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다른 골목에서 이젠 다른 길을 찾을 수 없는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기륭전자 옥상 위에 세워진 단식농성장 위로 관을 올리며 내뱉은 탄식이다. 낭독문을 읽는 기륭전자 노동자도, 이를 지켜보던 많은 이들도 눈시울을 붉혔다.
기륭전자 여성노동자들이 농성을 시작한 지 1072일째, 그리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간 지 50일째가 되는 지난 30일 서울 금천구 가산디지털단지 내 기륭전자 앞에서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입관식이 열렸다. 목숨을 건 단식 과정에서 겪은 절망과 고통을 관(棺)에 담아 묻는 행사다. '죽음'을 상징하는 장례 행사를 통해 오히려 새로운 희망을 찾아보려는 몸짓이다.
"단식 49일 중인 사람을 체포한다니… 죽으라는 말이냐"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에겐 다른 길이 없었다.
재판부는 '불법파견으로 인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회사 측은 노동조합에 수 천만원의 소송비용을 청구해왔다. 단식에 들어간 지 40여 일이 넘었고 교섭이 한창 진행중인 때였다.
또 기륭전자 최동렬 회장은 단식 노동자는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경찰에게 농성자를 연행하도록 요구했다. 결국, 지난 29일 금천경찰서 수사 형사들이 체포영장을 들고 기륭 농성장을 덮쳤다.
이에 대해 기륭전자 여성 노동자들은 "죽음을 각오한 노동자에게 진짜 죽어보라고 사주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라며 "50일 가까이 굶은 사람에게 한다는 짓이 고작 체포 협박인가"라고 말했다.
이들은 "지금 필요한 것은 손배청구나 소송비용의 최고장, 체표영장이 아니다"라며 "사람이라면 대한민국이 야수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나라라면, 노동자들이 왜 50일 동안 굶고 있는지에 대해 듣는 게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또 "오히려 죽음을 각오한 이들에게 정말 죽으라고 몰아치는 것은 살인행위일 뿐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한나라당, 기륭전자, 노동부가 한 편"
회사 측과의 교섭이 23일 사실상 결렬되면서 상황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지난 23일 교섭석상에서 서울노동청장이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홍준표 의원과 기륭전자 최동열 회장이 만나 합의서를 작성해왔다며 노조 측이 수용, 불수용을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합의서의 내용은 제3의 회사로 고용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설회사 설립주체, 운영주체, 사업내용 등이 불분명했다. 고용도 정규직이 아닌 1년짜리 계약직이었고 조합원 전원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서 선발한 인원만 고용하겠다는 내용이다. 또 교육 기간을 포함하여 1년 5개월 뒤 정규직화 여부를 결정한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이 같은 내용은 기륭전자 노조원들이 지난 4년 동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해 왔던 것이다. 이들은 "노동조합이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을 기륭 사측이 뻔히 알고 있었을텐데도 한나라당, 노동부, 회사 측이 문구까지 정리해 온 것은 기만이다"라며 "노동부와 한나라당이 중재를 선다는 명목으로 회사 측에 힘을 실어주고 노동조합 죽이기에 나서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불법파견과 비정규직의 고통을 관에 담아 장사지내고 싶다"
지난 6월 7일 합의안이 마련됐을 때만 해도 이런 긴 고통의 시간이 끝나는 줄만 알았다. 당시 합의안은 1년의 유예기간이 지나면 정규직화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회사 내부에서 반발에 부딪혀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국제노동기구가 권고하고 다양한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호소했지만 여전히 기륭전자 측은 눈과 귀를 막고 있다. '얼마나 버티나 보자'는 생각이다. 기륭전자 노조원들은 50일 단식으로 얼굴에 핏기도,웃음도 사라졌지만 관을 올리며 다시 한 번 승리를 다짐했다. 시신이 되지 않는 한 단식 농성장을 절대 내려오지 않겠다고 굳게 뜻을 모았다.
"우리가 지금 관을 올리는 것은 이 관에 동지의 몸을 담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관에 불법 파견과 비정규직의 고통을 담아 장사 지내고 싶습니다. 기륭전자 노조가 걸어온 지난 4년의 세월. 자본도, 비조합원도 조합원도 그 누구도 행복할 수 없었던 세월을 담아 장사 지내고 싶습니다. 이기와 탐욕으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그 절박한 마음을 외면하고 탄압하는 낡고 잔인한 정권과 자본의 오만을 관에 담아 장사 지내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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