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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난감한 당신…그래도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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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난감한 당신…그래도 떠나라"

[완군의 워드프로세서] 휴가

미국과 유럽 사회의 문화 차이를 설명할 때, 자주 사용되는 방식 가운데 하나가 '휴가' 문화를 비교하는 것이다. 미국의 휴가는 길어야 2주이고, 휴가지에 일을 가져가는 미국인도 흔하다고 한다. 반면, 유럽인은 보통 4주에서 6주 정도의 휴가를 보낸다. 동남아 등지를 여행하는 유럽인을 보면 아주 느리게 움직인다. 표현 그대로 옴팡지게 쉰다.

미국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스티븐 코비 지음, 김영사 펴냄)이 읽힐 때, 유럽에선 "회사에서 가능한 한 적게 일해야 하는 이유와 그 방법"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게으름아, 안녕?>(코린느 마이어 지음, 문학세계사 펴냄)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어느 사회의 우월함을 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을 종교적 신성함에 비유하며 노동의 윤리를 강조하는 사회와 노동을 거부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사회의 때깔은 분명 많이 다를 것이다.

정치, 언론, 종교, 학문, 문화, 기업에 이르기까지 사회 모든 분야가 완전히 '미국화'(<아메리카나이제이션>, 김덕호·원용진 지음, 푸른역사 펴냄) 되어있는 우리 사회에서 유럽의 휴가는 길어도 너무 길어서 사치스러움마저 한참 지나 노동을 거부하는 죄악으로 까지 느껴진다. '노동에 대한 찬미'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한국 사회에서 '휴가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정도의 범주로 받아들여진다. 일에 너무 지쳐 현실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낭만을 꿈꾸거나, 나이 등과 같은 사회적 규범들과는 상관없이 특별히 철이 안 들었거나.

그렇다. 한국의 도시인들은 특히 너무 심각하게 '노동하는 동물'(<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지음, 한길사 펴냄)로 살아간다. 이러한 상황에서 휴가는 말 그대로 잠깐의 일탈적 시간일 뿐, 결코 일상의 시간이 될 수 없다. 일단, 한국의 휴가는 미국과 비교해도 심각할 정도로 너무 짧다.
▲ 휴가를 7월말 8월 초에 몰아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성'스럽게 치러내는 행위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비극적인 희극이다. ⓒ뉴시스

이것은 우리네 도시의 삶이 전 세계 어디와 비교해 봐도 심각하게 돈에 얽매이고, 권력을 향한 투쟁을 멈출 수 없는 시공간이 되어버렸다는 의미일 것이다. 간단히 말해, 한국에선 먹고 살려면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괴력을 발휘해야만 생존이 가능하다.

이렇다보니 휴가를 7월말 8월 초에 몰아서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극성'스럽게 치러내는 행위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비극적인 희극이다. 아예, 휴가하면 조건 반사적으로 7월말 8월초에 바다로 떠나는 광경이 떠올려진다. 물론, 이것은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철저히 사회적 구조의 문제이다.

이러한 주장이 너무 과도하다고?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은 OECD의 <2008경제전망보고서>를 보면 이해가 된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OECD 31개 가입국 중 노동 시간은 연평균 2261시간으로 단연 1위이지만, 1인당 평균 임금은 연간 2만5379달러로, 평균 3만9743달러를 받는 OECD 회원국의 64%에 불과하다. 한국 노동자들은 일은 2배로 하면서 돈은 절반만 받고 있는 셈이다.

길었던 장마도 이제 막바지이고 본격적으로 '힘센 여름'(<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김훈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이다. 바야흐로 휴가의 절정이다. 이번 주 웬만한 시내 상점들도 사나흘씩은 문을 닫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휴가 문화, 노동시간 운운했지만 10년 만에 찾아온 가장 가혹한 주머니 사정에서 휴가를 고민한다는 것이 마냥 쉽진 않다.

이러한 고민 역시 구체적인 수치로 들어나는데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올해 예상 휴가비용은 1인 기준으로 26만원이라고 한다. 이는 지난해 실제 사용한 휴가비용 28만원에 비해 7.2%인 2만원 줄어든 액수라고 한다. 물가 인상 등을 고려한다면 실질적으로 줄어든 폭은 훨씬 클 것이다.

그래서일까, 이명박 대통령 역시 휴가를 떠나기에 앞서 "국민 모두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내가 한가하게 휴가를 가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주머니가 얇아진 국민의 고충에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마저도 그 사실 정도를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니 가히 휴가의 '위기'라고 할 만한 상황이다.

대통령이 토로한 고충의 주어는 바로 우리 모두이다. 촛불을 들고, 생중계를 보고, 게시판에 댓글을 다느라 더욱 바빴던 올해였다. 살리겠다던 경제 역시 믿었던 펀드는 반 토막이 났고, 집값은 요동치고, 치솟는 유가에 물가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2008년의 절반을 조금 넘게 돈 지금 상황은 복합적으로 난감하고 총체적으로 부실하다. 정치는 난맥이고, 경제는 병목이다.

역설적이지만, 바로 이럴 때 쉬어야 한다. 이 악물고 공부하고, 괜찮은 직장을 얻고, 또 열심히 일한다 한들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고, 아주 쉽게 해고되고, 그나마도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사회가 됐다. 점점 더 가혹해지는 이 '당연의 세계'를 '낯설게 보기'(<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정수복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위한 방법은 노동하는 기계로 훈련되는 '육체적 감수성을 쉬게 하는 것'(<어느 소수자의 사유>, 고길섶 지음, 문화과학사 펴냄)외엔 달리 방법이 없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어디서든 잠깐이라도 쉬어라! '풍경을 보는 눈, 풍경을 바라보는 시선'(<정치적 풍경>, 마르틴 바스케 지음, 일빛 펴냄)을 가져라! 그래야 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트 에코 지음, 열린책들 펴냄) 을 터득하지 않겠는가?

7월의 마지막과 8월의 처음에 걸쳐있는 이번 주는 동해에 방 잡는 일이 은하수에서 별을 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 되겠지만, 그래도 좀 쉬자. 이번주의 열쇳말은 '휴가'이다.

<팁 : 휴가보다 재밌을지도 모를 '방콕' 이야기>

글에서 총 9권의 책을 소개했습니다. 다소 무리한(!) 끼워 넣기도 있었지만, 올 여름 어디론가 떠날 수 없는 당신을 위한 나름의 배려로 이해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굳이 소개한 책이 아니더라도 흥미진진한 읽을거리와 시원한 수박 한 덩이가 있다면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한 가지 추가 아이템을 말씀드리자면, 문화방송(MBC) 새 일일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을 강력 추천합니다. '코믹어드벤쳐스릴러'를 표방하고 있는데, 한 마디로 킹왕짱! 간만에 닥본사(닥치고 본방 사수·여러 방송사의 흥행 드라마 본방송을 시청하자) 조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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