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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發 금융위기…추락하는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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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국發 금융위기…추락하는 한국경제

서브프라임, 유가 인상, 달러 약세…"더 센 놈이 온다"

세계 경제 위기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담보대출) 부실 위협은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커지고 있다. 국제유가도 좀처럼 안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따라 국내 금융시장도 진정될 조짐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는 환율시장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고를 동원해 '실탄 투하'도 서슴지 않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보란 듯 다시 오름세를 타고 있다. 물가와 환율을 뺀 모든 경기지표가 추락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조되는 국내 경제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다. 경제전문가들은 가장 효과적인 해법 중 하나로 금리인상을 내놓고 있다.

미국발 신용위기 패닉 세계 강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언제 진정될지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4월 미국 2위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 뉴센추리 파이낸셜의 파산신청으로 시작된 이 사태가 1년이 훌쩍 넘도록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정부가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한 주택에 대한 가압류를 30일 간 미루는 일명 '프로젝트 라이프라인' 으로 불리는 고강도 처방을 내놓고 미국 6대 은행이 이에 동참하면서 한때 이 사태는 진정될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지난 11일 알트A(프라임과 서브프라임의 중간 등급 채권) 등급 모기지 업체인 인디맥뱅코프가 대규모 직원 감원에 이어 영업정지에 들어간 데다 양대 대출보증업체 프레디맥과 패니매에 대한 미국 정부의 긴급 구제책이 발동되면서 다시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프레디맥과 패니매는 앞선 대출업체와는 달리 사실상 미국 정부가 채권을 보증하는 우량 회사다.
▲지난 11일 영업정지에 들어간 독립 모기지 업체 인디맥뱅코프. 이 회사는 '20년만의 최대 파산은행'으로 불리게 됐다. ⓒ로이터=뉴시스

프레디맥과 패니매가 보유한 모기지론은 5조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전체 모기지론의 절반에 가까운 규모다. 이들 양대 업체의 유동성 위기는 곧바로 주택시장 붕괴와 채권시장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은행업에 대한 직접적 공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물론 미국에 엄청난 돈을 투자한 세계 각국 '투자 정부'에 여파를 미친다. 온 세계 금융 시스템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미국 정부가 서둘러 두 업체 구제에 나선 건 파급효과가 너무나 막대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두 업체의 국유화 주장마저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해 초부터 이번 달 6일 현재까지 집계된 세계 각국 은행의 신용위기 관련 손실규모가 3870억 달러(약 387조 원)에 달할 것으로 보도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800조 원대임을 감안하면 상상을 넘어서는 규모다.

서브프라임에서 시작된 신용위기는 전면적인 금융위기로 옮아가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업체뿐 아니라 주요 금융기관마저 흔들리고 있다. 대형 투자은행(IB)을 비롯한 금융시장 참여자들이 한국 증시를 비롯해 주요 아시아 국가에 투자한 달러를 긴급 회수해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사태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시아 증시는 이들 외국인 투자자의 지속적인 달러화 인출로 연일 폭락하고 있다.

자산관리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부하던 메릴린치 주가는 지난 14일 주당 25.88달러까지 떨어졌다. 올해 최고가(58.40달러)의 절반이 안 된다. 메릴린치 주가 하락의 불똥은 우리나라에까지 튀고 있다. 한국투자공사(KIC)가 지난 1월 이 회사에 외환보유액 중 20억 달러를 투자해 주가하락의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KIC의 현재 투자손실액은 1조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된다.

메릴린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무디스가 프레디맥과 패니매의 재무건전성등급(FSR)을 하향 조정하면서 이들 채권을 인수한 국가도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기관 역시 이들 기업에 7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유가 150달러는 마지노선

미국 금융위기는 유가 인상도 부채질하고 있다. 흔들리는 미국 경제가 달러화 약세를 부채질하면서 유가 인상의 직·간접 요인이 되는 것이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장은 지난 15일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 상승 위험이 있지만 경제 성장 전망에도 심각한 하향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사실상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인정한 셈이다. ⓒ로이터=뉴시스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주요 원유 생산국이 약세화 이전 가격에 맞추려는 움직임을 강화함에 따라 유가 상승 압력이 강해지고 있다. 여기에 금융시장 불안에 따라 현물시장 대체 투자 성격이 강화되는 것 역시 간접적으로 유가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이 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지난 4월 22일 월례보고서에서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화 약세가 상품시장 투자를 자극해 신기록이 세워지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근본적으로는 여전히 증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원유생산국의 입장과 달리 갈수록 원유 수요가 늘어나는 게 원인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현상이 이어지는 셈이다.

여기에 투기자금이 상승하는 유가에 불을 붙이는 형국이어서 유가 상승세는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8년 하반기 세계경제 진단 및 국내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지난해 1월부터 올해 4월까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 상승분 58.43달러 중 투기자금 유입이 23.56달러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국제유가가 심리적 저항선인 150달러를 언제 돌파할 것이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1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WTI 8월물 인도분 가격이 전날보다 6.44달러나 급락해 138.74달러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연초에 비해서는 45%나 오른 수준이다. 투기수요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이란과 이스라엘 전쟁 발발 가능성 등 지정학적 위험도 여전하다.

물가 인상 압력,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까

미국 경제시스템 붕괴로 촉발된 위기는 우리 경제에도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당장 미국발 금융위기의 연쇄효과 중 하나로 일어나는 외국인의 증시 순매도세가 28거래일째 지속되고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이 기간 외국인이 국내에서 들고나간 돈은 7조9815억 원에 달한다.

국내 증시의 방향을 가르는 외국인의 움직임이 순매도로 확정되면서 코스피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16일 코스피는 전날보다 1.93(0.13%) 내린 1507.40으로 마감했다. 종가 기준으로 연중 최저치다. 전망은 온통 암울하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반등은 내년에야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유가 인상은 물가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지난달 수입물가는 외환위기 때인 지난 1998년 3월 이후 처음으로 49.0% 상승했다. 여기에 정부는 다음 달부터 전기요금과 가스요금을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교통비는 물론 공산품 가격 등의 가격인상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물가 인상 부담이 커지면서 일각에서는 금리 인상 불가피론이 강하게 제기된다. 다음 달 열릴 한국은행 금통위에서는 결국 한은이 금리 인상을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각급 경제연구소는 물론 대학교수들도 금리 인상을 주문하고 있다.
▲불안정한 대외변수는 국내 경제를 전방위적으로 짓누르고 있다. ⓒ뉴시스

지난 14일 경제개혁연대와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대표적인 소장파 학자로 분류되는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지난해 8월 이후 물가는 크게 올랐지만 금리는 덜 올라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수준"이라며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교수는 "금리인상의 부작용으로 경제적 약자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지만 이 때문에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는 것은 일종의 '폭탄 돌리기'"라며 "가계도산, 기업도산에대한 실질적인 출구를 마련해주는 것과 함께 금리 인상을 단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금리 인상은 아직 시기상조라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경기하강 속도가 올해 초 예상보다 더 빠르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자면 물가만이 정책 목표가 아니다. 경기하강에 따라 물가 인상분도 어느 정도는 흡수할 수 있는 만큼 아직은 조금 더 지켜보고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대외변수만이 문제가 아니다. 강만수 경제팀의 결정적 실수로 사태 심각성이 커진 환율도 우리 경제의 목을 죄고 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사흘 연속 상승하면서 1009.3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정부의 강력한 외환시장 구두개입과 한은의 실탄 사용에 잠깐 약세를 보이던 환율시장이 채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외환시장 딜러들은 이날 정부가 시장에 푼 돈을 5억 달러 정도로 추정한다. 한 시중은행 외환딜러는 "지난 주 정부가 세게 나온 후 이번 주 들어서는 반등만 막자는 분위기인 것 같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어떻게 나올지 좀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정부가 언제까지 외환시장 개입을 이어갈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고가 넉넉하다고는 하지만 단기외채 등을 감안한 운용 잔고가 그리 크지 않은데다 지난 한 주간 환율 안정을 위해 정부가 쓴 자금이 150억 달러를 넘는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아직 고통의 끝을 보지 않았다

대외변수에서 시작된 파급효과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대응 방식을 마련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국내 차원에서 찾기는 대단히 어렵다는 입장을 보인다. 한 동안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 연구위원은 "고통을 상당기간 감내해야할 것으로 본다. 지금 상황이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체감 경기 자체는 앞으로 계속해서 나빠질 것이다"고 전망했다.

금융연구원 송재은 연구위원도 "대외여건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며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선제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 최소한 우리 경제의 변동성이 커지는 일은 막도록 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미국발 경제위기는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프레디맥과 패니매의 위기가 나오면서 사실상 나올 악재는 다 나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유가는 국제 경제는 물론 우리 경제의 향후를 전망하는 중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임 연구위원은 "결국 경기 턴어라운드의 변수는 유가다. 일단 유가가 안정세에 접어든 것을 확인해야 우리 경기가 언제 살아날 수 있을지를 논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미국의 금융 위기가 여기서 그쳤다고 단언할 수 있는 증거는 아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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