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개 언론시민사회단체와 일부 누리꾼으로 구성된 '언론사유화 저지 및 미디어공공성 확대를 위한 사회행동'(이하 미디어 행동)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주장했다. 이틀 전인 지난 8일, 서울중앙지검 인터넷 신뢰저해사범 전담수사팀은 조·중·동에 광고를 실은 기업의 불매 운동을 벌인 누리꾼 20여 명을 출국금지시켰다.
"검찰은 누리꾼 출국금지 조치 국내법에 근거 없어 미국 판례 검토 중"
미디어 행동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보통 '출국금지'는 국외 도피의 우려가 있는 중대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취해지는 조치"라며 "(인터넷에) 조·중·동에 광고한 기업들의 목록을 올리거나, 해당 기업에 항의 전화를 걸은 것이 출국금지를 당할 범죄란 말인가"라고 반문했다.
이들은 "게다가 검찰은 '조·중·동 광고 기업 항의·불매 운동'을 처벌할 마땅한 근거를 찾을 수 없어 미국 등의 판례를 검토하고 있다"며 "국내법 근거가 없다고 다른 나라의 판례를 끌어와 처벌하겠다는 검찰의 발상에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맹비난했다.
실제로 출국금지를 당한 이정기 씨(29)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세계 가톨릭 청년 대회에 참석하려면 출국해야 하는데 출국 직전 출국금지 조치가 자신에게 내려진 것을 알았다"라며 "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아서 국외 도피 의혹도 없다. 검찰의 과잉 수사에 대해 굉장히 당혹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민주언론주권운동캠페인'이란 카페의 운영자여서 출국금지 조치를 당한 것 같다"라며 "검찰 측에서 범법 행위라고 주장하는 광고 리스트를 내가 올린 것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실제로 출국 당시 행사를 위해 피정(가톨릭의 의식. 일상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묵상과 침묵기도를 하는 종교적 수련을 뜻함)에 들어가 출국금지와 관련한 언론도 접하지 못했고, 더군다나 검찰에게서 출국금지 통보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출국금지는 조치가 취해짐과 동시에 당사자에게 즉시 통보해야 한다.
또 다른 회원은 출국금지 조치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검찰이 누리꾼 20명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 스스로 출입국사무소에 찾아가서 자신이 속해 있는지를 알아보기도 했다.
김성균 씨는 "언론 소비자 주권 캠페인을 벌이는데 왜 정부와 검찰이 시끄럽게 주목하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왜 이렇게(스스로 출국금지인지 알아볼 만큼) 불안해야 하는가"라고 따져 물었다.
그는 "우리가 무슨 범죄를 지었거나, 무슨 잘못을 저질렀느냐"며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다. 하지만, 왜 빨간 딱지를 붙여 범죄자 취급을 하느냐. 검찰은 죄형법정주의도 모르느냐"라고 꼬집었다.
그는 "백배 양보해서 우리가 잘못했다고 치더라도 그에 맞는 형식을 취해야 하지 않느냐"라며 "우리는 이 땅에서 도망칠 만큼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내가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왜 도망치겠느냐"라고 따졌다.
미디어 행동은 "검찰이 피해자들도 원하지 않는 수사를 출국금지라는 무리한 수단까지 동원해 밀어붙이는 진짜 의도는 뻔하다"라며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제약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이명박 정부와 조·중·동을 구하는 데 앞장서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명박 정권과 조·중·동의 하수인인 검찰은 회개하라"
이날 이들이 책임을 물은 집단은 명백했다.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검찰에 대한 경고였다. 이들은 "지금 검찰이 누리꾼들을 상대로 벌인 비상식적인 행태는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갉아먹는 것이다"라며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할망정 '정권의 구원투수'라는 비난을 받아도 좋은 것인가"라고 따졌다.
특히 김성균 씨는 "이 정권은 현 정국을 버텨내지 못하고 미쳐가고 있다"라며 "검사들도 부화뇌동하고 있다"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또 검사를 향해 "당신들이 정의를 말할 수 있느냐"며 "회개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조중동 광고 기업들에 대한 항의·불매 운동은 조·중·동의 왜곡보도에서 비롯된 것이다"라며 "검찰은 어리석은 '조·중·동 구하기'를 포기하고 누리꾼들에 대한 부당한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 (조·중·동처럼) '정치 검찰'도 국민의 심판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바란다"라고 경고했다.
이들은 "누리꾼이 중대 범죄자냐", "출국금지 철회하라", "언론 소비자 운동 가로막는 검찰 수사 즉각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친 뒤 '정치검사=떡검'이라는 퍼포먼스를 실시했다.
정연우 민언련 대표와 누리꾼 두 명은 '떡 좋아하는 검사님들께 떡 드립니다'라는 손 팻말과 떡을 들고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서울지방검찰청 구본진 검사를 만나러 들어갔다. 하지만, 이내 경비가 문을 닫고 이들의 진입을 막았다. 이에 미디어 행동 측은 "떡 들고 검사를 만나러 가는 시민을 왜 막아서느냐"며 "떡을 받지 않겠다면 돈이면 되겠느냐"고 따지고, 경비는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듯이 막아서 일순간 검찰청 앞은 긴장감이 돌았다.
이어 경비는 검사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결국 미디어 행동 측은 검사를 만날 수 없었다. 이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럴 줄 알았다'면서 돌아섰다. 검찰이 시민들에게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기는 쉬웠지만, 시민들이 검찰을 만나기는 몹시 어려워 보였다.
누리꾼들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
비록 검찰이 이들의 억울함을 직접 만나 들어주지 않더라도 출국금지로 손해를 입은 누리꾼들은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이정기 씨는 "금전적으로 행사를 위해 지불한 항공료 등 제반 비용이 환급이 안 돼 시간, 금전, 정신적 피해에 크다"며 이에 대해 검찰에 문제제기를 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김성균 씨도 "카페 회원을 중심으로 민변의 도움을 받아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할 것이며, 출국금지 조치를 풀려고 노력할 것이다. 법대로 하면 우리가 이긴다. 이 사건에 검사 5명에 조사관만 20명이 말이 되느냐"라며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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