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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영화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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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영화제에 대하여

[오동진의 영화갤러리]

* 이 글은 영화주간지 무비위크 339호에 실린 글로 일종의 Author's cut, 곧 저자판이다. 분량이 넘쳐 일부가 삭제된 원본을 그대로 전재하는 것임을 밝힌다. - 편집자
1997년 대선 때였을 것이다. 진행자가 갑작스럽게 비는 바람에 졸지에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 사회를 보게 됐다. 부산영화제의 인기가 한창 치솟고 있었고 너나 할 것 없이 정치인들이 개막식 현장에 몰려 들었다. 당시 대선 후보는 새정치국민회의의 김대중 후보와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도 영화제를 찾았다. 대선은 두달 남짓 남은 상황이었다. 당시 부산 시장은 한나라당 소속의 고 안상영 씨. 부산영화제 조직위원장이기도 했다. 여는 영화제처럼 부산영화제 역시 개막식은 조직위원장의 축사와 개막식 선포로 시작된다. 사회석 연단 주변 무대 아래에 있던 김지석 프로그래머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조직위원장의 축사가 안상영 시장의 웃옷 오른 쪽 포켓에서 나오느냐, 왼쪽에서 나오느냐가 굉장히 중요했기 때문이다. 어느 한쪽의 축사 멘트에 '존경하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님'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시장이 설마 두장의 축사를 들고 있을리 만무했을 것이다. 이윽고 시장이 웃옷 안주머니에서 축사를 꺼내 들었다. 그가 축사를 읽어 내려가는 순간 무대 아래에 있던 김지석 프로그래머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우려했던 대로 존경하옵는..으로 시작하는 인사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게 그리 대수인가, 생각해 보면 부산영화제는 부산이라는 특수한 지역구에서 열리는 행사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10년전의 부산영화제는 어느 한쪽의 정치 논리가 영화제를 지배하는 것을 극력 경계했었다. 영화제는 영화제일 뿐, 특정 정치집단을 지원하는 모양새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회창 후보든 김대중 후보든 인파가 집중적으로 몰리는 남포동 무대에 오르려고 했을 때 김동호 위원장을 비롯한 영화제 스탭들이 거의 육탄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을 정도였다. 다소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만큼 영화제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행동이었다. 생각해 보면 영화제란 순혈주의자들이 만들고 지켜야 성공하는 법이다. 부산영화제가 초기부터 성공한 것은 어쩌면 그 같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산영화제가 추구하는 정치적 중립의 전통은 아직까지도 지켜져 오고 있다. 물론 지난 해 대선 때는 각 후보가 레드 카펫을 밟고 들어가는 장면들이 속출돼 스타일을 살짝 구기긴 했지만 부산영화제는 여전히 정치판 그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행사로 이름이 나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가 걱정스럽다. 좀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의심스럽다.' 조직위원회 내에 구성된 고문들의 면면들 때문이다. 이 영화제의 고문은 총 4명이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충무로영화제가 열리는 서울 중구가 지역구다.) 오영교 동국대 총장.(동국대 역시 중구에 있다.) 신영균 영화배우협회 명예회장.(신 명예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옛 명보극장 건물이 중구에 있다.) 그리고 정진우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이건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사무실이 충무로에 있을 듯 싶다.) 기획위원장인 차승재 씨는 동국대 영상대학원 원장이고 기획위원 가운데 한명인 윤동규 씨는 동국대 대외협력실장이다. 이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마치 현 정부의 강부자 내각, 고소영 라인을 연상시킨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이자 편향된 시각이라고 할까? 명실공히 국제영화제를 지향한다면 의도적으로라도 폭넓은 인선을 했으면 얼마나 모양새가 좋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이 분들이 사실은 이름만 걸고 영화제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어느 리셉션 현장에서 한꺼번에 무대에 오른다고 상상해 보라. 오히려 그 모습이 편향돼 보이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불행중 다행으로 충무로영화제의 상영작품 라인업은 꽤나 고심한 흔적이 눈에 띈다. 보기 드문, 그래서 정말 영화제다운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프로그래밍에서만큼은 영화제로서의 순혈주의적 정서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마저도 살짝 빛이 바랬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한때 그런 말이 유행했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고. 충무로영화제를 보면 지원을 하는 만큼 모양도 내겠다는 과시욕 같은 게 느껴진다. 그것도 잃어버린 10년을 채우려는 의도때문인가. 참 답답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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