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올라왔습니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서울 시청앞에 모였습니까. 오늘은 그냥 내려가지 맙시다. 목숨 걸고 우리의 요구를 관철시킵시다"
'성난 농심'이다. 강원에서 제주까지 전국 2만여명의 농민들이 서울 시청 앞에 모였다. 이들은 "우야꼬, 우야꼬"를 연발하며 쌀 추가개방만큼은 막아야한다며 분노를 표현했다.
***서울시청 앞, 2만여명 농민 집결 "쌀개방, 절대 안돼"**
19일 오후 (사)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회장 서정의) 등이 주최한 "우리 쌀 사수·농협개혁 촉구 3백50만 농민대회"가 서울 시청앞에서 열렸다. 쌀재협상 윤곽이 거의 드러난 현재, 농민들의 '쌀개방반대" 외침은 절박했다. 주최측인 한농연은 1천2백대 버스로 전국 3만 농민이 참석했다고 밝혔다.(경찰측 추산은 1만5천명)
오후1시부터 시작된 사전대회에 이어 본 행사가 2시부터 개최됐다. 노래패 우리나라의 흥겨운 노래공연, 사물놀이패의 풍물공연으로 대회를 시작했다.
서정의 한농연 회장은 대회사에서 "10년전 UR협상때 우리 농촌을 지키자는 비장한 결의로 열심히 싸웠다. 쌀 추가개방을 앞둔 오늘 다시 결의를 다질 때"라며 "농민생존권을 지키고 파탄난 농정을 되살리기 위해 목숨걸고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서 회장은 이어 "최소수입물량 대폭 늘리고, 추곡수매제 폐지하면 도대체 농민은 무슨 수로 농사지으란 말인지 모르겠다"며 "농민은 도시시민 평균소득의 60%밖에 안되는 빈민으로 전락한지 오래됐다. 정부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재돈 전국농민연대 상임대표는 연대사에서 "수확이 끝나 마음이 한껏 부풀어야 할 때, 농민은 깊은 비탄에 잠겼다. 초상집처럼 무겁고 불안한 마음을 기댈 곳조차 없다"며 "쌀 개방은 비단 농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고, 우리나라 식량 주권의 문제다"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또 "이미 창고마다 수입쌀로 가득찼다. 더 쌀을 수입하라는 것은 명백한 주권침해"라며 "식량주권은 하늘이 내린 것, 아무도 간섭할 수 없는 권리"라고 주장했다.
***"목숨걸고 싸워야 쌀개방 막을 수 있다"**
김형문 전국시민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여기서 노래 부르고, 깃발 흔들며 어영부영 해서는 쌀 개방을 절대로 막아낼 수 없다"며 "밀실에서 농민을 죽이는 협상을 하고 있는 정부를 끝장내기 위해서라도 목숨 바칠 각오로 싸워야 한다. 이대로 내려가서는 안된다"며 강력한 투쟁을 주문했다. 김 대표는 이어 "죽어서 선조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 후손들에게 뭐라고 할 것인가"라며 "오늘 우리의 요구를 반드시 관철시키고 내려가자"고 덧붙였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농민들은 연사들 보다 더 강한 결기를 보였다. 2만 군중이 모였지만 연설 동안 시종 진지했고, 구호와 함성은 수많은 여느 집회보다 크고 우렁찼다. 오히려 몇몇 농민들은 집회 주최측에 '연설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청와대로 몰려가자'며 항의를 하는 등 소란이 빚어지기도 했다.
집회 마지막에 상징의식으로 '상여'가 등장했다. 구성진 '진도 만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두개의 상여가 상여꾼의 어깨에 들려졌다. 제주에서 온 한 농민은 "저기에 바로 우리 마음이 담겨있다. 농민은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것과 매한가지다. 이 절박한 심정을 누가 아는가"라고 탄식했다. 충남 서산에서 올라온 또다른 농민은 "상여는 우리가 오늘 죽기로 각오했다는 의미다. 새벽같이 올라와서 그냥 내려갈 순 없다"고 결기를 보였다.
***경찰 물대포에 행진 무산**
결기는 결기로 끝났다. 서대문 농협중앙회와, 청와대 두 방면으로 나눠 행진은 시작됐지만, 청와대 방면은 시청 조차 지나지 못했다. 싸움에 익숙하지 않은 농민들은 분통과 탄식만 터뜨릴 뿐, 잘 정비된 전경들의 바리케이트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산발적으로 깃발대로 쓰인 대나무를 휘두르고, 보도블럭을 던지는 농민들도 있었지만, 경찰 물대포에 이내 움츠러들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농민들은 주최측이 제대로 싸움을 준비하지도 않고, 지휘도 하지 않는다며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저녁5시부터 농민들은 싸우지도, 그렇다고 자리를 쉽게 뜨지도 못하고 시청앞 도로위에서 서성이기만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