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시행 첫날 대다수 음식업체들은 아직 제대로 된 준비를 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원산지 표시제도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점주도 있었다. 정부의 홍보 부족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프레시안>은 이날 신촌 대학가 부근의 음식점 열두 곳을 돌았다. 일부 점주들은 정부 정책의 비현실성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기도 했다.
"급하게 쇠고기 준비할 때는 어쩌라고?"
연세대 부근의 ㄱ곱창집은 부랴부랴 준비를 끝냈다. 내부 메뉴판을 전면 교체하고 업소 바깥에도 '저희 업소는 한우 곱창만 사용합니다'는 글이 담긴 게시판을 세워놓았다.
하지만 이 업소 이정아 사장은 다시 메뉴판을 교체해야 할 판이다. 단순히 메뉴판에 '국내산'이라고만 표기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은 "소개지를 보니 이렇게 쓰면 안 되는 것 같다"며 "우리가 힘이 있나? 다시 바꿔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산이라 하더라도 한우, 육우, 젖소 등을 구분해야 한다.
이런 사정은 근방 대부분 음식점이 마찬가지다. ㄷ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복용 사장은 화가 단단히 났다. 현실상 수시로 메뉴판을 교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음식점은 육개장과 설렁탕, 갈비탕, 내장탕 등을 주로 판다. 첨가물에 쇠고기와 소 내장이 사용되는 음식이다.
"이번에 메뉴판 바꾸는 데 25만 원이 들었어. 안내문 하나 못 받고 뉴스 보고 내가 알아서 바꾼 거야. 공무원? 코빼기도 안 보이더구먼. 이런 엉터리가 어디 있어? 업자들도 단체 행동해야 할 판이야."
아직 메뉴판을 교체하지 않은 ㅅ고깃집 최모 사장 역시 정부 정책에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그는 "적어도 1, 2년은 계도 기간을 줘야 할 것 아니냐"며 "아무런 홍보도 안 하고 책임은 모조리 업자가 덮어쓰라는 게 말이나 되나"고 물었다.
그는 또 "재료가 수시로 바뀌는 게 현실이다. 만약 거래처에서 호주산이 떨어지고 미국산만 있으면 어쩌나"며 "클립을 꽂는 메뉴판을 사도록 정부에서 지원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ㅂ분식점은 아예 쇠고기가 들어가는 메뉴를 없애 버렸다. 일일이 메뉴판을 바꿀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업소 최양순 사장은 "뉴스를 보니 벌금을 크게 물리더라"며 "잘못하다 처벌받을까 두려워 쇠고기 메뉴를 없앴다"고 말했다. 최 사장 역시 "공무원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며 협상 책임을 업주에 돌리는 정부를 비판했다.
"기자 양반, 원산지 표시 어떻게 해야 돼?"
물론 공무원이 직접 방문해 전단지를 배포한 업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이날 급하게 배포됐다. 점주들 모두가 "공무원은 오늘 점심 때 들러 소개지 한 장을 놓고 갔다. 공무원에게서 아무런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답했다.
ㄷ갈비전문점은 단순히 게시판에만 원산지에 '국내산', '호주산'으로 표기해놓았다. 메뉴판은 바꾸지 않았다.
이는 잘못된 표기다. 국내산 쇠고기를 사용할 경우 '국내산' 표시와 함께 한우, 육우, 젖소 등을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업주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ㅂ설렁탕 전문점의 김은혜 사장은 오히려 기자에게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왔다. 공무원이 다녀갔으나 아무런 지침을 내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업소는 내부 메뉴는 손대지 않고 외부에만 현수막으로 '호주산(뉴질랜드) 청정 사골과 양지를 사용합니다'고 소개해놓았다. 외부 게시판 사용은 업주가 추가로 선택할 사안일 뿐이다.
ㅊ쌈밥집 역시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았다. 이곳 사장은 "뉴스를 보니 메뉴판을 바꾸긴 해야할 것 같은데 왜 이런 것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귀찮다는 반응을 보였다.
단속인원 612명으로 108만여 곳 단속이 가능할까
업소들의 반응은 대체로 두 가지다. 정부를 원망하거나 정부가 확실한 지침을 내려주기만 바라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발표한 단속 인력은 특별사법경찰과 지자체 인력 243명을 합해 총 4700여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올해 12월 특별단속기간이 끝나면 농산물품질관리원(농관원) 직원 112명과 명예감시원 500명 등 총 612명으로 상시 단속에 나서야 할 판이다.
단속 대상은 음식점 64만3000곳과 대형 마트·정육점 등 기존 대상업소 44만여 곳을 포함해 총 108만여 곳에 이른다. 단속인원 1인당 1765곳이 단속 대상이다. 사실상 제대로 된 단속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농관원 관계자 역시 홍보의 부족을 인정했다. 그는 "한 달 이상 언론에서 많이 홍보가 돼 예전에 비해서는 초기 효과가 높다고 생각하지만 인력이 부족해 현장의 분들이 원하시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며 "다각적으로 각 지자체, 소비자들의 협조를 구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소형 음식점에 대해서는 단속 기준을 조금 완화한다는 방침 역시 밝혔다. 100㎡ 미만 음식점의 경우 메뉴판에 원산지를 미표시하는 곳은 신고 포상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허위 표시는 포상금 지급 대상이다.
단속에 대해 "무한정 돌아다니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무작위로 점포를 골라 단속을 나가거나 신고를 받고 나가는 모양이 대부분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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