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주관적 해석'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이다. 그의 어록에 나와 있다. 한나라당의 공식 입장과 정면 배치되는 소신 발언을 아끼지 않은 기록이 분명히 기록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사학법 어록'이다. 사학법의 이념성을 문제 삼으며 장외투쟁을 주도하던 박근혜 당시 대표의 행보를 두고 "병"이라고 대놓고 비판했다. 이 때문에 박근혜 당시 대표로부터 "막말은 삼가야 한다"고 한 소리 들었고, 김용갑 당시 의원으로부터는 "당을 떠나라"고 요구받기도 했다.
'쇠고기 어록'도 있다. 촛불이 뜨겁게 타오르던 지난 6월 2일에 "실질적인 재협상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곤란하다면 국회 결의를 통하든 실질적인 재협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런 원희룡 의원이 오늘 또 입을 열었다. "정부의 방송장악이란 있을 수 없다"며 "특히 YTN의 경우 과거 경선 당시 특보라는, 소위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는 (인사를 임명하는) 이것은 너무 선을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하나 같이 귀에 쏙 박힌다. 고비 때마다 국민의 정서와 요구를 대변한 것 같다. '미스터 바른말'이란 별명이라도 선사하고 싶을 정도다.
그럼 어떨까? 원희룡 의원은 소신 발언에 걸맞는 소신 행동을 했을까?
찾아볼 수가 없다. 언행을 일치시켰다는 기록을 찾기 어렵다. 한 마디 툭 던진 다음에 묵언잠행을 한 흔적은 있는데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기록은 찾기 힘들다.
대부분이 '개인 플레이'였고 그 '개인 플레이'의 양식은 '언론 플레이'였다. '사학법'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쇠고기'와 '방송'은 라디오 시사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개진한 것이었다.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연판장을 돌리고 세를 규합하려 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새로 원내대표가 된 이재오 의원이 전격적으로 사학법 장외투쟁 중단을 선언하기 전까지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키기 위해 당시 맡고 있던 최고위원직을 내던지고 '농성'을 했다는 류의 얘기를 들어본 적 없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추가협상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까지 두 주일여 동안 쇠고기 재협상을 관철시키기 위해 결의안 문안 작성에 들어갔다는 류의 소식을 접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일까? 원희룡 의원의 소신에 공감하면서도 기대를 갖지 않는다. 어느덧 3선의 중진이 되었건만 그의 말에서 정치적 중량감과 파괴력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한 평의원의 인기 발언 정도로만 들린다.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냉소를 보내려는 게 아니다. 강조하고픈 건 원희룡 의원이 당사 밖에서 소신 발언을 할 정도로 사안이 엄중하다고 느낀다면 행동 역시 무겁고 결연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내부 사정이 그렇다. 한 때 당내 균형추 역할을 했던 소장파 모임들, 즉 '미래연대'나 '수요모임'이 2006년 지방선거를 끝으로 해체된 후 한나라당엔 견제집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계파는 있을지언정 정책적 균형·견제집단은 없다.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다. 절대 과반의석을 넘어설 정도로 한나라당의 몸집은 비대해졌다. 왜소한 야당의 힘만으로 견제하기엔 한나라당의 몸집이 너무 크다. 이런 한나라당에 정책의 균형추가 작동하지 않으면, 그래서 어느 한쪽으로 쏠려버리면 나라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래서 긴요하고 간절하다. 원희룡 의원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밖에 나가 '바른 말' 한마디 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안으로 파고들어 세를 규합하고 그 세를 '과속 방지턱'으로 기능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 모르진 않을 것이다. '개인 플레이'는 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의안 가결 의석수를 훌쩍 넘긴 한나라당에게 '아웃사이더' 한두 명쯤은 콧방귀 뀌며 무시해도 되는 존재라는 사실을 원희룡 의원도 모르진 않을 것이다. 더불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뭘 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두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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