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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랗게 질린' 증시, 하락은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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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새파랗게 질린' 증시, 하락은 어디까지?

체력 허약해진 증시, 고유가·물가 압력 이겨낼 수 있나

1년 3개월만이다. 지난해 4월 개장 이래 처음으로 1500선을 돌파했던 주가가 다시 같은 선을 바라보고 있다. 그 사이 한때 주식시장 참가자들은 2000을 넘어선 주가를 보며 '신기원을 열었다'고 환호하기도 했다. 지금은 절망적이다.

반전의 기회를 잡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대외변수는 물론 국내 경기 전망도 부정적이다. 직접 투자자는 물론 지난해 열풍을 타고 간접투자 대열에 들어선 사람들까지 그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고유가 직격탄 맞은 증시

원래 증시는 불확실성 위에 춤춘다. 오늘의 하락이 내일의 실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악재가 너무 많다는 점은 낙관할 힘을 잃게 만든다.

가장 골치 아픈 것은 유가다. 3일 오전(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 시간 외 거래에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는 한때 144.53달러까지 올랐다. 사상 최고치다.

'150달러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말은 이미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모습이다. 특히 이란의 무함마드 알리 자파리 혁명수비대장이 전쟁이 일어날 경우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장거리 미사일로 이스라엘 본토를 직접 타격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유가 불안정성은 더 커지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은 원유 수송로다.

아직 가능성을 거론하기엔 시기상조지만 전쟁 가능성 때문에 일각에서는 '유가 400달러 시대'가 언론을 타기도 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 차킵 켈릴 의장은 지난달 26일 이란이 원유 생산을 중단한다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는 물론, 400달러까지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OPEC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석유를 생산하며 세계 2위의 천연가스 보유국가다.

유가 상승세는 주가에 치명적이다. 관련 기업 실적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국내 경기에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 성장률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성장률 둔화는 소비주체의 실질구매력 악화를 불러오고 이는 곧바로 내수 침체로 연결된다. 기업의 성장잠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주가는 '기업이 성장한다'는 가정 위에 그려지는 지표다.

삼성증권 신동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나마 100달러 선에서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었는데 150달러에 안착해버리면 감당이 어려워진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2, 3년 내에 경제주체들이 현 상황을 지탱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발 신용위기감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점 또한 증시에 부담이 되고 있다. 부동산 시장 침체로 발발한 미국의 신용위기가 올해 봄을 지나면서 잦아지는가 싶었으나 최근 다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제너럴모터스(GM)가 파산할 수 있다는 메릴린치의 보고서가 파장을 일으켰다. 여기에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미국 자동차 업체 '빅3' 중 한두 업체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해 불을 키웠다.

이 때문에 이날 GM 주가는 1954년 이래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날 하루 낙폭은 지난 1987년 이래 최대인 15%에 달했다. 뉴욕 증시는 지난해 10월에 비해 20% 이상 하락하면서 '사실상 베어마켓(약세장) 영역에 진입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신 이코노미스트는 "GM 등 미국 제조업체에 의해 다시 불거지는 미국 신용위기의 영향이 유가 상승세와 맞물려 국내 증시의 위기를 다시 키우고 있다"며 "유가 상승과 신용 위기는 달러 유동성을 떨어뜨려 선진국의 수요를 위축시킨다. 상당히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주가 어디까지 떨어질까

3일 코스피 지수는 엿새 연속 하락하며 1600선 초반까지 밀렸다. 장중 한 때 1500선까지 밀리기도 했다. 외국인의 팔자세가 멈추지 않는 데다 한동안 장을 지탱해온 개인마저 시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개인 투자자는 이번 주 들어서만 8033억 원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의 매도세는 더하다. 외국인은 지난 달 9일부터 19거래일 연속 순매도세다. 이 기간 5조6000억 원이 넘는 외국인 자금이 거래소를 빠져나갔다. 외국인과 개인의 손절매물을 기관이 힘겹게 받치는 추세가 9거래일째 이어지고 있다.

이미 지표상으로는 하락 추세가 완연하다. 5일 이동평균선은 20일 선 아래를 맴돌다 60일 선과 120일 선을 차례로 위에서 아래로 뚫고 내려가고 있다. 단기 이동평균선이 장기 이동평균선을 위에서 아래로 뚫고 내려가는(데드크로스) 것은 전형적인 하락장의 모습이다.

최근 들어 코스피 지수는 변수가 있는 날마다 어김없이 급락한다. 증시 개장 이래 처음으로 쿼드러플 위칭 데이(주가지수 선물, 주가지수 옵션, 개별주식 선물, 개별주식 옵션의 동시 만기일)를 맞은 지난달 12일 코스피는 시장의 기대 지지선이던 1700선에서 힘없이 밀려났다. 이날 하루 동안에만 외국인은 1조 원에 달하는 매도물량을 시장에 던졌다.

정부가 대운하 사업 폐기 의도를 공언한 지난달 19일 역시 주가는 2% 가까이 하락했다. 관련 테마를 타던 종목들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코스닥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 6월 한 달간 상승일은 5거래일에 불과하다. 652.15에서 출발했던 지수는 이 기간 9.5% 하락했다. 지난 2일 증권선물거래소는 오후 2시 8분 코스닥 시장에 5분간 사이드카를 발동하기도 했다. 코스닥스타선물 9월물이 6% 이상 급락한데 따른 대응이었다.

사이드카는 전 거래일 거래량이 가장 많았던 종목 가격이 6% 이상 변동한 상태로 1분간 지속되면 프로그램 호가를 5분간 정지시키는 시장 보호 조치를 말한다. 이날 코스닥 지수는 전날보다 23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말 그대로 '답이 없는 상황'이다.

물론 국내 증시만 하락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 증시는 말 그대로 '만신창이'가 됐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5800선을 넘나들던 상하이종합지수는 2700선까지 밀려났다. 베트남은 아예 경제위기론까지 거론되는 상태다. 미국과 유럽 등 온 세계 증시가 새파랗게 질린 상태다.

작년 말까지 일던 펀드 열풍에 '투자 겸 저축 겸' 뒤늦게 발을 담근 국내 투자자들의 혼을 빼놓을만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인사이트 펀드'로 공격적 펀드 운용을 천명했던 미래에셋 증권은 중국 증시 등 글로벌 증시 하락으로 펀드 손실액이 커지자 3일 최현만 부회장이 직접 나서 손실에 대한 사과까지 해야 했다.
▲주가가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대내·외 변수 모두 불안정하다. ⓒ뉴시스

과연 터닝 포인트가 올까

문제는 증시 상승 기미가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장 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운용 방향이 증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핵심은 유동성 긴축이다. 시중에 과도하게 풀린 돈을 관리해 스태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경기 긴축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으로 가는 최악의 상태를 잡겠다는 정부 의지가 증시에는 부정적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계 대출 규제와 리스크 관리 강화, 금융 기관의 수익성 집중 관리는 모두 돈줄을 죄어 개인과 기업의 투자 여력에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정부가 출범 초기 경기 확대 기조를 그대로 유지했더라면 종국에는 더 큰 파국이 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신 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새 정책은 사실 늦은 감이 많다. 이처럼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기존의 내수 유지 정책을 지속했다면 어느 순간 환율을 더 이상 통제할 수 없게 돼 파국을 불러올 가능성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수 살리기나 물가 안정책 모두 부작용은 피할 수 없다. 물가 안정으로 가는 이상 내수 침체는 감내해야 하며 증시에 미칠 악영향도 감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존 정부 정책 아래 경제 여건이 너무 악화돼 증시에 미칠 희생은 감내해야만 한다는 지적이다.

선물시장도 증시에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다. 3일 코스피200 지수선물은 엿새 연속 하락하며 207선까지 밀렸다. 대우증권 심상범 연구원은 이날 보고서에서 "선물시장 지표들이 지수 반등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지만 어디까지나 '투기세력의 컨센서스'"라며 "현물시장이 끝내 하락세를 끊지 못해 투기 세력마저 반등에 대한 희망을 놓는다면 문제는 심각해진다"고 했다.

문제는 그 동안 쌓인 선물 미결제약정이 10만 계약을 넘어섰다는데 있다. 선물계약이 한 번에 증시에 쏟아진다면 안 그래도 허약해진 증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다만 지난달 내내 급증했던 매도 미결제 증가세가 둔화된 반면 매수 미결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기술적으로 반등할 때가 됐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지난해 우리 증시가 워낙 가파르게 올라 그에 따른 반발작용도 컸다는 말이다. 다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목소리가 더 힘을 받는다. 키움증권 변준호 연구원은 "국내 증시의 매력도를 감안하면 아직은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국제 금융시장의 움직임을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단기적으로는 3일(현지시간) 유럽중앙은행(ECB)의 금리 결정이 앞으로 국내 증시의 방향성을 결정할 수 있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유럽 역시 물가 상승 압력에 처했다는 말이다. 결국 문제는 유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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