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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여러분, '이건희 판결'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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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 여러분, '이건희 판결' 어떤가요?

[김종배의 it] 그래도 헌법 119조 2항은 뽑아내야 할 전봇대?

1.

화두는 개헌입니다. 제헌절 60주년을 맞아 정치권이 내놓은 화두는 개헌입니다. 여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개헌을 읊조립니다.

익히 들어온 화두이니까 긴 설명은 필요 없을 겁니다. 여야 모두 '87년 체제'의 극복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타당한 주장이니까 토를 달 필요까진 없을 겁니다. 87년 이후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빠르게, 그리고 폭넓게 변한 사실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정보혁명이 이뤄지고 개인의 삶이 더더욱 중시되는 사회로 변모한 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바뀌어야겠죠. 몸뚱이가 커졌으니 옷을 갈아입어야 되겠죠.

근데 왜일까요? 흔쾌히 동의하기가 어렵습니다. '87년 체제'의 극복이란 말에 어두운 여운이 느껴집니다.

2.

어제 두 건의 뉴스를 접했습니다. 아주 묘하게 교차하는 뉴스였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옅은 미소를 띠며 법정을 나서는 장면과 이석연 법제처장의 소신에 찬 강연 소식이 기묘하게 오버랩 됐습니다.

법원이 판결했습니다.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은 '무죄',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헐값 발행은 '면소'라고 했습니다. 조세 포탈, 그것도 '일부' 시기의 조세 포탈만 인정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습니다.
▲ ⓒ뉴시스

이석연 법제처장이 주장했습니다. "현행 헌법에는 자유시장경제라는 헌법의 기본원리를 제약하는 규정이 있다"며 "개헌과정에서 국가의 경제 관여를 규정한 조항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헌법 119조 2항 '경제민주화' 조항입니다.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수 있다'는 바로 그 조항입니다.

3.

흐름은 하나입니다. 두 건의 뉴스를 관통하는 흐름은 '경제 민주화' 조항에 대한 부정, 또는 역행입니다.

물론 좁게 보면 헌법이 아닌 법률 해석의 문제일 수도 있겠죠. 법원 판결의 경우 '경제 민주화' 취지와는 무관하게 법률 요건에 맞는지만 따진, 실무적 판결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형식논리입니다. 법원 판결 이후 불붙고 있는 논란은 재판부의 적극적인 법률 해석·적용 의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확장하면 헌법에 명시된 '경제 민주화' 취지에 입각했느냐의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4.

옳고 그름을 여기서 따지지는 않겠습니다. 찬반을 가르지도 않겠습니다. 대신 개헌을 읊조리는 정치권에 질문을 던지려 합니다.

어떻게 보는지요? '87년 체제' 20년 동안 '경제 민주화'는 '성장'했을까요? 아니면 '퇴보'했을까요? 법원의 '이건희 판결'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요?

87년 이전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재벌 총수의 재판 회부 사실만으로도 '성장'한 것이라고 봐야 할까요? 아니면 재판에 회부된 재벌 총수 대부분이 집행유예를 선고받는 현실에서 '퇴보' 또는 '답보'의 근거를 찾아야 할까요?

아니, 질문이 잘못됐네요. 논란이 되는 문제는 '경제 민주화'의 정도가 아니라 '경제 민주화' 조항의 정당성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물어야 겠죠.

재벌 총수를 배임이나 조세 포탈 등의 이유로 법정에 세우는 게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반하는 걸까요? 아니면 '자유'가 '약탈'이나 '지배'로 흐르는 걸 막기 위한 '불가피한 관여'일까요?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어찌보면 권력구조개편 문제보다 더 중요한, 우리 경제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듣고 싶습니다. '경제 민주화'에 대한 정치권의 입장을 듣고 싶고, 개헌에 그 문제를 포함시킬 것인지 여부를 듣고 싶습니다.

그래야 정치권이 합창하는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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