher)는 공개적으로 그들(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최상재, 방송장악·네티즌탄압저지범국민행동 성유보 상임위원장, 박성제 언론노조 MBC 본부위원장)이 끌려갈 때 술을 먹었다고 고백했다.(미디어스, <그들이 끌려갈 때도 나는 술을 먹었다>) "본관 안에 수백명의 경찰이 들어와도, 촛불이 짓밟혀도 코빼기라도 비치는 구성원들이 수십 명도 안 되는 저런 조직에 아무런 동정과 공감을 느낄 수 없다"는 절절한 고백이다.
자, KBS여 세상이 그대들에게 묻고 있다.
모든 것이 해체되고 붕괴되어도, 그대들의 월급 명세서만 여전하다면 무엇에도 기꺼이 눈을 감아줄 수 있는 돼지가 될 것인가? 아니면 KBS의 떨림으로 민주주의를 살아 있게 할 것인가? 선택에 따라 월급 명세서를 제외한, 그 밖의 모든 것들이 바뀔 것이다.
그래도 사장님 만세는 아니다!
이사회에서 사장 해임 제청안이 통과됐던 날, KBS앞 촛불집회에 갔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정연주 사장님 만세!'를 외치고 '신태섭 만세!'를 외치던 그 날의 광경은 거칠게 말하자면 좌파 신자유주의만큼이나 이질적으로 묶여 있는 '친북좌파'라는 단어 조합이 여전한 위력을 갖는 빌미를 보았고, 순화해서 말하자면 2008년 촛불 이전의 집회 문법이라 고루했다.
그날 집회는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를 회의하게 했다. 아니 우리가 같은 승리를 꿈꾸고 있기는 한 것일까 막막했다. 정연주가 사장을 계속하는 것만이 승리라면 동의할 수 없다. 정연주의 진퇴는 부분일 뿐이다. 감사원의 논리가 빈약하고, 검찰의 행태가 저열하고, 정권의 음모가 거칠다고 해서 운동까지 단순하고, 품위없고, 협소해서는 안 된다. 그날 촛불문화제는 확실히 답답했다.
정연주가 사장을 계속 해야 하는 표현이 '사장님 만세'여서는 곤란하다. KBS 이사였던 신태섭 교수가 연단에 올라서 '정비어천가'를 불러서는 정파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처음부터 조중동이, 뉴라이트가, 이명박 정권이 정연주를 겨냥했던 것은 그 자체가 너무나도 노무현 친화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파에 맞서는 정파성이 그에게 걸려있던 저주였다.
이 저주를 풀기 위해서 다시 정파적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운동에 대한 자해에 가깝다. 코드인사라고 불리던 인물들이 아무리 비장한 얘기를 해봐야 자리를 잃은 자의 성토로 밖에 안 들린다.
우리의 승리는 공영방송이라는 민주주의 틀을 지켜내는 것이다. 그 틀을 지킬 수 있다면, 누구라도 버릴 수 있다는 결연한 채비를 갖추고 싸움에 임해야 한다. '정연주가 남이가' 하는 패거리즘은 지켜내야 하는 가치를 혼동케 할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보 '사장님 만세'를 외치는 풍경은 아니다.
여기는 정연주를 위한 나라가 아니다!
검찰도 할 일이 많으리라고 믿는다. 감사원 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안정국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하는 국가의 어느 한 꼭짓점에 모든 것이 몰려있는 체제에서 정권의 필요에 따라 '공안'은 언제나 계속된다. 그래도 최소한의 진일보, 품격은 있어야 한다. 이건 해도 너무한다. 대학, 감사원, 행정부, 경찰, 검찰까지 동원되어 정연주 잡기에 전력하는 꼴이다.
관습법과 같은 상식 밖의 법 논리가 동원되지 않는 한, 정연주 해임은 위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임명권자에게 당연히 해임권이 있다는 설명은 관습법 적인 우기기라 다소 불안하기는 하다. 통합방송법에 '임명권'을 주지 않은 것은 이후 다른 기관장 인사에 많은 영향을 미쳐왔다. 결정권자의 전횡을 제어하는 법적 형식의 모법이 되어왔다. 민주주의는 그렇게 느리지만 표류하지 않고 꾸준히 진전해왔다.
어느 대학의 교수가 '조중동=수구신문'이라는 용법을 대중화한 정연주라는 저널리스트의 포퓰리즘을 비판할 수 있다. 감사원이 정연주의 경영 방식이 비즈니스 프랜들리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권고할 수 있다. 방통위와 문화부가 KBS에 대한 관리 감독을 강화할 수 있다. 이 정도라면 다소 몰상식하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를 정치적 문화로 갖고 있는 사회에서 논쟁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경찰이 기간 방송 로비에 들어가고, 그 방송사 사장을 출국금지하고 체포 영장으로 협박하는 것은 나라가 아니다. 공화국의 폼이라기에는 너무 원시적이다. 여긴 정연주를 위한 나라가 아니지 않은가?
올림픽이 불러일으키는 원초적 흥분과 100번째 촛불까지 겹쳐 긴 한주가 될듯하다. 이번 주의 열쇳말로 '정연주'를 뽑았지만, 부디 '정연주'를 위한, '정연주'에 의한, '정연주'만의 한 주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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