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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에서 길을 잃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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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에서 길을 잃다

[북앤시네마] 알렉산더 페히만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는 작고 비좁은 빠리의 고서점이다. 노란 간판이 예쁘다. 다리 하나만 건너면 시떼섬인데 그곳엔 네모난 노틀담 성당이 우뚝 솟아있다. 춘천엔 <겨울연가>의 주인공 준상이 살았던 가정집이 있다.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도 그런 곳이다.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의 책더미 여기 저기엔 무언가를 상상하며 기대하며 찾아온 누구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어떤 누구는 영화 <비포 선셋>에서 나왔던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를 기억했었고, 어떤 누구는 헤밍웨이가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에 남긴 글귀를 보러 왔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스물 세 살이 되던 1921년 빠리로 흘러 들었다. 그는 전업 작가를 꿈꿨지만 저널리스트로 끼니를 이어야 했다. 헤밍웨이는 매일 매일 쪼가리 기사를 써대며 빠리의 예술계를 굽신 기웃거렸다. 그 무렵 모더니즘 문학의 아지트였던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는 헤밍웨이가 즐겨 찾던 곳이었다. 그는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에서 스콧 피츠제랄드와 제임스 조이스를 만났다. 알렉산더 페히만이 쓴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은 그 무렵 청년 헤밍웨이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헤밍웨이는 작가가 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떨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빠리 오데옹과 셍 제르맹 드 쁘레 거리는 그의 놀이터였다. 글쓰기에 매달리겠다고 작심한 헤밍웨이는 아내한테 자신이 쓰다 만 원고를 들고 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내는 리옹 기차역에서 원고를 도둑맞았다. 헤밍웨이는 습작 원고들을 통째로 잃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헤밍웨이의 습작이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이제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헤밍웨이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에서 작가 페히만은 상상한다. 원고를 잃었던 순간 헤밍웨이의 표정이 어땠었을지 상상한다. 그 날 저녁 헤밍웨이가 빠리의 어느 바에서 술을 퍼 마셨을지 상상한다. 사라진 책들의 내용이 어땠을지 상상한다. 그건 고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에 들른 관광객들이 무언가를 기대하며 상상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곳엔 실제론 아무것도 없다. 줄리 델피도 없고 에단 호크도 없고 헤밍웨이도 없다. 그러나 상상하고 꿈꾸는 순간 무언가 생겨난다. 느낄 수 있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의 책들은 사라졌다. 그러나 페히만의 상상 속에서 책들은 줄거리를 얻고 뒷얘기를 갖는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엔 사라진 책들이 수북하다. 바이런 경의 은밀한 회고록은 불태워졌다. 카프카는 자신의 원고를 스스로 태웠고, 허먼 멜빌이 출판사와 계약까지 맺고 선인세까지 받았던 두 편의 소설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청나라의 탐험가 정화의 항해일지는 정치적인 이유로 종적을 감췄다. 페히만은 사회학과 심리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백경>을 쓴 허먼 멜빌과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에 관한 책을 썼다. 작가의 뒷얘기를 탐문하는 데 일가견이 있단 얘기다. 그는 방대한 자료로 사라진 책들에 대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사료가 뒷받침되지 않는 빈칸들은 상상력을 채워 넣어서 도서관을 꾸몄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은 우리가 읽지 못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이젠 전설이 돼 버린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자 동시에 사실과 허구가 만나는 팩션으로 짜여진 이야기다. 빠리 <세익스피어 앤 컴파니> 맞은편엔 초록색 벤치가 두 개 놓여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책을 읽거나 노트북을 두드린다. 관광객들은 그 자리에 앉아서 자신만의 상상과 낭만을 즐긴다. 상상 속엔 무언가가 있다. <사라진 책들의 도서관> 앞 벤치엔 작가 페히만이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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