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로도, 영화로도 공개된 <스위니 토드> 때문에 작곡가 스티브 손드하임은 이제 국내에서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그 손드하임이 1970년에 브로드웨이에서 첫 무대를 올린 뮤지컬 <컴퍼니>가 국내에도 상륙했다. 지난 5월 27일 개막해 현재 절찬리에 공연중이다. 서른 다섯 번째 생일을 맞는 바비에게 친구들이 깜짝파티를 치러주는 것으로 극이 시작된다. 번듯한 직장에 매력적인 외모, 쿨한 성격과 유머러스한 말재주를 가진 바비(고영빈)는 화려한 연애생활을 이어가는 독신남이다. 여자의 스타일에 따라 유려한 작업기술을 다르게 적용시켜가며 세 명의 여자친구를 동시에 만나고 있는 그는 이미 결혼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는 다섯 커플의 친구들에게서 결혼 독촉을 받는다. 다양한 개성대로 다양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친구들은 바비에게 결혼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설득하지만, 바비가 커플들을 차례로 만나면서 드러나는 건 결혼의 단맛보다는 쓴맛이다. 모든 것을 함께 하는 부부도, 각자 자기 생활패턴을 유지하며 사는 부부도, 고독과 권태를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다섯 커플이 바비를 대하는 방식은 이중적이다. 바비를 자신들의 '커플 클럽'에 서둘러 가입시키려 하면서도 그의 싱글 상태를 부러워하고, 그와 기혼자의 애로사항을 공유하고 싶어하면서도 싱글이기에 가능한 '화려한 연애편력'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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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퍼니 ⓒmusicalcompany.co.kr |
그러나 바비의 삶이라고 결혼한 친구들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은 없다. 세 명의 여자 중 다소곳한 타입은 그에게 결혼할 남자가 아니라며 이별을 고하고, 자아도취에 빠져있는 어린 배우지망생은 숭배자를 필요로 할 뿐이다. 하지만 바비가 정말 진지한 관계를 원하는가? 그는 열정적인 하룻밤을 보낸 뒤 자신에게 애착을 보이는 여자를 부담스러워 하며 얼른 집밖으로 그녀를 쫓아내기 위해 골몰한다. 그런 그가 마지막으로 호소하는 건 외로움이다. 극 내내 바비는 쾌락을 쫓는 바람둥이처럼 행동하지만, 극의 마지막에서 마침내 폭로되는 것은 외로움과 결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다. 누군가와 진정한 사랑과 완전한 소통을 갈구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절망과 체념이다. 결혼이 '필수'가 아닌 '선택'으로 물러난 현대 도시사회에서 교육 수준이 높고 전문직종 종사자일수록 평균 결혼 연령이 높다. 죽을 때가지 절대적이었던 결혼의 맹세도 쉽게 깨진다. 이게 현대 도시인들의 삶이다. 자유로운 사랑이 주는 낭만적인 아름다움이 빛을 발할수록, 이 관계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불안과 언제 뒷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빛 뒤의 그림자를 더욱 짙게 만든다. 과거에는 결혼이라는 것이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의 대상이었다면, 현대인들에게는 "해도 외롭고, 안 해도 외로운" 것인 셈이다. 인터미션을 포함해 총 2시간 반에 달하는 이 공연은 소규모 공연답지 않게 많은 수의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하지만 캐릭터 하나하나가 워낙 또렷한 개성으로 치밀하게 구축되어 전혀 혼동을 주지 않는다. 주인공은 바비지만 극 전체에서의 비중은 각 캐릭터에게 고르게 안배된 편. 각 커플들의 에피소드가 차례로 나열되고 그 사이 바비의 연애 에피소드를 끼워넣는 다소 단순한 플롯임에도 이를 통해 진행돼 나가는 이야기는 신랄하면서도 치밀하다. 다소 난해한 넘버들이 다수를 차지했던 <스위니 토드>와 달리 사용된 넘버들도 하나같이 세련되고 산뜻하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식의 귀를 확 잡아끄는 달달한 훅은 없지만, 등장인물 전체의 아카펠라 합창과 중창이 주를 이루는 노래들은 들으면 들을수록 감칠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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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의 연기도 매우 좋다. <그리스>, <바람의 나라> 등의 무대에 섰던 고영빈은 세련되고 매력적인 현대 도시의 여피 바람둥이의 역할을 매끈하게 소화해내며, 극 중 베드씬(!)을 펼치는 에이프릴 역의 유나영과 케미스트리도 매우 훌륭하다. 열 명의 친구들 역시 순발력 넘치는 애드립과 코믹한 연기로 극의 분위기를 한껏 돋운다. 서로 대사를 주고받는 리듬감도 매우 좋은 편. 남자 캐릭터보다는 여자 캐릭터들 쪽이 매우 강력한 코믹 연기를 선보이며 좌중을 웃음도가니에 빠뜨린다. 특히 양꽃님(제니 역)의 다양한 목소리 톤의 대사와 방진의(에이미 역)의 경악하리만치 자유자재로 출렁이는 얼굴근육 연기는 극의 코믹한 성격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하지만 이런 웃음의 뒷맛은 쓰고 서글프기 짝이 없다. 이것은 밝은 표정으로 마지막 노래를 부르되 기어코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야 마는 고영빈의 몫이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극중 바비와 비슷한 또래의 싱글남녀들은 이 뮤지컬을 보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마냥 가볍고 상쾌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계속해서 미뤄두고 덮어두었던 인생의 중대한 질문을 비로소 대면할 용기를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8월 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될 예정. <헤드윅>, <바람의 나라>, <밴디트> 등으로 뮤지컬계의 스타 연출가로 떠오른 이지나가 연출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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