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요미우리 신문은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표기하겠다고 통고했다"고 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후쿠다 총리가 자신의 입장과 사정에 대해 설명을 했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그러다 "이 문제는 사안의 본질도 아니다"고 했다. 오늘은 더 나아가 "우리는 본질적이지도 않은 것으로 안에다 총질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대변인이 '사안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해, 한일간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해 모르는 시민도 없다. 문제의 본질은 정부의 사전예방 혹은 사전대응 능력이다. 한국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이명박 행정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비판적 접근은 당연하다.
이 대통령은 오늘에야 "전략적 관점에서 장기적 안목"을 말했다. 사전에 이런 전략적 관점이 필요했다. 정상회담에서의 사정 설명에 대해 전략적 판단이 요구됐다. 주일대사관과 외교통상부는 사전에 '심각한' 정보 수집 및 보고와 정세 판단을 했어야 했다. 외교통상부 장관은 '선제적' 강경 입장을 내놨어야 했다. 여당도 이 문제만큼은 일사불란하게 치고 나왔어야 했다.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내야 했다.
일본은 지금 삭제할 생각이 전혀 없고 도리어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이제 기왕의 사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도 이제 와서 냉정하자고? 이것이야 말로 본질에 어긋나는 일이다. 본질은 정보를 종합, 분석하고 사전에 적절한 대응 조치가 가능했었는지 여부에 있다. 결과를 볼 때, 이 행정부의 사전 대응은 처절히 실패했다. 쇠고기 문제, 독도 문제 둘 다 똑같다.
2. 문제는 투명성이다
정식 통고만이 통고는 아니다. 외교적 수사로 포장한 '사정 형편 고지'도 일종의 통고일 수 있다. 정상회담에서 자국의 입장을 문서로 적어와 공식 낭독하는 방법도 있고, 환담 형식을 통해 완곡하게 입장을 전달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외교적 형편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을 어떻게 읽어 내느냐가 정상회담 당사자나 외통부의 능력에 속한다. 그런데 제대로 읽지 못했다. 헌법은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 섬'이라고 했고,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하고, 국토를 보위할 것"을 선서했다. 더구나 이 문제는 정상회담 전 예상됐던 문제였다. 그렇다면 더 민감하고 집요하게 상대방의 의중을 읽어 내고 설득하고 우리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정상 외교여야 했다.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지금 우리 행정부는 일본이 언론을 통해 '왜곡'하고 있다고 말한다. 정상회담 중에는 이른바 '버바팀'(verbatim)이라는 문답 기록이 작성된다. 쉽게 말하면 속기록이다. 공식 공개가 어렵다면 비공식으로 의회 지도자나 일부 언론에게 확인시키면 된다. 버바팀은 다시 문서화 되고 정상회담록은 한국 법상 고작 3급 비밀로 분류된다. 3급 비밀인 정상회의록이 공개된 사례는 종종 있다.
일본은 언론을 통해 도발하는데 우리는 외교 관례상 공개할 수 없다면 묻어 두겠다고? 문제는 투명성이다. 불투명의 문제가 문제의 핵심을 가로막고 있는데 여전히 불투명과 비공개의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해 보겠다고? 그리고 광우병 괴담론과 독도 괴담론을 등치시켜 이 문제를 공안의 방식으로 풀어 보겠다고? 이 점에서도 역시나 쇠고기 문제와 독도 문제는 똑같다.
3. 언론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의 산케이 신문과 요미우리 신문은 한국의 보수주의 세력들에게는 일본의 조·중·동이었다. 사실 역사 왜곡의 중심에는 늘 이들 언론이 있었다. 일본 국수주의 입장에서 한국의 진보개혁 세력과 남북관계를 끊임없이 공격해 오던 터였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주일 대사관을 통해 "요미우리 신문에 대응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 언론을 다루던 방식으로 일본에서 일본 언론을 다뤄 보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외교적으로' 통고 사실을 부인했음에도 요미우리 신문은 아직까지 '통고' 기사를 내리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처럼 당장 가처분 신청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 대사관에는 법무부 파견 검사도 근무 중이다. 사실관계에 자신이 있다면 좀 더 강경한 대응을 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귀국하기 전 고무라 마사히코 일본 외무상에 면담을 신청했다. 면담 신청은 외무상의 선약을 이유로 거절 됐다. 일본은 정무차관도 아닌 사무차관을 면담자로 내세웠다. 그것도 내각제 국가에서의 사무차관이다.
더구나 일본은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이같은 대응을 이명박 행정부의 지지율 하락 탓으로 돌리고 있다. 자신들에게는 영토라는 대외 고권(高權; 최고의 권리)의 문제이지만 우리에게는 어려운 국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일 뿐이라는 비아냥 어린 분석이다. 어찌 보면 자업자득이다. 쇠고기 문제 때도 미국 언론에 그랬다. 이 문제는 단순한 쇠고기 문제가 아니라, 한국의 국내 정치적 문제라고 했다.
4. 왜 대형사건은 외교안보 라인에서만 생기나
한미 전략동맹은 한미 전략의 일체화를 의미하고, 한미 전략의 일체화는 한미일 전략의 일체화를 의미하게 된다. 일본의 입장에서는 미일 전략동맹만으로 한일 전략동맹을 일체화시킬 수 있게 되고, 그 순간 한미일 전략 동맹 속에서 한국의 전략적 운신의 폭은 축소되고 만다. 우리가 남북관계의 주도권이라도 잡고 있다면 일본은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좀 더 존중할 수밖에 없다. 한국을 통한 일본인 납치사건의 중재나, 일북 수교 교섭의 중개 역할을 모색해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 일본은 납치 문제 해결을 북측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만사'형'통이라고까지 일컬어지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은 2월 일본 특사단 단장이었다. 이 단장은 한일관계에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호언했다. 현재의 주일대사는 당시 특사단의 일원이었다. 권철현 주일대사는 당시 특사단 활동에 대해 "일본의 정계, 재계, 언론계 할 것 없이 기대가 너무 커서 분위기가 좋아져 오히려 우리가 이 기대에 어떻게 부응할까 걱정할 정도였다"고 보고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월 15일까지 주일 대사였다. 이들 모두가 내로라 하는 일본통이었다.
전략적 측면에서나 정보접근 측면에서나 인적 네트워크 측면에서 한일외교라인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아보였다. 그런데 구체적인 전략이 결여된 인적 네트워크만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결국 문제는 국가전략의 부재였던 셈이다. 전략의 부재는 정책의 실패로 이어졌고, 정책의 실패는 행정부의 실패로 귀결됐다. 문제는 행정부의 실패가 국가의 실패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쇠고기 문제나 독도 문제는 단 한치도 다르지 않다. 전략의 재수립은 중기적 과제다. 소통의 정부라면 국민의 분노에 반응해야 한다. 외교안보 라인에 대한 전면적 쇄신은 최소한의 반응이다. 행정부의 실패와 이로 인한 국민의 분노에 대해 책임지는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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