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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예수, 조커와 배트맨으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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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예수, 조커와 배트맨으로 다시 태어나다

[뷰포인트] 배트맨 영화 <다크 나이트> 리뷰

히스 레저에게 내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주어야 한다는 미국의 일부 히스 레저 팬들의 주장을 열렬한 팬들의 과장된 애정과 무작정 생떼라고만은 할 수 없다. <다크 나이트>는 배트맨보다는 조커의, 조커에 의한, 조커를 위한 영화다. 물론 이것은 팀 버튼 감독이 일찌감치 배트맨 시리즈를 유쾌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어두운 웃음이 가득한 슈퍼히어로물로 만들었던 것에 도전해,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를 볼거리가 가득하면서도 진지하기 짝이 없는 도시범죄물이자 나아가 좀더 원초적인 선/악에 대한 철학적 탐구가 담긴 영화로 만들고자 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야심의 결과다. 하지만 히스 레저의 열연이 없었다면 감독의 그 야심이 과연 구체적인 비주얼로 눈앞에 현현할 수 있었을까. 생전에 히스 레저가 보여줬던 연기를 고려했을 때, (<브로크백 마운틴>을 제외하고) 이 영화에서 조커를 그려내는 히스 레저의 연기는 매우 뜻밖의 것이다. 히스 레저가 이 캐릭터를 잘 연기하기 위해 남은 인생 전체를 담보로 악마와 거래라도 한 것이 아닐까 하는 망상마저 들었을 정도다.
다크 나이트
재벌 갑부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인 20대 애송이 브루스 웨인이 어떻게 배트맨이 되었는가를 다루었던 게 놀란 감독의 전작 <배트맨 비긴즈>의 내용이었다면, <다크 나이트>는 범죄와 싸우는 괴짜-무법자 히어로 정도로 여겨진 배트맨이 어떻게 공식적인 '안티 히어로'의 자리를 획득하게 되는가를 다룬다. 그리고 그가 사람들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이 되는 '안티 히어로'로 자리를 굳히게 되는 절대적인 계기가 바로 조커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조커는 그저 어둡고 머리가 좋은 악당 정도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다. 조커의 악행은 인간사회의 법과 윤리의 차원에서 악이라 부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적, 신학적 의미에서 '악'으로 분류할 만하다. 조커를 움직이는 동력은 돈에 대한 탐욕도, 악명을 떨쳐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 욕망도 아니며, 도시를 두렵게 만드는 갱들의 우두머리가 되거나 도시 전체를 지배하고자 하는 권력욕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조커에게서는 모든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어두운 본성과 악에 이끌리는 성질을 눈앞에 명시적으로 끌어내는 것, 그리하여 인간의 악한 본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증명하는 것에 더욱 관심이 있어 보인다. 산처럼 쌓아올린 돈다발에 불을 지르며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조커의 이미지는 가히 충격적이다. 영화사(史)를 통틀어 도시 전체를 범죄와 파괴로 물들였던 그 어떤 악당도 이토록 돈에 초연한 적이 거의 없다. 조커가 걸친 낡고 허름하며 '아무 상표도 붙어있지 않은' 옷들, 심지어 간호사복은 브루스 웨인이 시종일관 입고 있던 맵시있는 아르마니 수트의 아름다움을 강조해 주는 데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놀란 감독은 영웅의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활약보다는 조커의 매혹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절대악을 보여주는 데에 훨씬 공을 들이고 있다. 그렇다, 이 영화에서 조커는 절대악이며, 악을 행하는 범죄자 악당이 아니라 순수한 악 그 자체이다. 그는 드높은 이상을 저돌적으로 실천하고 있던 이상주의자를 타락시키고, 평범한 사람들을 '죽음 혹은 악행'의 선택지 안으로 몰아넣는다. 그는 좌절하고 분노한 인간, 혹은 죽음의 공포 앞에 선 인간이 어떻게 무너지는지 알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간의 본성은 결국 어둠이자 악일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공식화하고자 한다. 조커의 카리스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총을 갈겨대고 사람들을 죽이는 냉혈한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이렇게 다른 이로 하여금 악으로의 타락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악의 길을 열어주는' 모습을 통해서 드러난다. 조커가 관객인 우리에게 새삼스럽게 확인해주는 무시무시한 사실은 이것이다. 세상의 '착한 인간들'은 정말로 착해서 혹은 적극적으로 선을 선택했기 때문보다는,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교육, 학습되어 온 데다 적극적으로 악을 선택할 만한 상황에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통찰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다크 나이트>에는 불신과 증오와 공포의 순간에 오히려 자기희생을 선택하는 고귀한 인간들 역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커는 그것에 대해 '악이 발현할 기회가 유예된 것일 뿐'이라며 낄낄대긴 하지만.
다크 나이트
이런 면에서 이 영화는 기독교의 '시험받는 예수'의 에피소드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청년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40일간 금식기도를 한 후 악마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은 사건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자세히 기록돼 있는데, 이런 관점에서 <다크 나이트>가 성경의 모티브를 활용하고 있는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기독교의 '신화화' 및 '종교 시스템화' 과정에서 일종의 산뜻한 해프닝 에피소드 정도로 전해지는 '악마와 예수의 대결' 에피소드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란, 본래 <다크 나이트>가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격렬하고 무시무시한 파괴와 공포의 살육전이 아니었을까. 예수가 사람들의 박해 속에 결국 처형을 당하는 것처럼 배트맨 역시 결국은 사람들의 증오와 공포의 표적이 되며 고독 속에 박해받는 안티 히어로가 되는데, 이는 기독교의 빛나는 흰옷을 입은 낮의 예수를 검은 박쥐의 옷을 입고 밤의 어두움 속에서 활약하는 배트맨으로 치환시키는 듯 보인다. 관객에게 극심한 피로감을 안겨주는, 다소 무리수를 둔 듯한 후반부의 이야기에서 굳이 '투페이스'가 등장하는 것도 결국은 악마의 시험에 진 '배트맨의 얼터-에고'를 보여주려는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영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상실감을 언급하며 배트맨보다 투페이스를 훨씬 인간적으로 묘사한다.) 결국 <다크 나이트>는 '시험 받는 예수'가 아닌 '청년을 시험하는 악마'를 다루며 악 그 자체를 탐구하는 '종교에 관한' 영화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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