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의 단속을 피하다 다친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처음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아 보상을 받게 됐다.
부산고법은 지난 20일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중국인 장슈와이(22) 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뒤집고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장 씨는 사고를 당한 뒤 근로복지공단에 요양 승인 신청을 냈으나 승인을 거부당했고 이를 취소하라는 소송을 냈으나 지난 1월 패소했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인 근로자를 고용하지 못했던 사업주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사업을 위해 관리부장을 통해 도주하도록 지시했고, 원고는 이 지시에 따라 일을 하다 피신하던 도중 재해를 당했기 때문에 업무상 재해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판결은 지난 1월 1심에서 창원지방법원이 장슈와이의 재해를 "통상적인 업무 범위나 과정에서 발생한 재해로 보기 어렵다", "업무장소에서 업무시간 내에 발생한 사고라도 비업무적인 활동 때문에 생긴 사고라면 업무상 재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한 것과 대조적이다.
장 씨는 2006년 5월 경남 창원의 한 전자회사에서 미등록 노동자로 일하던 중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들이닥치자 사업주의 피하라는 지시에 따라 2층 사무실 창문을 통해 달아나다 큰 부상을 입었다. 장 씨는 2층에서 에어컨 줄을 타고 내려가다 에어컨 줄이 끊어져 시멘트 바닥으로 추락해 두개골 골절 등의 상처를 입었다.
장 씨는 뇌의 일부를 들어내고 인공뼈를 넣는 수술을 3번이나 받았지만 언어와 청각, 지적 장애를 겪고 있으며 왼쪽 팔과 다리도 움직일 수 없는 반신불수 상태다. 치료가 종결되면 장애인 2급 판정을 받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소식을 듣고 중국에서 건너 온 장 씨 부모는 마산출입국관리사무소와 근로복지공단 창원지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여왔다. 장 씨의 사고 소식이 지역사회에 알려지자 시민단체가 모금을 통해 병원비의 일부를 마련하기도 했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 따르면 법무부의 단속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으나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해 보상을 받지 못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500여 명에 이른다. 장 씨의 판결 이후 이들의 산재인정을 요구하는 소송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이철승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소장은 "이 판결 이후 정부 내에서 산재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가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정부의 강제단속에서 크고 작은 부상사고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면 이주노동자 단속 시 최소한의 안전조치와 적법절차를 마련하고 사전에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는 조치 등이 취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사고발생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안전조치 없이 단속하다 사고를 낸 국가에게도 책임을 묻는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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