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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촛불이 만든 이중권력, 어떻게 확장해야 할까?

[기고] "한시적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필요하다"

쇠고기로 시작한 촛불이 어느새 대운하, 교육, 의료, 언론, 민영화, 물가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처음 촛불이 특정 세력의 기획에 의해 타오르지 않았듯이, 의제의 확산 역시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 촛불은 이명박 정권의 국정운영에 총체적으로 저항하려는 열망을 보이며 다양한 사회적 의제를 하나씩 불러들이고 있다. 왜 촛불은 쇠고기에 머물려 하지 않는가? 변화하는 촛불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자유주의 세력과 CEO 이명박을 향한 기대의 역설

국민들이 쇠고기를 통해 오랫동안 잠재돼 있던 시민권을 표출하고 있다. 지난 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가장 거대한 규모다. 당시 시민들은 오랜 권위주의에 의해 억눌려온 자신의 주권을 '직선제' 함성으로 드러냈고, 10년 후 민주화운동 세력이 차례로 집권하자 이들에게 비로소 권력을 온전히 위임했다.

하지만 국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자유주의 세력은 참으로 허약했다. 정치적 권위주의에 오래 물든 탓에 새로 등장한 시장 권위주의에 둔감했다. 시장권력과 정면 대응해야만 서민들의 먹고사는 문제가 풀릴 수 있음에도 이에 투항하는 것을 오히려 '개혁'으로 생각했다.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시장주의 개혁에 의해 서민 삶의 불안정화는 심화되었고, 국민들은 미래를 기대하던 세력에게서 정반대의 결과를 되돌려 받아야 했다. 기대가 좌절되며 실망은 증폭되고, 기대의 역설은 엉뚱한 곳으로 향했다. '누구든 경제만 살리면 된다!'.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실망은, 시민적 양식은 부족하지만 경제를 살릴 것 같은 CEO 대통령에 대한 기대로 변형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당선 반 년도 안 돼 영어(오륀지), 교육(0교시 우열반) 파동에 이어 재벌 위주 경제정책과 의료와 물의 시장화, 공기업 독단 인사, 언론사 장악, 서민생계대책 미숙, 번복되는 경기 전망 등이 누적되자 국민들은 '747' 공약 사기성에 대한 판단유보를 더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쇠고기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이명박을 향한 기대의 역설은 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역사적 실망을 합한 것이기에 그 폭발도 컸다. 촛불이 쇠고기로 멈추지 않는 이유이다.
▲촛불은 기존 우리 사회를 이끌던 모든 권력에 문제는 없었는가를 묻고 있다. 사진은 지난 5월 2일 처음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 ⓒ프레시안

항의하다 '권력'을 체험한 주권자

촛불이 확산되는 데는 이명박 대통령의 2MB적 행동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배후세력이라고도 할 만하다. 그럼에도 촛불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저항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국민은 87년 민주항쟁을 통해 정치권력의 대의구조를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지난 10년 자유주의 정권에, 향후 5년 이명박 정권에 권력을 위임하였다. 하지만 지난 10년의 경험, 미래 5년에 대한 예상체험은 두 정권이 모두 자신의 권력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민주화를 이루었다고 자부하였으나 주권자의 권력소외는 심화되었다.

항의로 시작했던 촛불에서 국민들은 어느새 '거리 권력'을 체험하고 있다. 물리적이고 제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의사에 반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것이 권력'이라는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권력이 행정부, 의회가 아닌 서울광장에도 존재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하게 하고, 정치적 풍운에 들뜬 18대 의원들을 국회에 등원하지 못하게 하며, 미국조차 쇠고기 추가협의에 응하도록 만드는 권력이다. 이렇게 2008년 6, 7월, 한국사회엔 '이중권력'이 형성되었다.

좋은 '정치'와 거리 '운동'은 상충되지 않아

비제도화된 권력은 취약하다. 특정한 역사적 국면에 따른 것이기에 정세 변화에 따라 금세 시들 수 있고, 권력 균열을 빌미로 제도적 권력의 반동적 개입을 유발할 수도 있다.

어찌해야 할까? 이 정도면 됐으니 제도권 정치로 책임을 넘기자는 이야기가 있다. 대의구조가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촛불을 통해 이루어진 역사적 체험을 담을 '좋은 정치'가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촛불을 수렴할 좋은 제도권 정치는 없다. 이미 '한국식' 보수정치세력이 의석의 2/3를 차지하고, 청와대는 5년간 CEO 이명박이 머무를 예정이다. 이들 정치는 이미 촛불을 든 국민 사이에서 '나쁜 정치'로 인식됐다.

이 상황에서 쇠고기 문제를 비롯해 촛불이 태우려는 사회적 의제들을 제도정치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은 거리권력을 통해 이룬 역사적 성과를 '나쁜 정치'에 헌납하는 꼴이다. 좋은 제도권 정치가 민주주의 안정화에 중요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위해서라도 현재는 이중권력 상황을 확장하여 국민의 역사적 체험을 전면화하고 이를 좋은 정치의 거름으로 삼아야 한다.

촛불은 비용이 아니라 역사적 자산

거리운동의 비용이 너무 크다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계산기 모드를 바꿔야 한다. 역사의 발전이 사람들의 정치적 실천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지금 거리에서 이뤄지는 국민들의 체험은 인류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경로이자 자산이다. 지금 촛불은 국민에게 공동의 의식, 경험, 비전을 공유하게 하는 민주주의 장을 만들고 있다.

시청 앞 광장에 직접 참여하든 지방에서 인터넷을 통해 성원하든 동시대의 거대한 '역사적 체험'이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고, 이를 통해 미래를 꿈꾸는 역사적 주체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들은 쇠고기의 먹거리 안전을 우려하고 이명박의 사기성에 분노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교육, 생태, 의료, 언론, 공기업, 서민경제 등을 이야깃거리로 제기한다. 오랫동안 성장제일주의, 시장주의 담론이 지배하던 한국사회에서 이를 의심하고 넘어서려는 기지개를 펴는 사람들이다.

한시적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제안

촛불 이후에 어찌하자고? 이명박 퇴진 요구도 제기된다.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상징구호다. 퇴진론은 거리의 열정을 담고 있지만, 퇴진 이후 대안 부재(자유주의 정당의 무기력, 진보정당의 취약)로 촛불 동력을 이끄는 데 한계를 지닌다. 국민투표론도 촛불의 정치적 매듭을 짓는 효과가 있으나 쇠고기 단일 사안으로 국민투표를 요구하기엔 촛불의 다양한 의제를 품지 못하고, 지금 여러 의제를 포괄하기엔 상황이 성숙돼 있지 못하다.

거리권력의 역사적 체험이 더 확장되어야 한다. 촛불 주체의 다양성·비정형성을 감안할 때 촛불운동을 조직화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촛불의 안정적 확장을 위해선 일정한 조직화가 불가피하다. 이 조직은 기존 사회운동세력이 벌이던 방식을 넘어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계속되는 집회의 피로도를 조정하고 새로운 의제를 담아내면서 서민의 주권과 생활권을 한국 역사에서 세워내는 작업이다.

논의 활성화를 위해 예를 들면, 쇠고기, 대운하, 교육, 의료, 공기업, 서민물가, 비정규직 등 의제별로 이명박 정권을 감독·평가하고 그에 대항하는 한시적 네트워크 국민전선으로 '서민공공성 국민연대' 정도면 어떨까? 국민연대는 이명박 정권 국정과제 의제별로 담당기구(예: 대운하 국민포럼, 공공의료 국민포럼 등)를 구성하고, 토론회에서 촛불집회까지 다양한 활동을 벌일 것이다. 만약 시한을 정권 1년으로 정하면 내년 2월에 이명박 정권의 미래에 대한 정치적 판단을 결정할 수 있다.

촛불이 지금까지 타오를 수 있었던 배경에는 유례 없는 참여자의 자발성과 창의성, 유연성이 있다. 이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조직화가 촛불의 동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진보세력의 자성과 노력도 중요하다. 보수주의, 자유주의세력이 모두 불신임당한 정치 공간을 제대로 떠안지 못한 것에 대한 뼈아픈 자성과 함께 현실성과 비전을 갖춘 '믿음직한 대안세력'으로 자리매김하는 실질적인 노력이 요청된다.

(이 글은 지난 7월 4일 교수노조·민교협·학단협이 개최한 '촛불과 한국사회' 2차 토론회 토론문을 수정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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