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는 한국영화 두 편을 비롯해 모두 8편의 영화가 개봉한다.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을 제외하면 대체로 작은 영화들인 데다 개봉하는 극장수도 적은 편이지만 영화의 면면은 매우 흥미롭고 국적도 다양하다. 일단 인디스페이스에서 단독개봉하는 <궤도>는 연변에서 만들어진 최초의 장편영화다. <찰리 바틀렛>은 어른 흉내를 내는 고등학생의 좌충우돌 모험담인가 하면, <요절복통 프레드의 사랑찾기>는 독일에서 날아온 로맨틱 코미디로 사회적인 문제를 만만치 않게 녹여낸 작품. 오랜만에 극장에서 개봉되는 톰 디칠로의 영화도 반갑다. 영화광들 중에는 톰 디칠로의 <망각의 삶>을 자신의 최고의 영화로 꼽는 이들이 은근히 있다. 스페인에서 날아온 1인칭 현재시제 공포영화인 <Rec>는 부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네임레스> 등을 만든 재주꾼 감독의 신작이다. 레몬농장을 둘러싼 재판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조망하는 <레몬트리>의 시적인 풍광도 놓치기 아깝다.
. | 잘못된 만남 감독 정영배 주연 정웅인, 성지루 |
어릴 적 단짝친구였지만 고등학교 시절 삼각관계를 거치고, 군대에서는 쫄병과 고참으로 만나면서 악연이 돼버린 일도(정웅인)와 호철(성지루). 아들을 칠 뻔한 택시를 쫓아갔다가 다시 만나게 된 일도와 호철은 이제 고향인 영덕에서 신호위반과 과속을 단속하는 경찰과 택시기사로 또다시 악연을 이어가게 된다. 서로에게 앙심을 품고 사사건건 시비가 붙으면서도, 일도가 위험에 처하자 호철은 결국 일도를 돕기 위해 나서게 된다. <방울토마토>로 데뷔한 정영배 감독의 두 번째 영화. S.E.S.의 슈, 최종원, 김정난 등이 조연으로 출연하며, 인디계의 인기가수인 뷰렛도 카메오로 출연한다.
. | 궤도 감독 김광호 주연 최금호, 장소연 |
두 팔이 없지만 웬만한 일은 모두 발가락으로 능숙하게 해내는 남자(최금호)는 혼자 고립되어 살면서 산나물을 캐어 내다팔며 생활을 영위한다. 어느 날 말도, 듣지도 못하는 여자(장소연)가 남자의 집에서 머물게 된다. 둘은 비록 대화를 나눌 수 없지만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 속에 조금씩 천천히 마음을 열고 교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둘이 가까워질수록, 남자는 여자의 모습에서 죽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연변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장편 영화로,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다. 실제로 두 팔이 없는 최금호가 남자의 역할을 맡았다. 영화를 통틀어 대사는 단 서너 마디밖에 없고 별다른 큰 사건도 일어나지 않지만, 영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점샷을 통해 두 사람의 말없는 교감이 매우 밀도있게 표현되었다.
. |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 감독 오우삼 주연 양조위, 금성무, 장진 |
유비 진영이 조조의 대군에게 타격을 입자 유비의 책사 제갈량(금성무)는 강남을 통치하는 손권(장진)에게 동맹을 제의한다. 손권 휘하의 최고의 장수 주유(양조위)를 찾아간 그는 주유와의 거문고 연주를 통해 주유를 설득하는 데에 성공한다. 한편 조조(장풍의)는 100만 대군을 이끌고 적벽을 공격하기 위해 대규모의 수군을 이끌고 전진하는 한편, 이에 앞서 육지로 병사를 보낸다. 그러나 유비 진영과 주유의 합동군은 구궁팔괘진으로 조조의 군사를 물리친다. 2부로 구성된 <적벽대전>의 1부인 <적벽대전 : 거대한 전쟁의 시작>은 주유와 제갈량이 연대를 맺는 과정부터 본격적인 적벽대전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다룬다. 유비, 관우, 장비의 촉나라 세 장수 중심으로 주로 접하던 삼국지와 달리 제갈량과 주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삼국지 이야기는 한편 신선하지만 영화 전체가 2부에 대한 거대한 예고편처럼 보이는 감이 있다.
. | 찰리 바틀렛 감독 존 폴 주연 안톤 옐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
명문 사립학교마다 사고를 치고 쫓겨나던 찰리(안톤 옐친)는 결국 공립고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된다. 전학 첫날부터 학교에서 흠씬 두들겨맞은 찰리는 왕따가 되지 않기 위해 궁리를 하던 중 자신을 때렸던 머피와 파트너 관계를 맺고, 화장실에서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이 정신과 의사로부터 처방받아 얻은 약을 팔면서 일약 학교의 스타가 된다. 학교의 퀸카이자 교장의 딸인 수잔과도 가까워지자, 가드너 교장(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은 찰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게 된다. 어른 흉내를 내며 좋은 머리로 어른들을 골탕먹이기까지 하지만 결국은 사랑과 관심에 목마른 아이에 불과한 고등학생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웨스 앤더슨 감독의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의 연장선상에 있는 영화라 할 수 있지만, <찰리 바틀렛>은 아이이건 어른이건 각자 고달픈 삶에 두려움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실을 서로 인정하면서 가드너 교장과 찰리 사이에 이해가 싹트는 과정이 위트있게 묘사된다.
. | 내가 찍은 그녀는 최고의 슈퍼스타 감독 톰 디칠로 주연 스티브 부세미, 마이클 피트, 앨리슨 로먼 |
파파라치인 레스(스티브 부세미)의 조수로 일하게 된 홈리스인 토비(마이클 피트)는 우연히 스타들의 파티에 갔다가 최고의 톱가수 카르마(알리스 로먼)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레스가 파파라치라는 사실이 들통나 파티장에서 쫓겨나자 토비는 조수일을 그만두고 만다. 캐스팅 디렉터 다나를 통해 어찌어찌 배우로 데뷔하게 된 토비는 과연 카르마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조니 스웨이드>, <망각의 삶> 등을 연출하며 재기 넘치는 독립영화들을 선보였던 톰 디칠로 감독의 2006년작이 한국에 뒤늦게 개봉한다. 언제나 재미있는 연기를 선사하는 스티브 부세미는 물론, <헤드윅>, <몽상가들>, <라스트 데이즈> 등을 통해 존재감을 알린 마이클 피트, <바운드>, <페이스 오프> 등에 출연한 지나 거숀 등이 출연한다.
. | 레몬 트리 감독 에란 리클리스 주연 히암 압바스, 알리 슐리만, 로나 리파즈 미셸 |
팔레스타인 여인 살마(히암 압바스)는 이스라엘과의 국경 근처에서 레몬농장을 운영하며 근근이 살아가고 있다. 레몬농장 바로 옆, 이스라엘쪽 국경으로 신임 이스라엘 국방장관 부부가 이사를 온다. 국방장관에 대한 테러에 위협이 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당국이 레몬농장을 폐쇄하겠다는 통보를 보내자, 살마는 이에 굴하지 않고 변호사 지아드와 함께 재팔을 벌이게 된다. 자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레몬농장을 지키기 위해 벌이는 조용한 싸움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 및 지배 문제를 찬찬히 그려낸 영화.
. | Rec 감독 하우메 발라구에로, 파코 플라자 주연 마누엘라 벨라스코 |
심야 프로그램으로 소방관들을 밀착취재하기 위해 리포터 앙헬라(마누엘라 벨라스코)가 카메라멘과 함께 소방서에서 대기하고 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관들을 따라나선 이들은 건물에 폐쇄조치가 내려지면서 영문도 모른 채 건물 안에 고립된다. 한편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할머니를 병원에 옮기려던 경찰은 뜻밖에 할머니의 잔인한 공격을 받고, 이후 건물 안에 갇힌 사람들은 하나둘씩 다른 이를 잔인하게 물어뜯는 괴물로 변하게 된다. <클로버필드> 식의 1인칭 현재시제 카메라를 좀비영화에 연결시킨 아이디가 돋보이는 영화. 1인칭 카메라 시점이 오픈된 거리나 광장보다 밀폐공간 안에서 훨씬 더 위력을 발한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증명하는 영화다.
. | 요절복통 프레드의 사랑찾기 감독 안노 사울 주연 틸 슈바이거, 위르겐 포겔 |
프레드(틸 슈바이거)는 싱글맘인 마라와 결혼하고 싶어하지만 마라의 어린 아들 리누스는 프레드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리누스의 호감을 사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스타 농구선수인 머큐리오 뮐러의 싸인 볼을 갖다주는 것. 그러나 머큐리오 뮐러의 농구팀은 항상 장애인 관중석에만 싸인볼을 던진다.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 행세를 해서 결국 싸인 볼을 손에 넣은 프레드. 그러나 프레드를 주인공으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기획되면서 그는 이중의 삶을 살게 된다. <노킹 온 헤븐스 도어>, <스탠바이유어맨> 등으로 국내에도 친숙한 독일배우 틸 슈바이거의 주연작. <행복한 돼지, 행복한 엠마, 그리고 남자>에 출연했던 위르겐 포겔도 출연한다. 장애인 이슈와 관련된 다양한 관점들을 코미디 속에 매끈하게 융합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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