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복잡해지는 사회만큼 하루하루 신문 지면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도 복잡해져간다.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함에 때로 두통까지 느껴지는 이 상황은 오히려 엉뚱한 상상을 자극한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을 찔러주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있다면….' 언뜻 보면 불가능해 보이는, 그러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일에 선뜻 나선 이가 있다. 매주 초, 김완 씨가 제시하는 '열쇳말'이 하나씩 <프레시안>을 통해 선보인다. 김완 씨는 문화연대, 공공미디어연구소에서 '문화 불모지' 한국 사회를 바꾸고자 고군분투하는 젊은 활동가. 그간 <미디어스>, <참세상> 등에 칼럼을 써왔던 김완 씨는 새 연재의 '각오'를 이렇게 밝혔다. "영화를 보면 단 한 장면으로 영화가 전하는 온갖 메시지가 전달 될 때가 있다. 매주 초, 그 한 장면이 될 만한, 열쇳말을 추적, 수배, 예고하고자 한다. 엑기스 없는 홍보용 프리뷰가 아니라 '범인은 절름발이다!'를 외치는 스포일러(spoiler)를 지향한다." <편집자> |
첫 번째 열쇳말, 마법
인간이 존재와 실존 사이에 근본적 부조화가 놓여 있음을 처음 깨닫는 때는 언제일까? 사탕은 거저 생기는 것이 아니라 돈이란 것과 교환되는 것임을 알게 된 어느 날, 아니면 죽어라 공부한 나보다 깨지도록 거울만 본 친구가 시험을 더 잘 봤을 때, 어찌되었건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삶은 부조리하다는 존재론적 깨달음과 마주한 그 순간부터 스포츠에 대한 흠모는 시작된다(고 믿는다.)
승리보단 패배에, 화려함보단 묵묵함에 익숙해져야 하는 고단한 인생이다. 예상치 못한 어느 한 순간에는 '마법'이 반드시 찾아오리라는 소박한 믿음은 그 자체로 정당하다. '마법'이 있으리라는 상상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풍부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삶은 스포츠에 투영된다.
그리고 실제 스포츠에서 '마법'적 순간과 마주하게 되면 삶은 그야말로 열광과 환희의 시간이 된다. 월드컵 4강에 올랐던 2002년 여름의 한국과 '유로2008' 4강에 오른 바로 지금의 러시아처럼 말이다.
히딩크의 마법이 가능한 이유
히딩크 감독은 점점 신묘한 마법사의 풍모를 갖춰가고 있다. 억세게 운수 좋은 남자라고만 부르기에는 너무나도 탁월한 그의 업적은 계속 반복되고 있다. 유럽 축구의 변두리에 머물던 러시아가 유로2008 4강에 오를 것이라고 예견한 사람은 단언하건대 지구상에 단 한 명도 없었을 것이다. (2002년 한국의 4강이 그랬던 것처럼.)
그렇다면, '기적'의 승부를 연출하는 히딩크 마법의 본질은 무엇일까? 간단한 대답은 그것은 스포츠라는 것이다. 원래 공은 둥근 것이니까. 그리고 조금 복잡하게 대답하자면, 히딩크는 시간을 초월해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그는 철저한 근대주의자이다. 그의 축구는 선수 개개인의 자율성 통제와 집단적 훈육에 기반을 둔다. 선수 개개인을 팀의 수단으로 사고하고, 감독과 선수를 위계적 질서로 조직하는 히딩크의 스타일은 철저한 근대의 양식이다.
'강철 같은 체력과 톱니바퀴로서의 조직'이 강조되는 히딩크의 철학은 '유기적 흐름과 창조의 집합체로서의 조직'이 강조되는 오늘의 유행을 거스른다. 히딩크의 마법은 확립되고 조직 충족적인, 충분히 정의할 수 있고 통일성을 갖는 체력의 체계로 가능하다.
그 마법이 가능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것은 축구니까. 골을 넣는 것만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되는 것이니까. 그라운드는 민주주의와 같은 복잡한 무엇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까.
이명박의 '마법'이 불가능한 이유
고단한 삶을 위로했던 히딩크의 마법으로부터 6년이 흐른 한국 사회는 2002년과 비슷한 모양새의 겉 풍경이지만 실상 속은 전혀 다른, 마계(魔界)의 마법에 빠져있다.
바로, 이명박의 '마법'이다. 그의 마법은 민주주의를 비루한 것으로 만들고 삶의 고단함을 가중시키는 마법이다. 영어 몰입의 주술이요, 1% 고소영, 강부자를 위한 마술이다. 결정적으로, 아메리카 프렌들리, 비즈니스 프렌들리, 조중동 프렌들리를 위하여 보편적 권리인 건강권과 자유권을 제물로 바쳐야 하는 마법이다. 단언컨대, 이명박의 마법은 현대사에서 구현된 최악의 마법이다.
그렇다면 이명박은 왜 이토록 엉망진창인, 문자 그대로 최악인 마법을 펼치고 있는 것 일까? 역시 간단한 대답은 이명박은 감독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 민주주의는 독단을 용서하지 않는 데서 시작하고 완성된다.
그러나 그의 정치는 국민 개개인의 자율성에 대한 통제와 억압을 기반으로 하는 군부 독재와 닮아있다. 국민 개개인들은 경제의 수단으로만 사고되고, 대통령과 국민을 위계적 질서로 조직하려는 이명박의 스타일은 철저히 민주주의 이전의 양식이다. '불법 폭력 집회와 엄중한 법질서의 국가'가 강조되는 이명박의 인식은 '다원적인 흐름과 창조의 집합체로서의 대중지성'이 강조되는 오늘의 민주주의를 거스른다. 이명박의 마법은 확립되고 권력 충족적인 공권력과 충분히 정의할 수 없고 아무런 통일성도 갖추지 못하는 협상의 체계로만 기능한다.
그 마법이 실패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정은 축구가, 스포츠가 아니니까. 소고기를 수입하고 차를 파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하여 일사불란하게 명박산성을 쌓으면 이기는 것이 아니니까. 사회는 그라운드와는 달리 언제나 더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니까.
시민함대는 그의 마법을 멈춰세울 수 있을까?
한 때, '히딩크처럼 생각하고, 이명박처럼 실천하라'던 격언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2002년 히딩크의 마법과 청계천이란 마술이 겹치던 때의 이야기이다. 히딩크처럼 생각하는 이명박의 마법은 어쩌면 청계천까지, 공사장 정도까지를 감동시킬 수 있는 마법으로 끝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계속되길 기대했지만 2008년 여름을 지배했던 히딩크의 마법도 끝났다. 히딩크의 마법을 멈춰 세운 것은 바로, '무적함대' 스페인이었다. 출신 지역의 차이와 소속팀의 경쟁의식에 따른 갈등의 역사로 점철됐던 스페인은 대표 팀은 과거 모든 실패의 상징과도 같았던 공격수 '라울'을 제외하는 세대교체를 단행한 지금 전혀 새로운 '무적함대'의 위용을 보이고 있다. 2008년 여름, 스페인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팀이다.
2008년 여름 이명박의 마법은 끝나지 않고 있다. 명박산성을 경계로 아직도 시민함대와 첨예하게 마주하고 있다. 정부와 조·중·동은 과거의 집회를 상징하던 이들이 여전히 오늘의 극렬 폭력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는 공안의 굿판을 벌이고 있지만, 집회의 실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어제의 상징들은 여전히 다소 뒤편에 서 있다. 시민함대의 맨 앞은 언제나 "미친 교육 물러가라"는 교복부대, "명박지옥 김밥천국"의 김밥부대, "넌 뭐든 하지마"를 외치는 유모차 부대였다.
누구도 선뜻 믿기 어려웠던 구성원 교체를 단행한 2008년의 시민함대의 집단적 마법이 과연, 이미 실패한 이명박의 독단적 마법을 멈춰 세우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새날을 열 수 있을까? 이번 주에 들여다봐야 할 열쇳말은 바로 '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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