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부산 의회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비리를 우연의 일치로 보는 건 본질 호도다. 일부 몰지각한 의원들의 돌출행동으로 보는 건 본말전도다.
그렇게 보기엔 수가 너무 많다. 거명된 의회가 한두 곳이 아니고, 연루된 의원이 한두 명이 아니다. 세간의 지적처럼 일당지배 의회의 방종과 타락으로 보는 게 맞다. 필연이라는 얘기다.
필연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뿌리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현 지방의회를 성립시킨 2006년 5.31지방선거 때 한나라당이 어떤 몸살을 앓았는지 지금도 뇌리에 선연하다. 잇따라 공천비리 의혹이 터져나왔고, 한나라당의 중진 의원 연루 의혹이 제기됐다. 그 때 도려내지 못한 비리 씨앗이 자라고 자라 한나라당을 휘감는 넝쿨이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한나라당이 억울해 할 수도 있겠다. 그래도 2006년에는 할 만큼 하지 않았냐고, 당의 대표적인 중진이던 김덕룡·박성범 의원에게까지 '성역없는' 조사를 하려 하지 않았냐고, 그래서 결국 두 의원의 탈당을 이끌어내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재반박 여지는 있다. 상징성이 큰 일부 사안에 한해 상징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피 뽑기'이지 '밭 갈기'가 아니라는 재반박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관두자.
오히려 그대로 받자. 바로 그게 문제다. 2006년엔 그런 모습이라도 취했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2년 전엔 당의 대표 중진마저 솎아내려 했지만 지금은 김귀환 서울시의장 한 명으로 '퉁 치려' 한다. 불과 2년 만에 '화장실 들어갈 때'의 모습을 '나올 때'의 모습으로 바꾸려 한다.
이런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쳐질까? 아마도 '벼락출세한 자의 거만' 쯤으로 인식될 것이다.
그나마 낫다. 그냥 태도의 문제라면, 단순한 자세의 문제라면 벌충할 여지는 있다. 어느 순간 반성을 외치면서 다시 표변하면 되니까….
근데 사정이 그렇게 녹록하지가 않다. 한나라당을 둘러싼 주변 환경이 1차 표변과 2차 표변을 대수롭지 않게, 그리고 너그럽게 받아들일 만큼 헐렁하지가 않다.
2006년엔 야당이었다. '반노 정서' 혜택을 독점하는 야당이었다. 그래서 희석시킬 수 있었다. 공천비리 의혹을, 도덕성 문제를 '반노'를 앞세워 덮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지위는 여당으로 바뀌었고, 국민 정서는 '반노'에서 '반이'로 바뀌어 있다. 이런 환경에서 도덕성 문제는 더 이상 후순위도, n분의 1의 가치에 한정되지 않는다.
방증 사례가 있다. '반노 정서'가 사라진 그 자리에 제일 먼저 들어선 정서는 '반강부자' '반고소영'이었다. 도덕성과는 거리가 먼 일부 인사들의 입각에 민심이 실망했고 그런 인사들의 고압적인 자기 합리화에 국민이 황당해 했다. 절대농지에 투기했으면서도 "땅을 사랑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하고, 수십 건의 부동산을 소유했으면서도 "암이 아니라는 소식에 기뻐 오피스텔을 사줬다"고 해명하는 그런 태도에 실망하고 반발했다.
이 정서가 정책과 만나면서 폭발한 게 바로 '촛불'이다. 도덕적 결함이 많은 정부에 대한 반감이 정책 실패에 대한 반발과 맞물리면서 폭발적인 반대기류를 형성한 것이다.
분명히 알 수 있다. 처음이자 끝이다. 집권세력에게 도덕성은 정책 추진력을 배가하는 추동력이자, 정책 실패를 만회하는 보험증서다.
한나라당은 이런 가치를 갖는 도덕성을 허투루 대하고 있다. 돈을 준 사람은 징계하면서도 돈을 받은 사람은 엄호하고 나서는 희한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돈을 준 사람에 대해선 사법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를 앞세워 발빠르게 징계하면서 돈을 받은 사람에 대해선 사법논리를 앞세워 '죄가 확정되면'이라며 징계를 뒤로 미룬다. 단순한 집권세력이 아니라 '차떼기'의 악몽을 안고 있는 한나라당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일과성 실책을 범하는 게 아니라 결정적 패착을 두고 있다.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는 말이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