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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4500만' 운동이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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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에이즈 환자 4500만' 운동이라도 하자"

[기고] 다국적 제약업체 사장 면담기

촛불 집회를 두고 폭력, 비폭력 논쟁이 두드러졌다.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어디서부터 비폭력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휘둘려지는 방패와 각목과 물대포 뒤에 숨어있는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 바로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임에는 의심이 없을 것이다.
  
  이 폭력은 '비정규직 보호를 위해' 고용을 유연화하는 법안을 만들고 '효율성'을 위해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국가의 발전을 위해' 국민의 밥상을 위협한다. 보통 국가나 자본이 가하는 폭력은 이처럼 아리따운 언어들로 치장이 되어있어 예민한 감수성이 아니라면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만든다.
  
  광우병 쇠고기 파동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국민 건강권, 생명권에 대한 폭력을 건물 한 귀퉁이에서 찍찍거리는 쥐새끼마저도 알아가고 있을 즈음 한구석에서는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펄펄 날뛰고 있었다.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환자라는 이유만으로 누구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이 폭력, 과연 그들만의 몫일까.
  
  현재 한국에는 약 5000명의 에이즈 감염인이 살아가고 있다. 제대로 된 치료만 받을 수 있다면 더 이상 '에이즈=죽음'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에이즈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치료제가 제때에 공급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더 나아가 전 세계 에이즈 감염인의 90% 이상이 살아가고 있는 개발도상국 환자들이 약을 먹지 못해 죽어가는 것은 아직 HIV 치료제를 개발하기에는 과학이 설익었기 때문인가?
  
  스위스 계 초국적 제약회사 로슈는 기존 에이즈 치료제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푸제온'이라는 약을 생산하는 회사이다. 푸제온은 한국에 존재한다. 오로지 건강보험공단의 보험 등재 의약품 목록에만. 환자들은 이 약을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 자린고비 아비를 둔 어린 자녀가 천장에 매달린 조기를 목 아프게 쳐다만 봐야 했던 것처럼 푸제온을 구할 수 없는 환자들은 보험 등재 의약품 목록에 이름만 덩그러니 놓인 이 약을 애타게 바라만 봐야 한다.
  
  로슈는 2004년 한국에서 푸제온 허가를 받았고 보건복지부는 이 약을 2만4996원이라는 가격으로 보험 등재 의약품 목록에 올렸다. 그러나 로슈는 4만3235원을 요구하며 약 공급을 거부하였다. 2005년 로슈는 3만3388원을 주면 약을 공급하겠다고 하였고 2007년 다시 3만970원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는 로슈 대표 이사 말처럼 한국 환자들의 절박한 요구 사항과는 전혀 상관없이 2004년 대비 급격히 하락한 환율로 재조정한 것뿐이었다.
  
  복지부는 2만4996원에서 더 이상 올려줄 수 없다는 입장을 재확인하였다. 로슈는 3만970원이 아니면 공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천명하였다. 에이즈 환자, 사회·인권단체 활동가들은 2만4996원도 너무 비싸니 더 싸게 공급할 것을 요구하며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기 시작하였다.
  
  우선 국민의 건강권을 책임지고 있다는 복지부를 만났다. 미국 무역대표부에서 한국을 방문할 때 빼놓지 않고 들른다는 복지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자유권을 훼손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럼 국민의 건강권은 훼손되어도 마땅한가?
  
  복지부도 인정하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도권을 가진 것은 자본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실, 그래서 우리는 로슈를 만나러 갔다. 로슈 대표이사는 한국의 건강보험재정자료를 보여주었다. 1조2500억 원 건강보험 재정 흑자에 형광펜으로 색칠까지 해 오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이 많은 돈이 남았으니 푸제온 약값 5000원 올려주는 거 문제도 아니라고 여기 와서 시간 낭비 말고 가서 정부를 설득하라 하였다. 우리도 알고 있다. 5000원 정도(!) 더 줘버리라고 정부를 설득하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왜 그걸 하지 않기로 입술 깨물며 다짐했던 걸까. 왜 에이즈 감염인들이 목숨 걸고 약값 낮추라고 싸우는 것일까.
  
  에이즈 감염인들은 본인 부담금이 없다. 약값이 2만5000원이든 250만 원이든 아무 상관없다. 어차피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국민건강증진기금으로 간신히 유지되는 건강보험 재정이 실제로는 적자 투성이라는 것을.
  
  백혈병 환우들이 아픈 몸 이끌고 스프라이셀 약가 투쟁에 함께 했던 것은 결코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얼마인가의 문제는 아니었다. 스프라이셀 약가가 10만 원이든 6만 원이든 어차피 환자들은 본인부담금 상한제로 지불하는 액수가 똑같다. 그렇다면 왜?
  
  신약은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런데 현재 신약 가격이 고가로 결정이 되어 버리면 이후에 나올 신약들은 이것을 근거로 점점 더 높은 약가를 요구하게 되어 있다. 약제비가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건강보험 재정은 버틸 수가 없다.
  
  보장성 강화는 고사하고 결국 책임은 개인들에게 전이될 것이다. 이미 급여를 해주지 않는 의약품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다. 미국에서도 고가의 약가 때문에 의약품 보험 급여를 점차 줄여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장 나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 보이는 약가 투쟁에 환자들이 아픈 몸 이끌고, 목숨 걸고 함께하는 것이다.
  
  로슈가 원하는 5000원 약값 인상, 별 것 아닌 듯싶다. 푸제온은 공급된 적이 없으니 논란이 되었던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을 예로 들어보자. 글리벡의 현재 약값은 2만3045원이고 2007년 연간 총 비용은 720억 원이었다. 그러나 글리벡 가격을 5000원씩 인상한다고 하면 연간 156억이라는 엄청난 돈이 더 필요하게 된다.
  
  로슈는 한국에서 많은 에이즈 환자들의 '절박한(DESPERATE)' 요구를 보지 못했다고 했고, 한국 정부는 감염인 수가 많지 않아 책임지고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 수가 4500만 명이라도 되기를 기도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우리는 '에이즈 환자 4500만 명 돌파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핵심은 '환자 수'에 있지도 '좀 더 많은 이윤'에 있지도 않다. 환자 수가 4500만 명이 된다고 할지라도, 제약 자본에게 좀 더 많은 이윤을 넘겨준다고 할지라도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환자의 필요와는 전혀 상관없이 시장의 필요에 의해서만 움직이는 현재 제약자본의 독점이며 그 안에서 아무런 주도권도 갖지 못하는 국가와 환자의 무력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당신이나 당신이 사랑하는 가족, 친구도 에이즈에 혹은 백혈병에 걸릴 수 있다'는 말로 협박하지 않고서도 우리는 이길 수 있다. 협박은 저들의 저급한 언어일 뿐이다. 대신 우리는 생명을 존중하는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선택할 것이다.
  
  에이즈 환자 4500만 명 돌파 운동을 바라는 저들에게 우리가 돌려줄 것은 이러한 연대 의식에 기반을 둔 치열한 투쟁일 뿐이다. 더 많은 분노를 모으자. 이윤 때문에 에이즈 환자 4500만 명이 되기를 기대하는 사회, 돈 없으면 죽으라고 말하는 이 사회, 정말 분노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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