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승인과 관계없이 지부 교섭에 나선다"는 현대차와 "현대차 접근안은 부족하다"는 금속노조의 갈등은 이것으로 일단락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는 "향후 5년 동안 지속될 암울한 산별교섭의 서막"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차와 같은 대공장 조합원들의 '전투적 조합주의'가 산별노조 아래서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기 때문이다. "산별 교섭의 진전을 위해서라도 금속노조가 중앙 교섭의 성사 여부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금속노조 "'현대차안', 승인은 안 하지만 인정은 한다"
금속노조는 지난 10일 "현대차 노사의 의견접근안을 존중한다는 결정을 내렸다"면서도 "인정은 하되 승인하지는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노사의 중앙 교섭안에 대해 "부족하다"는 입장이었던 금속노조가 한 발 물러선 것이다. (☞관련 기사 : 금속노조 vs 현대차지부, 산별 중앙교섭 놓고 대립)
금속노조는 "이는 현대차 노사의 임단협 지부 교섭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최종적으로 다시 검토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금속노조는 "현대차지부의 어려운 사정을 공유하는 가운데, 조직적 내부 단결을 위한 중앙쟁대위원 전체의 노동조합에 대한 충정이 담긴 결정"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번 결정은 "올해 산별 교섭에 대한 금속노조의 가이드라인은 지켜야 한다"는 원칙론과 "중앙 교섭만 4개월째 이어지면서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현실론 사이에서 금속노조 지도부가 우회적으로 현실론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산하 최대 조직인 현대차지부가 "승인 여부와 관계없이 중앙교섭은 이것으로 일단락 짓고 지부교섭에 들어간다"며 강한 반기를 들며 금속노조 지도부를 압박한 것이 성공한 셈이다.
"최소한 GM대우 수준은 했어야…철저히 노사 담합으로 끝난 셈"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를 놓고 "철저히 노사 담합으로 끝난 것"이라고 혹평했다. 현대차 노사가 담합으로 중앙 교섭 관련 의견 접근안을 내놓았고, 이를 금속노조가 승인도 거부도 아닌 모호한 결정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어차피 금속노조의 산별 교섭이 한두 해에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5~10년의 긴 여정을 위해 올해 목표가 어디까지냐는 점을 봤을 때 최소한 GM대우 노사합의안 수준을 했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GM대우 노사의 중앙 교섭 관련 의견 접근안은 △산별 기본 협약 수용 △사용자 단체 가입 및 개편 논의 △올해 중앙 교섭 조인식 참가 등이었다.
금속노조도 올해 산별 교섭을 시작하며 "중앙 교섭 타결 없이 지부 교섭은 없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GM대우 노사 의견 접근안을 결국 승인한 이후 "GM대우 수준은 돼야 한다"는 내부적 가이드라인을 정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현대차지부가 그보다 못한 현대차의 제시안을 전격 받아들이고 "승인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담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이다. 10년 만에 '휴가 전 임단협 타결'이라는 원칙이 깨진데다 휴가 이후에도 중앙 교섭에만 매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지부 조합원 정서가 급격히 나빠졌다는 자체 평가가 나온 것이 이번 담합의 1차적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결국 임금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조합원 정서에 노조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번 사태가 향후 금속노조에 미칠 영향이 간단치 않은 것은 바로 이 지점 때문이다. 단순히 금속노조가 요구하는 산별 중앙 교섭에 완성차 4사가 참여하느냐 마느냐를 넘어 "산별노조로서의 컨텐츠와 진정성이 있느냐"는 근본적인 물음이 다시 제기되는 것이다.
"올해 목표는 실패…향후 전망도 말 그대로 어둡다"
15만 대형 산별노조로 거듭나고자 하는 금속노조의 전망이 어두운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일단 올해 산별 중앙 교섭에 완성차 4사의 참여는 불투명해졌다. 현대차그룹인 기아차도 비슷한 수준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완성차 4사를 반드시 중앙 교섭 테이블로 끌어내겠다"는 금속노조의 올해 목표는 실패한 것이다.
비록 올해 10월부터 산별 교섭과 관련된 여러 문제를 논의하는 협의체를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첫 대결에서 밀린 금속노조의 요구가 어느 정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 시각이 많다. 장기적으로도 암울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대차 그룹이 금속노조 전체에서 차지하는 조합원 비중은 60~70% 수준이라는 것이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따라서 현대차지부가 산별노조를 위해 자기 기득권을 나누겠다는 생각이 없으면 산별노조는 못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기에 현 정권의 성향도 암울한 산별 교섭 전망에 힘을 보태고 있다. 과거 10년과 달리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 이미 5년차에 접어든 보건의료 노사의 산별 교섭도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다. "더 발전되는 것은 차치하고 작년까진 되던 것마저 안 된다"는 푸념이 나온다. "현대차가 GM대우 수준은 내놓을 것"이라는 업계 안팎의 관측이 뒤집어진 것도 "정부 차원의 압박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조심스런 의혹도 제기됐다.
향후 5년 간 이명박 정부 아래서 금속노조의 산별 교섭은 가시밭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현대차지부가 자기 기득권 내놓을 생각 없으면 산별노조는 못 하는 것"
전문가들이 다시 원론적인 충고를 내놓는 것은 그래서다. 조성재 연구위원은 "교섭 구조라는 형식에 집중하기보다 각 지부 간 노동자 간 연대 의식 확립이라는 내용에 더 많은 고민을 쏟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기득권을 가진 노조가 어느 정도로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를 끌어안고 가겠다는 진정성이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조 연구위원은 특히 "현대차지부와 같은 대공장 조합원들이 자기 것을 내놓고 사회적 기반을 넓히기 위해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못하면 현대차지부가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것 뿐 아니라 전체 노동운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산별노조의 중앙 집중성과 조합원들의 정서라는 현장성 사이의 괴리"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금속노조가 지금이라도 균형점을 찾기 위한 치열한 내부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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