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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흥행 기대작에 대한 少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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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의 흥행 기대작에 대한 少考

[최광희의 휘뚜루마뚜루 리뷰]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님은 먼곳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기대작엔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놈놈놈>도 인파가 몰린 시사회부터 과연 기대작임을 입증했다. 기자들은 물론 충무로 영화사 관계자들과 그들의 사돈의 팔촌까지 다 몰려온 듯 했다. 용산 CGV 4개관을 대관했음에도 티켓이 일찍 동났고, 진행석에선 표를 얻지 못한 기자들의 아우성이 오갔다. 기분이 상한 모 기자가 뒤에서 수근대는 소리를 엿들었다. "영화만 꽝으로 나오면 가만 안둬!" 그는 이를 부득 부득 갈았겠지만 어쩐다? 영화가 꽝이 아니다! 좀 오버해서 말하면 짱이다! 제작비 170억 원, 다행히 헛돈 쓰지 않았다. 관객들은 한국영화가 선보이는 장르적 도전의 새로운 챕터를 확인하게 될 것 같다. 마카로니 웨스턴을 만주 벌판에 적용했으니, 혹여 이런 장르가 계속된다면 <놈놈놈>은 '김치 웨스턴'의 시조 뻘이 되려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매우 창의적이게도, 1930년대 만주라는 시공간을 웨스턴적 무대로 탈바꿈시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은 조국의 독립이고 뭐고 관심 없고 오직 보물지도 한장에 목숨 건 세 명의 총 잘 쏘는 조선 남자들 얘기다. 영화 속에서 시대적 배경은 웨스턴 적 대결 구도를 완성하기 위한 핑계처럼 보인다. 그들은 그냥 돈을 위해서이거나, 아니면 최고임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쳇말로 개타고 말장수 하던 그 만주 벌판을 달리며 치고 받을 뿐이다. 감독 김지운이 방점을 찍는 것은 이 세 인물이 얽히고 설키는 과정이 아니라, '충돌'을 일으키는 지점이다. 그러므로 이야기의 흐름이 살짝 산만한 것쯤은 크게 거슬려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이야기가 아니라 인물들이 정교하면서도 둔중하게 파열하며 발산하는 폭력의 에너지니까! 과연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다 잘 설계된 액션 신들은 영화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그 긴장감을 이병헌이 조여 놓으면 송강호가 풀어 헤치고, 정우성이 갈무리하는 식이다. 영화의 초반부 열차 강도 신에서부터 관객의 시야를 단단히 붙잡아 놓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집념이 오롯이 읽힌다. 특히 절정부에 흘러 나오는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와 대규모 추격전 장면의 절묘한 조화는 압권이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캐스팅은 물론 캐릭터의 성격에 따랐겠지만, 내 눈엔 연기의 난이도에 따라 배열된 듯 보이기도 했다. 가장 복합적인 인물인 열차 강도 태구는 송강호가 맡았다. 그의 연기에 대해선 역시 송강호라는 말 밖엔 할 말이 없다. 마적단 두목 박창의 역은 이병헌이 연기했다. 악역 포스가 제대로다. 가장 준수하고 가장 바람직한, 그러니까 단선적인 캐릭터인 현상금 사냥꾼 박도원 역은 정우성이 연기했다. 하지만 그는 영화 내내 가장 선 굵은, 그러니까 가장 '간지 나는' 액션 연기를 보여준다. 말타고 총 돌리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터, <중천>에서의 그의 연기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배우는 역시 감독이 만든다는 말이 실감날 것이다. 아무튼 <놈놈놈>은 오락영화적 쾌감이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썩 괜찮게 빠진 영화다. 웨스턴과 만주와의 이종 교배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김지운의 장르적 치기가 빚어낸 신나는 액션 활극이다. . 님은 먼곳에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쉽다. 역설적인 얘기지만 내 경우 그의 영화가 쉬워서 불편하다. 그가 광고 기획자 출신이어서인지는 몰라도, 대중의 성향에 대한 어떤 깜냥을 바탕으로 동어반복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때? 이 정도면 감동적이지 않아? 어때? 이 정도면 웃기지 않아?" 하는 것 같아 보인다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나는 <라디오 스타>나 <즐거운 인생> 등 그의 전작들을 기꺼이 즐기지 못했다. 음악의 비중이 컸던 앞선 두 편의 영화가 음악을 매개로, 극장문을 나서면 휘발되고 말 일회용 쾌감과 감동을 끌어 내려는, 진정성을 가장한 다소 얄팍한 흥행 전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느 시골 장터의 내공 깊은 장인의 솜씨가 아닌, 프렌차이즈 식당의 레시피에 맞춰 만들어진 맞춤형 요리 같았다고나 할까?
님은 먼곳에
하여 이번 영화 <님은 먼곳에>의 시사회장을 들어서며 나는 별 시답지도 않은 결심을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준익 영화의 꼼수에 넘어가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그러나 털어 놓아야 겠다.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나는 끝내 무장 해제되고 말았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우선 영화의 히로인인 수애 때문이다. 나는 그녀만 나오면 어떤 영화에서든 무장해제된다. <가족><나의 결혼원정기> 모두 그랬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녀는 그 풋풋한 매력을 한껏 발산하는데, 아~ 고백컨대, 수줍은 듯 도발적인 자태의 수애가 뿜어내는 정중동의 매혹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그 뿐이라면 뻘쭘하다. 영화 자체가 가진 흡인력도 없지 않았다. 걸림돌을 낙천성으로 넘어서는 휴먼 드라마의 익숙한 얼개는 전작들과 일맥상통하되, 또한 맞춤형 감동을 향해 돌진하는 이준익의 색깔은 여전하되, 여기에는 뭔가 색다른 구석이 하나 있다. 나는 그것을 '순이의 미스터리'라고 명명하고 싶다. 명망가로 보이는 시골 집안의 3대 독자와 결혼한 순이는 불행한 여성이다. 결혼 전부터 애인이 있던 남편(엄태웅)은 결혼하자마자 군대로 내빼 버리고 기껏 면회를 가면 그녀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그녀의 덕 없음을 책망한다. 그리고 사고를 쳐 월남전에 참전한 아들을 찾아 나서려 한다. 악이 받친 순이는 "월남, 내가 갈게요." 하고는 위문 공연단에 들어가 월남행 배에 오른다.
님은 먼곳에
이해가 안가는 대목이다. 순이는 왜 자신을 사랑하지도 않는, 그것도 다른 여자와의 로맨스와 실연에 힘겨워 하는 남편을 찾아 월남행을 택했을까. 그녀가 전쟁통의 수컷들에게 희롱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감내하며,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남편을 찾아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억울함일까? 아니면 오기나 집착일까? 혹은 남편에 대한 복수심일까? 요즘 20대 여성들이라면 이게 참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일 게 뻔하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난 그 또래의 여성이 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순이는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맞다. 헌데 묘하게도 이 의문이 이 전형적인 영화에 내 호기심을 끝까지 팽팽하게 유지시킨 힘이었다. 사실 이것도 이준익 영화의 영악함인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수애가 연기한 순이의 행위 동기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야말로, 그리고 그녀의 진심을 헤아려 보라고 객석에 툭 던져 놓은 정답 없는 질문이야말로 어느 순간 내가 참고 참았던 눈물을 뚝 흘리며 영화의 꼼수에 굴복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젠장, 결국 이준익과 그의 이야기꾼 최석환도 나랑 똑같은 남자였던 것이다. 순이는 여성성에 대한 그들과 나의 유치한 로망이 만난 접점이었던 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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