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다. 대개가 호가호위 하면서 대통령과 대통령 부인을 팔았다. 검찰이 수사해서 밝혀내고 법원이 판결로 확정한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건은 대개가 그랬다.
그런 점에서 청와대는 고개를 숙일 필요가 있다. 대통령 부인 사촌언니인 김옥희 씨가 청와대를 들락거린 적이 없다며 출입기록을 내놓는 게 우선이 아니다. 대통령 부인과 김옥희 씨는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 왕래도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일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호적이 정리되는 것도 아니고 연줄이 부정되는 것도 아니다. 둘의 관계가 어떠했든 세간은 '사촌지간'으로 바라보게 돼 있다.
청와대가 가장 먼저 할 일은 친인척 관리에 허술했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경위가 어떻든 김옥희 씨가 자신의 신분을 팔고 다니도록 방치한 책임은 청와대에 있다.
이건 당위다. 청와대가 일단 짊어져야 하는 도리이자 무조건 행해야 하는 의무다.
이 점을 확인하면서 넓히자. 논의 범위를 당위에서 실제로 넓히자. 이번 사건이 대통령 부인 사촌언니가 등장하는, 단순한 '대통령 친인척 비리'에서 한 발 더 나가 '권력형 비리' 성격을 갖고 있는지를 짚어보자.
차명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아니라고 했다. 청와대가 먼저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한 점을 들어 "언론과 야당이 의혹을 제기하고 청와대가 부인하다 검찰이 수사에 나선 과거 권력형 비리와는 성격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논점에 부합하지 않는다.
권력형 비리 여부를 재는 기준은 사건 공개과정이 아니다. 그건 단지 사건의 파장을 좌우하는 요소에 불과하다. 차명진 대변인의 주장을 '논점 일탈'로 규정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차명진 대변인이 제시한 정황이 정반대로 해석될 소지도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김옥희 씨 사건을 '발굴'한 게 아니라 '포착'한 것이다. 시중에 그런 '설'이 도는 것을 포착해 조사한 것이다. 이 사실을 뒤집으면 청와대가 먼저 수사의뢰를 하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청와대가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선수를 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청와대의 수사의뢰는 그리 중요한 정황이 아니다. 본질적인 문제는 이번 사건에 권력의 영향력이 작용했는지, 아니면 최소한 권력이라고 믿고 '알아서 기는' 행위가 벌어졌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이게 '권력형 비리' 여부를 재는 기준이다.
현재로선 알 수 없다. 권력 행사 여부를 가늠할 척도가 없다.
일단 눈에 들어오는 건 '아닐' 가능성이다. 김옥희 씨에게 30억 원을 건네며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고자 한 김종원 서울시 버스운송조합 이사장이 공천에서 탈락한 게 모든 정황을 압도하는 측면이 있다. 권력의 힘이 작용했다면 과연 공천에서 탈락했겠느냐는 물음에 반대 답변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하나의 정황만을 놓고 '아니다'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정반대의 정황, 즉 '번호'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김옥희 씨로부터 먼저 비례대표 제안을 받았다가 공천대가가 부담이 돼 사양한 이모 서울시 의원, 자기 대신 김종원 이사장을 김옥희 씨에게 소개한 이모 서울시 의원의 말에 따르면 '14번'이었다고 했다. 김종원 이사장과 김옥희 씨 모두 비례대표 공천결과가 발표되기 직전까지 김종원 이사장이 비례대표 '14번'을 받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했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 누군가로부터 약속을 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아주 구체적으로 당선안정권 순번을 약속받았다는 얘기가 된다.
추가로 검토해야 할 정황도 많다. 'MB 교통맨'으로 알려진 김종원 이사장이 굳이 김옥희 씨에게 30억원이란 거액을 바쳐가며 공천을 따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거꾸로 잘 나가는 집안엔 객이 꼬이기 마련이므로 'MB 교통맨' 완장만 갖고 과연 공천을 따낼 수 있겠느냐는 정반대 의문도 나온다.
'먹고 튀자'는 사기사건의 특성과는 달리 한 달 뒤에 25억원을 돌려줬는데 어떻게 이걸 단순 사기사건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나오지만, 정반대로 공천을 완전보장하지도 못하는 사람이 돈부터 챙긴 게 사기 아니면 뭐냐는 반문도 나온다.
하지만 일일이 짚을 수 없다. 낱낱이 밝혀낼 수사권이 없다. 하나로 좁히자. 다시 돌아가 '공천 탈락'과 '14'번에만 집중하자.
정반대 현상이 나타났던 이유가 뭘까? 혹시 김옥희 씨가 '14번'이라고 거짓말을 했던 걸까? 하지만 이 사실을 전한 이모 서울시 의원의 말은 다르다. 김옥희 씨가 그렇게 '말했다'가 아니라 그렇게 '믿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 였을 가능성이다.
'14번' 일보직전까지 간 것도 사실이고, 그랬다가 '공천 탈락'으로 귀결된 것도 사실일 수 있다. 권력이 단일집단이 아닌 한, 권력 내부의 암투와 경쟁이 다반사로 진행되는 게 엄연한 사실인 한 두 현상이 시차를 두고 나타났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막연한 가능성이다. 그것도 뇌리 속에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단순 가능성일 뿐이다.
지금은 추정할 때가 아니라 조사할 때다. 김옥희 씨가 김종원 이사장에게 돌려주지 않은 5억원의 행방을 추적하는 게 긴요하다. 그러면 나온다. 그 돈이 김옥희 씨 장롱 속에 있었는지, 아니면 어떤 이의 지갑으로 들어갔는지가 나오고, 더불어 '14번'과 '공천 탈락'의 함수 관계도 밝혀진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김종원 이사장이 김옥희 씨에게 건넨 30억원은 전액 수표였다. 은밀한 '뒷거래'를 하면서 왜 현금이 아닌 수표를 건넸는지 의문이지만 지금은 이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반길 일이다. 수표는 추적이 가능하다. 검찰이 마음만 먹는다면 수표는 얼마든지 추적할 수 있다. 검찰 하기 나름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