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문제일까. 다양한 분석 가운데 '교육'이 큰 원인이자 또 해법이 될 수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외국인이 있다. 최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미국 시민교육센터(Center for Civic Education·CCE)의 찰스 퀴글리(Charles Quigley) 사무총장이다.
시민교육센터는 미국 전역의 중·고등학교 교과 과정에 '시민교육'을 정착시키고 이 분야에서 미국의 국가표준(National Standards)을 마련한 미국의 대표적 시민단체다. 1965년 시민교육센터 창립 초기부터 사무총장을 역임한 퀴글리 총장은 시민교육의 대부로 불린다. 그는 시민교육이 미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고 자부했다.
지난 17일 서울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시민교육에 대한 설명, 그리고 한국 촛불 집회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었다.
"지식, 이해, 참여라는 세 박자가 민주 시민을 만든다"
"당시 나는 미국의 민주주의가 실제로 충분히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불만을 갖고 있었다. 민주주의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 커다란 괴리를 메우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퀴글리 총장은 40년 넘게 시민교육 운동을 지속해올 수 있었던 자신의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은 아직도 민주주의가 완전히 정착되지 않았다고 본다"며 "당시 연구 결과를 보고, 미국인들이 헌법이나 권리 장전에 나와 있는 민주주의의 원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CCE의 창립 동기를 밝혔다.
CCE의 대표적 프로그램, '프로젝트 시티즌(Project Citizen)'은 어떤 것일까. 퀴글리 총장은 '행동을 통한 학습', 즉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권리를 몸소 실천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배우게 하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기본 원리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암기보다 실질적인 이해와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교육이 중요하다. 실제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교사는 가이드 역할만 하고 학생들을 정책 과정에 참여시키는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긍정적인 태도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 타협, 설득, 해결책 제시 등 학생들은 민주적인 정치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지식, 이해, 참여라는 세 박자를 함께 갖추면서 프로그램은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프로젝트 시티즌'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교실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 프로그램의 첫 단계는 바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현안 분석이다. 이 지역의 현재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현안은 무엇인지 지역 의회나 지자체를 찾아가서 직접 조사한 학생들은 토의를 통해 해결책을 모색한다. 다양한 그룹으로 나뉘어 활동한 학생들은 지역 사회의 배심원이 참여한 가운데 발표회를 가지고, 그 중 우수작이 선발된다. 우승자들은 연방의회에 가서 발표를 하기도 한다.
프로그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안을 제시한 학생들은 이를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행동을 구상해야 한다. 지역 의회나 주정부에 서한을 보내기도 하고, 이익단체를 구성하기도 한다. 퀴글리 총장은 "자기들이 낸 안건이 실제로 정책 결정에 반영된다는 것을 알면서 스스로 각성된 시민으로 거듭나게 하는 것이 프로그램의 목표"라며 "촛불 집회도 그런 행동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학교에 마약 프리존(free-zone)을 설치하자고 한 학생들의 제안이 지역 의회에서 통과가 안 되자 다음 해에도 계속 캠페인을 벌여서 주지사가 직접 교실에 찾아와 결국 약속을 받아낸 플로리다주의 사례는 '프로젝트 시티즌'의 수많은 성과 중 하나에 불과하다.
"정치를 배우는 학생들, 정부는 환영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의 학교, 더 나아가 미국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을까. 퀴글리 총장은 "프로젝트 시티즌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강화하는데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13살 때부터 정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한 학생들 중 40~60%는 자신들의 프로젝트가 실제 행동으로 이어져야 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10~20%의 프로젝트가 공공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지켜봤다.
"암기식 교육이 보편적인 미국에서 이 프로그램은 교사와 학생 모두를 자극했다. 우선 교사가 매우 열정적으로 바뀐다. 프로젝트 시티즌에 참여했던 교사는 심지어 수학, 과학 수업 등 다른 수업에서도 같은 방법을 동원했다. 평소 종종 학교를 빠졌던 학생들도 프로젝트 시티즌은 빠지지 않았다.
이 과목은 학생들이 정부에 비판적인 시각을 갖게 한다. 동시에 자신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즉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바뀌는(empowerment) 것이다. "
학생들이 지역 현안에 대안을 제시하고 참여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퀴글리 총장은 "어느 나라, 어느 지역에서나 학생들을 무시하는 일은 일어난다"며 "그러나 평균 미국인들이 얼마나 정부와 법, 민주주의에 대해서 모르는지 알고 있는 의회에서 법을 통해 이 과목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정책 결정 과정의 주체로 세우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나라 정부, 특히 교육 당국이 가장 꺼려하는 교육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5월, 서울시 교육청과 일선 학교에서 학생들이 촛불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수많은 시도는 학생들의 정치 세력화를 기성 세대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퀴글리 총장은 "정치는 평화로운 갈등 해결 방법"이라며 "다수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공공 정책을 입안하는 과정을 학생들이 보고 체험하면서 학생들은 갈등을 대화를 통해 평화롭게 푸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즉 과격한 시위 없이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운다는 점에서 정부로서는 환영해야 하는 교육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민주주의가 경제와 경쟁할 수 있나"
이어 퀴글리 총장은 촛불 집회로 인해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한국 정부와 보수 진영의 주장, 혹은 '민주주의는 너무 큰 비용을 치른다'는 비판을 놓고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이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일갈했다.
"한국 상황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떻게 민주주의와 경제가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나. 민주주의는 건전한 경제 정책에 도움이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비용을 초래한다고 비판하는 자들은 그럼 독재를 원하는가. 오히려 민주주의는 여러가지 시장 경제적 폐해를 보완함으로써 중장기적으로 경제적 효용성을 높인다."
그는 인터뷰 당일 제헌절을 맞아 집중 촛불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매우 기뻐하며 "촛불집회가 여학생들이 나서서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단하다"고 곱씹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 이를 침해하는 정부에 대해 저항하는 것은 기초적인 민주주의적 권리다. 촛불 집회가 대부분 평화적으로 진행됐다는 점에서 멋지다고 생각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여부를 떠나 정부와 국가가 소통하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
지난 17일, 퀴글리 총장은 경찰버스로 완전히 봉쇄된 서울광장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만약 당신이 그날 촛불 집회에서 그윽하게 집회 현장을 바라보는 파란 눈의 할아버지를 만났다면 바로 그였다고 생각해도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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