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경, 서울 종로구 통인동 참여연대 사무실 앞에서 만난 한 간사는 허탈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오전 6시, 경찰은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이 마련돼 있는 참여연대 사무실과, 국민대책회의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영등포 한국진보연대 사무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나섰다. 두 달 간 이어진 촛불 집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대책회의에서 '불법시위용품'을 찾아내겠다는 게 주목적이었다.
당시는 며칠 전부터 압수수색한다는 소문을 듣고 각 층마다 대기하고 있던 참여연대 간사와 대책회의 자원활동가들도 밤샘 끝에 잠이 들 무렵이었다. 전경 한 부대와 50여 명의 경찰을 동원해 수색에 들어온 경찰은 참여연대 사무실 뒷담을 넘어 지하로 연결된 입구로 들어왔다. 지하쪽에 마련된 임시 거처에서 잠을 자고 있던 활동가들은 경찰이 일방적으로 한쪽 방으로 몰아넣은 뒤 신분증 확인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영장 제시 없이 무조건 수색부터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은 5층짜리 건물인 참여연대의 1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지난 6월 16일까지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있었던 5층도 압수수색해야 한다며 지하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갔다. 당시 사무실을 지키고 있던 간사는 10여 명의 사복 경찰을 보고 "이곳은 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아니다"라며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경찰은 "참여연대 사무실인지 확인해야겠다"며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시 사무실을 지키던 한 간사는 "경찰은 '곧 영장이 올 것'이라며 영장 제시도 없이 사무실로 들어왔고, 수색 이유를 제시하는 수사과장도 없었다"고 전했다.
한편, 1층에 있는 사무실에서도 영장 없이 수색에 나선 건 마찬가지였다. 경찰은 사무실 앞에서 영장 제시를 요구하는 간사들의 말을 무시하고, 6시 50분경 현관 자물쇠를 전기톱으로 부수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후 경찰은 1시간 여동안 국민대책회의가 사용하던 컴퓨터 3대를 비롯해 '이명박 OUT' 등의 문구가 적힌 손피켓, 모래포대, 깃발, 우의 세 박스 등을 쓰레기봉투 20여개에 나눠 압수했다.
경찰은 평소 참여연대 자원활동가들이 쓰던 방과 안내데스크까지 수색에 나섰고, 방송장비 등 일부 참여연대 비품까지 가지고 간 것으로 전해졌다. 또 지난 28일 집회에서 경찰이 던진 소화기 등 증거 물품도 가져갔다. 1시간 만에 압수수색은 완료됐고, 사무실은 어지럽게 물품들이 흐트러진 채 남겨졌다.
"공안적 탄압으로 촛불 막을 수 없을 것"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대책회의 임태훈 인권법률의료지원팀장은 "압수수색 진행 과정이 굉장히 어설펐다"며 "자원활동가들에게 신분증을 요구하다가, 압수수색에 필요한 절차가 아니면 이것은 적법 절차가 아니다라고 했더니 물러나는 등 우왕좌왕했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참여연대 안내데스크에 있던 방문록이나 상담자료마저 뒤졌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한 간사는 "뒷담을 넘어 들어오고, 자물쇠를 부순 것에 대해 주거침입이라며 항의했더니 경찰이 '법대로 해라', '경찰에 신고하라'는 식으로 대꾸하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시민단체에 대한 압수수색이 전격 단행된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이에 대해 참여연대 김민영 사무처장은 "영장을 들고 온 압수수색 자체에 뭐라고 하긴 어렵지만, 문제는 검찰과 경찰이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100여 명이 넘는 경찰은 동원해 수색에 나섰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민영 처장은 "실제로 가지고 갈 것이 없는데도 국민대책회의를 불법 단체인듯 몰아 여론을 조장하려는 퍼포먼스라고 보여진다"며 "지난 25일부터 이명박 정부는 촛불 집회를 불법, 과격, 폭력 시위로 덧칠하며, 이를 사회단체가 주도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단체와 국민을 나누려는 일련의 작업 중 하나라고 보여진다"고 덧붙였다.
김민영 처장은 "그러나 집회 과정에서 봤듯 정권이 집회를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간부를 구속해도 오히려 시민들은 공안적 탄압에 더 분노하고 있다"며 "앞으로 더 많은 시민들이 정권의 부당성에 항의하며 촛불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진보연대도 전격 압수…컴퓨터 22대 등
또 경찰은 진보연대 사무실도 같은 시간 압수수색에 나서 데스크톱 컴퓨터 22대와 노트북 컴퓨터 1대, 각종 서류, 광우병 관련 플래카드를 압수했으며, 사무실에서 숙직하고 있던 진보연대 황순원 민주인권국장을 연행했다.
황 국장은 최근 촛불집회 주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된 8명의 대책회의 관계자 가운데 한 명이며, 국민대책회의 안진걸 팀장 등에 이어 3번째로 구속됐다.
진보연대 관계자는 "저희들로서도 왜 여기를 압수수색 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며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의나 다른 활동도 하지 않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오히려 다른 업무에 필요한 컴퓨터를 다 들고 가서 업무가 마비된 상태"라고 전했다.
국민대책회의와 진보연대 측은 각각 이날 중으로 관련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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