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에 '놈'자가 유행이다. 영화 <강철중>의 홍보 카피는 '독한 놈 vs 나쁜 놈'이었고,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신작도 줄여서 <놈놈놈>이다. 그러다 보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도 보기도 전에 이번엔 어떤 놈과 어떤 놈이야? 하는 괜한 연상작용이 일어났다. 제목으로 봐선 함무라비 법전처럼 당한대로 되갚는, 이 놈과 저놈의 찧고 까부는 복수 혈전이 아닐까 하는 짐작이 든다. 예고편만 봐서는 범죄자 차승원이 이 놈이라면 형사 한석규가 저 놈일 것 같았다. 언론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봤더니 이런 짐작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복수 혈전은 맞는데, 그리고 차승원이 이 놈은 맞는데, 한석규가 저 놈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건 한석규가 차승원한테 일방적으로 유린당하는 얘기렸다. 한석규가 연기한 백반장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의 복수 혈전으로부터 한 5시 방향쯤 뒤에서 무기력하게 비껴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저 놈일까, 말하지 않겠다(이 영화의 대결 구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다시 말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니 지금은 입 다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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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
범죄 액션을 표방한 <눈눈이이>는 범죄의 동기보다는 과정의 치밀함에 집중하는, 하이스트 영화적인 쾌감을 추구한다. 때문에 <세븐데이즈>나 <추격자>와 같은 비장감이 들어설 자리에 통쾌한 짜릿함을 주입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역력하다. 차승원이 이끄는 일당은 기가 막힌 각본에 따라 현금 수송차량과 600킬로그램의 금괴를 유유히 빼내가며 경찰의 뒷통수를 친다. 이 지능적 범죄 행각을 담아내는 연출의 솜씨는 비교적 안정된데다 제법 신선하다. 특히 금괴 탈취 대목에선 범죄 현장에 연루된 인물들의 행동을 분할 화면으로 보여주며 퍼즐 맞추기의 재미까지 안겨주는데, 공범 각자가 돈을 쓰는 상황을 담은 몽타주를 역시 분할 화면을 이용해 속도감 있고도 만화적으로 처리하는 기법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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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는 눈 이에는 이 |
이야기의 짜임새는 물론 스타일리시한 촬영과 편집에서 재기발랄함이 느껴진다. 이게 <친구>나 <똥개><사랑> 등의 끈적한 마초 낭만주의 영화를 주로 만들어왔던 곽경택 감독의 신작이라는 점이 솔직히 살짝 믿겨지지 않을 정도였다. 헌데 감독이 한 명 더 있다. <친구>의 조연출로 곽경택 감독과 인연을 맺은 뒤 <우리형>으로 데뷔했던 안권태 감독이다. 김동우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안 감독이 연출을 시작했는데, 곽 감독은 두 남자의 심리 묘사와 스케일 큰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본인 표현에 의하면 "촬영 중반에 투입"됐다. 자존심 거대한 퇴직 직전의 형사를 연기한 한석규는,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감정을 자주 괜히 낄낄대는 모습으로 표현한다. 내 눈엔 오버하는 것 같아 어색했지만, 그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백발로 염색한 채 댄디한 형사로 변신한 것 자체가 신선해 보일 것 같다. 모처럼 웃음기를 뺀 채 냉철하고도 치밀한 MBA 출신 범죄자로 등장한 차승원은,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사실 그는 우는 연기 빼고는 뭘 해도 다 잘 어울리는 배우다. <구타 유발자들>에서 비열하고 느끼한 성악과 교수로 나왔던 이병준의 코믹 감초 연기와 송영창의 카리스마 넘치는 악역 포스 연기도 볼만했다. 7월 31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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