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선결 조건으로 스크린쿼터제가 반토막 난 이후, 한국 영화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부진에 빠져있다. <쉬리> 이전과 이후로 한국 영화의 시대를 나눠 볼 수 있다면, <놈놈놈>은 FTA 시대의 한국 영화를 가리키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지도 모른다.
<놈놈놈>에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나온다. 1930년대의 만주는 옮고 그름만이 갈리는 세계, 혹은 이런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세계였나 보다. 2008년 한국에는 어떤 <놈놈놈>이 있을까? 정답은 "이루 상상할 수 없는 놈들이 있다"쯤 될 것이다. <놈놈놈> 개봉에 맞춰 이번 주의 <놈놈놈>을 공개한다.
'이 죽일 놈', 기름
한 마디로 이 죽일 놈의 '기름 값'이다. 유독 이 죽일 놈의 무엇이 많던 2MB 정부였다. 이 죽일 놈의 <PD수첩>과 이 죽일 놈의 '아고라'와 이 죽일 놈의 '공영방송'과 이 죽일 놈의 '촛불'에 겨우겨우 맞서고 있는 상황인데 엎친데 덮친다고 기름 값이 정말 죽자고 덤비니 환장할 노릇이다.
기름 값은 계속 올랐다. 기름 값이 습격해오리라는 경고는 오래 전부터 있었다. 아직도 영업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2004년 11월에 강남 신사동에 럭셔리 주유소라는 것이 문을 열었다. 그 때 그 주유소의 비싼 기름 값이 큰 화제였다. 기름에 금을 발랐냐고 묻는 기사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주유소 기름 값이 얼마였냐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번 가서 기분이라도 내볼 걸 너무 억울해들 하지 마시라. 휘발유 1L에 고작(!) 2000원이었다.(당시 평균 기름 값은 휘발유 1L에 1300원이었다.) 지금은 전국 어디를 가도 휘발유 1L에 2000원이다. 딱 3년 7개월 만에 전국 모든 주요소가 럭셔리 주유소가 됐다.
'무한 책임져야 하는 놈', 강만수
3년 사이 원유 값은 꾸준히 3배 가까이 올랐다. 그런데 갑자기 '쇼크'란다. 3년 동안 우리의 소득이 기름 값을 따라 오르다가 최근들어 급격히 줄어든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이 긴 세월동안 변변한 대책이 없던 정부들이었다. 서민의 입장에선 당장 기름 값이 경천동지할 '쇼크'에 빠질만한 일이 이미 아닌지 오래 됐다는 얘기다. 기름 값은 수년째 비쌌다.
치솟는 기름 값보다 더 기세 좋게 747이라더니, 그 숫자 놀음 합리화하느라 도끼 자루 썩는 줄 모르더니 강만수 장관이 결국 유임됐다. 그리곤 이제야 이 죽일 놈의 기름 값 때문에 정말 죽겠다고 설레발을 치며 허둥지둥 '위기관리대책회의'란걸 하신단다. 여태 뭐하시다가?
그런데 이 강만수 대책의 비상함이 또 한 번 희한하다. 위기는 위기이되 위기를 셈하는 기준이 정해져있는 위기이다. 현재 유가가 140달러 언저리에서 호시탐탐하고 있는데, 강만수 장관께서 딱 기준을 정해버리셨다. 유가가 150달러가 되면 그때부터 '진짜' 위기란다. 기름 값이 서민들 호주머니를 터는 강도가 된지는 이미 오래인데, 무슨 일이 있어도 물가만은 잡아 보시겠다고 대통령이 직접 말씀하시던데, 호들갑과는 달리 일단은 아직까지는 참아보란 말씀이시다.
부질없는 7% 성장 공약을 위해, 수출 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급등하는 환율을 일부러 방치했던 이가 바로 강만수 장관이다. 기름 값이 올라 나라 전체가 손해를 보더라도 일부 기업이 수출에서 이익을 얻으면 경제는 만사형통이라고 믿었던 이가 바로 강만수 장관이었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고물가로 이어진다는 것은 고등학교 경제 교과서에도 나온다. 상식이다. 이 상식에 반칙을 가하며, 경제를 몰상식적으로 운용하여 순식간에 나라의 꼬락서니가 10년 전, 딱 IMF 직전으로 돌아 가게 된 것이다. 경제가 무슨 음주운전도 아니고, 단어 꼴도 기묘하게 이번 한 번 만은 그냥 대리 경질로 가시겠다니 그 신묘함에 총알택시도 감탄할 지경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IMF 사태 당시 대리 경질된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재경원 차관이었다.
'새로운 낡은 놈', 2MB
그렇다고 너무 오래 참을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마도 이번 주에 유가는 150달러를 정복할 것이다. 연말까지 200달러에 갈 거라는 분석도 있는 상황에서 150달러는 중간 휴게소이지 결코 고지가 아니다.
유가가 150달러가 되면 △승용차 요일제 전국 실시 △대중목욕탕 격주 휴무 △골프장·놀이공원·유흥음식점 야간 영업시간 단축 △야간 시간대 전기사용(TV방영) 제한 등 이른바 민간규제 조치가 시행된다. '아햏햏'하다. 이게 뭔가 싶다. 이 죽일 놈은 분명 기름 값인데, 2MB 정부는 뜬금없이 국민을 잡겠단다. 참으로 열사 정부이시다.
2MB는 진정 경제의 몽상가인가, 아니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인가. 졸지에 국민들은 유가가 150달러를 치면 5일에 한 번씩은 차를 타지 말아야 하고, 목욕은 절반으로 줄이고, 밤에는 집에서 불 끄고 자게 생겼다. 이런 스타일 기억나지 않나? 맞다. 월요일 아침 애국조회 시간의 교장 선생님 말씀이 딱 이랬었다.
'실용'을 표방한 정부의 유가 대책이라면, 기름 값의 '실용'적 통제를 위해 국영 정유사를 설립하겠다는 것 정도는 나와 줘야 한다. 아무래도 이것이 너무 급진적이어서 곤란하다면, 덜 급진적이되 더 '실용'적으로 유류세 구조를 대폭 개편해야 한다고 정도는 해야 한다.(의지만 있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도록 국회의원도 182명 준비되어 있다.) 막대한 이익을 챙겨온 정유사의 답함에 징벌적 책임을 묻고, 배기량 큰 승용차와 경차를 구분해야 한다. 서민의 주머니를 보존해줘야 한다. 대중교통의 공공성을(편리성, 접근성)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실용'의 태도는 언젠가 끝날 석유 사회 너머의 세상을 착실히 준비하는 에너지 기획이어야 한다.
그런데 또 한 번 영 아니다. 몽상(夢想)은 실현될 수 없는 헛된 생각이다. 2MB는 당대 최강의 몽상가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보를 전염병으로 이해해서 인지 그의 몽상이 미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는 몽상이라는 점이다. 번번이 새롭다고 주장하는데 실상은 완전히 낡았다. 기름 값에 관한 2MB의 일장 훈시는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서 질리도록 반복된 레퍼토리이다. 위기에 빠진 정부가 국면 전환을 위하여 다른 위기를 설파하는 바로 그 장면이다.
이 죽일 놈의 기름 값을 IMF 멤버인 강만수라는 반복으로 2MB식의 '새로운 낡음'이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지, 이번 주의 열쇳말은 기름 값, 강만수, 2MB. 놈놈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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