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쏟아지던 지난 24일 오전, 서울 계동 보건복지가족부 청사 앞에서 모인 장애인 단체 회원들의 젖은 표정에 담긴 질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소속 회원 150여 명이 이날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장애인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간을 확대하라"는 요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활동보조인이란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중증 장애인을 돕는 사람을 가리킨다. 정부가 유급(有給) 활동보조인을 고용해 1급 중증장애인에게 배치해달라는 것은 장애인들의 오랜 요구 사항이었다.
수년에 걸친 시위 끝에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가 이뤄졌지만, 정부 정책은 생색내기 수준에 그치고 있다는 지적이 종종 나오곤 했다. 장애인들의 거센 요구를 무마하기 위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것.
이 문제를 두고, 장애인 단체 회원들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연 뒤 매일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 보건복지가족부 차관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끝내 담당 국장과의 면담만을 허용했다. 이들은 이를 받아들이며 24일 정오께 스스로 해산했다.
이들이 폭우 속에서도 농성을 벌인 이유는 장애인이 활동보조인에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이 터무니없이 적어서 실효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다 정부는 예산 책정 과정에서 이런 요구를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활동보조 서비스, 1급 중증장애인 최대 하루 4시간 이용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현재 장애인 활동 보조 정책은 1급 중증 장애인만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들에게 허용된 활동보조인 서비스 시간은 한 달에 30~90시간이다.
이 중에서 혼자 사는 장애인에 한해 월 120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오는 9월부터 한 달에 극히 일부 장애인에 한해서만 180시간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것이 실효성 없는 주먹구구식 탁상 행정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혼자 사는 1급 중증 장애인이 월 120시간의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는다면 하루 평균 4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 이것도 그나마 가장 많은 시간을 이용하는 경우다. 이 4시간 동안 하루 세 끼 식사를 몰아서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화장실을 한꺼번에 다녀올 수 있을까.
실제로 이날 집회에 참석한 활동보조인 김형자 씨(가명)는 "월 180시간, 즉 하루에 6시간만 활동보조인이 1급 장애인을 도와준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1급 중증 장애인은 활동 보조인을 하루 24시간 내내 계속 필요로 하는데, 한 달에 180시간이라는 시간은 명목에 불과하다"라며 "내가 맡은 장애인은 자기 손으로 아무것도 못 한다. 가족과 같이 사는 것도 아니고 자립해서 살기 때문에 활동보조인 여럿이 돌아가면서 24시간을 해줘야 할 형편이다"라고 말했다.
정부 예산에 활동보조 시간 확대 방침은 전혀 반영 안돼
이렇게 현실성이 떨어지지만, 정부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예산 책정 과정에서 이용 시간을 늘리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가 없기 때문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에 따르면 현재 활동보조인 서비스에 대한 예산은 약 750억 원으로 책정돼 시행 중이다. 이 예산은 2만 명을 기준으로 책정된 것이다. 홍보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고, 이용자의 만족도가 높아서 신규 신청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복지부는 2009년도 예산에 이 서비스를 2만 7천여 명이 이용할 것으로 보고 약 330억 원을 기획재정부에 추가 신청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이는 신규 이용자 7천 명에 대한 예산 확보일 뿐, 장애인 1인당 이용할 수 있는 활동보조 시간을 늘리는 것은 아니다.
이날 복지부 관계 국장과 면담을 한 후 박경석 대표는 "복지부는 계속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이 예산은 추가로 신청하는 인원과 활동 보조인에 대한 급여 추가 인상분만 약간 반영된 것이다"라며 "월 180시간 이상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장애인활동보조 제도는 2007년에 처음 도입돼 약 300억 원의 예산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2008년엔 약 750여 억원, 2009년에는 약 1080억 원이 넘는 예산이 책정될 예정이라 증가율이 높은 편이다"라며 "정부 예산이라는 것이 한꺼번에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며, 예산 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하루 6시간 이용 방침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라면서도 "월 180시간 이상 이용에 대해서는 검토할 계획이 없다"고 못박았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장애인의 권리
활동보조인 서비스란 장애인의 목욕, 배설, 옷 갈아입기, 장보기, 청소 등 장애인이 하기 어려운 일상생활을 활동보조인이 대리해 줘 장애인의 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도입된 제도다.
이 제도는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모든 것을 대신해 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식사준비를 스스로 할 수 없는 장애인은 활동보조인에게 요리하라고 주문하지만, 식사시간, 메뉴, 조리법 등은 스스로 결정한다.
활동보조인인 김형자 씨(가명)는 "이 제도를 통해 장애인들이 활동보조인들에게 당당할 수 있다"라며 "막연히 자원봉사자에게 서비스를 받는다면 받는 처지에서 미안하고 부담스러워 한다. 언제까지 해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으냐. 활동보조인을 국가 보조로 이용하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라며 "활동보조인을 이용하는 것은 장애인의 당당한 권리"라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서 박경석 공동대표는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권리다"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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