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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다시 들불로 옮겨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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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다시 들불로 옮겨붙다"

[현장] '48시간 국민 행동' 시작

7시가 지났지만 시청 앞 광장은 빈 자리가 많았다. 시민들은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한 여성은 "사람이 적게 모이면 조·중·동이 원하는 대로 되는 건데 어떡하냐"며 걱정했다.

'일단' 촛불 집회는 시작됐다. 청소년들이 발언대에 올라 '이명박 OUT'이란 노래 장단에 맞춰 춤을 췄다. 시민들의 호응은 크지 않았다. 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은 기자와 얘기를 나누는 도중에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기우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늘어났다. 8시가 지날 무렵에는 2만여 명(시민단체 추산)이 넘는 시민이 광장을 메웠다. 거리 행진에도 오랜만에 생기가 넘쳤다. 시민들은 아직 지치지 않았다.

시민들은 지치지 않았다

이 집회의 신기한 점 중 하나는 매일 같이 처음 오는 참여자가 있다는 것이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인천에서 온 초등학생 합창단이 시위 발언대에 올랐다. 합창단의 이름은 '이제 방학이다. 이명박은 각오해라'.

어린이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자 축 처져 있던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앵콜 공연까지 마친 방과 후 학교 '늘봄교실' 아이들 16명은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발언대를 내려왔다.
▲인터넷에서 누리꾼들이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가 "이제 큰일났다. 방학이 온다"다. 이 합창단의 이름도 '이제 방학이다. 이명박은 각오해라'다. ⓒ프레시안

안건영 어린이(인천 신촌초등학교 6학년)는 "광우병 쇠고기가 수입된다고 해서 울기도 했어요. 그런데 춤을 추고 나니 스트레스가 다 풀려서 좋아요"라고 말했다. 이날 공연을 위해 아이들은 지난 4일간 매일 1시간 이상씩 연습해 왔다고 답했다.
▲시민들에 맞서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을 해 논란을 일으킨 이문열 씨를 비판하는 시민이 많았다. ⓒ프레시안

지난 10일 이후 지쳐있던 시민들의 힘을 불어넣는 방법은 똑같았다. 먼저 아이들이 무대를 만들고 어른이 이어받았다. 촌철살인의 말솜씨로 광우병 정국이 낳은 또 하나의 스타가 된 '가마솥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자 사람들은 금세 10일 이전 보여줬던 활력을 되찾은 듯 보였다.

멀리서 온 손님은 또 있었다. 땅끝마을 해남에서는 6명의 목사가 시청 앞을 찾았다.

황선교회 박영배 목사는 "바쁘지만 '사탄 목사' 때문에 기독교가 '개독교'로 비난받는 현실이 안타까워 서울을 찾았다"며 "하늘만 보고 이 땅의 사람을 외면하는 것은 제대로 된 신앙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그가 말한 '사탄 목사'는 물론 추부길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을 말한다.

박 목사는 "정의롭고 평화롭고 창조의 질서가 보존되는 세계가 하나님의 뜻"이라며 "광우병 소는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영화 <말아톤>을 만든 정윤철 감독도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 정 감독은 "이전 정부가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스크린쿼터를 절반으로 축소하더니 이명박 정부는 먹고 사는 문제를 위협하고 있다"며 "믿을 건 오직 여러분 자신뿐이다. 여당이고 야당이고 못 믿겠다"고 말했다.

다시 폭발한 촛불, 들불로 번지다

8시 45분경, 다시 행진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마찰이 일어났다.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만들며 행진 대열을 따라왔기 때문이다.

박원석 상황실장은 "오늘 분명히 폴리스라인을 치우라고 경고했다. 경찰은 당장 폴리스라인을 걷어내라"고 요구했다. 시민들도 박 상황실장에 호응하며 폴리스라인을 점차 밀어내면서 남대문로로 이동했다. 경찰은 곧 물러났다.
▲이날 시민들은 다시 시청 앞 광장을 환하게 밝혔다. 시민들은 촛불 집회 참가자 수를 축소하는 경찰을 비웃었다. 이날 경찰은 처음 시민들이 적게 모이자 집회 참가자수가 500명이라고 밝혔다. ⓒ뉴시스

대통령이 두 번째 사과를 했지만 바뀐 것은 없었다. 시민들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시민들은 거리를 이동하며 "전면 재협상, 이명박 심판"을 요구했다. 이어서 자연스럽게 "이명박은 물러나라"는 외침이 나왔다.

거리도 시위에 익숙해지는 모양새였다. 시위대가 광화문으로 접근하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위대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표정부터가 달랐다. 시위대가 부르는 '광야에서'를 따라부르는 사람도 많았다. 시위대가 나눠주는 피켓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었다. 한 할아버지가 시위대들을 향해 "잘한다"며 박수를 쳤다.

대학생 이모(24) 씨는 "사람이 적게 모일까봐 걱정되지 않았나"는 기자의 질문에 "보세요. 들불로 번졌잖아요"라고 답했다. 시위대의 목소리는 우렁찬 반면 취재차 시위대를 쫓는 기자나 거리를 지나가던 사람들이 지친 듯 보였다.

하지만 시위대를 달갑게 보지 않는 시민도 분명 존재했다. 한 남성은 지나가며 친구에게 "아무리 대의가 좋다고 해도…"라며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 한 노점상인도 "미치겠네"라고 혼잣말을 했다.

우리는 계속 승리하고 있다

광화문 진입로에서 시위대를 맞은 것은 경찰 차량 뒤에 몸을 숨긴 경찰의 채증이었다. 구호를 외치고 시청 앞으로 이동하는 시민이 아닌 일부는 폴리스라인 앞에서 경찰과 말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10시가 되자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이 해산을 종용했다. 방송을 하는 여성 경찰(이른바 '확성기녀')도 다시 도로를 비워줄 것을 요구했다. 사람들은 야유를 보내며 "왜 경찰은 얼굴을 가리고 불법 채증을 하면서 우리보고만 법을 지키라고 하느냐"고 따져물었다.

새로운 조롱 시위가 이날도 선보였다. 일명 '뚜벅이중대'라는 시민 10여 명이 폴리스라인 앞에서 방송의 조명을 받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별칭 중 하나가 '쥐박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 캐릭터를 이용한 풍자 그림이 눈에 띈다. ⓒ프레시안

그들은 '헌법 제1조'를 개사한 '쥐새끼가(歌)'를 큰 소리로 부르며 시민들의 관심을 끌었다. 노래 가사는 "이명박이는 전과 14범이다. 이명박이의 모든 권력은 거짓으로부터 나온다"였다.

노래를 부른 한 시민은 "집회에 수십 차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얼굴을 알게 된 사람들끼리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들은 전·의경의 위압적인 기합을 흉내내며 노래 제목을 큰 소리로 외치고 짧은 공연을 마쳤다.

시민들은 결코 지쳐보이지 않았다. 서로가 위로를 받고, 힘을 주는 듯했다. 집회에 자주 나오면서 위통을 앓고 살이 5㎏이나 빠졌다는 안현(36·음악교사) 씨는 "결국 질긴 놈이 이긴다. 그래서 오기를 갖고 나온다"며 "축제와 같은 집회 분위기에 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그는 "지치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 싸움에서 우리는 도덕적 진보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시민들도 어렴풋이 이를 느끼는 것 같다"며 "불안감이 안 느껴진다. 매일 승리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치지 않는 것이다"고 답했다.

참여연대 안진걸 간사는 "집회의 방식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의견이 분분한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우리가 민주적이기 때문이다. 투쟁이 길어지는 것도 당연하다. 정부는 비민주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결과는 긍정적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11시가 넘어서며 시위대를 인도로 밀어올리고 차량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광화문으로 이동한다는 소식을 듣자 부랴부랴 전·의경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다시 청와대로 향하는 모든 길은 막혔다.

인근에 사는 한 시민은 "도대체 뭐하자는 짓이냐. 도로를 이렇게 막아놓으면 어쩌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 지휘관이 할 말은 없었다. 그는 "죄송하다. 저라도 이러고 싶겠나. 시키니까 하는 것이니 이해해 달라"고 사과하기 바빴다.
▲촛불의 물결이 다시 서울 도심을 뒤덮었다. 정부는 부랴부랴 광화문에서 경복궁에 이르는 모든 길목을 차단했다. 정부는 스스로 국민에게서 고립을 택했다. 촛불만이 유유히 도심과 소통하고 있었다. ⓒ뉴시스

내일 광화문은 다시 단절될 것이다. '명박산성'이 아니라도, 경찰은 어떤 방식으로든 청와대를 서울에서 분리시킬 것이다.

분명 처음은 불안했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사람들은 주말을 즐길 준비가 됐다.

'48시간 국민행동'이 시작됐다.
"세상이 바뀌었다. 사람도 변했다. 그래서 이긴다."

집회를 준비하고 있던 광우병국민대책회의 박원석 상황실장을 만났다. 그는 조금 지친 표정이었다. 대책회의 관계자들도 어느 정도는 지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시민에게서 힘을 얻는다고 답했다. 다음은 그와의 짤막한 인터뷰.

- 당초 정부에 공언했던 20일이 됐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재협상 요구에 머물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협상하라'는 것은 시위 처음부터 지금까지 일관된 구호다. 그런데 '이명박은 물러가라'도 자연스럽게 나온 외침이다. 정부는 아직도 왜 시민들이 이런 말을 하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방법은 재협상밖에 없다. 아니면 무조건 비판과 불신이 커진다.

결국 이 정부가 시민들을 무시한다면 정부가 펴는 어떤 정책도 추진되지 못할 것이다. 식물정부가 될 것이라는 경고다. 지금 그렇게 돼 가고 있다."

- 대통령의 두 번째 사과를 어떻게 봤나?

"대통령이 분명 심리적인 부담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태도가 공손해지지 않았나.

그런데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도 안 되는 사과를 받으려고 50일 가까이 거리로 나온 것이 아니다. 재협상을 요구하려고 나온 것이다. 심지어 대통령의 지지자도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나. 대통령이 택할 다른 방법은 없다. 기만하지 말라."

- 시민 사이에서는 대책회의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언제까지 똑같은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갈 것이냐"는 얘기다. 다시 청와대 진입 시도를 하자는 주장도 나오는데?

"우리가 일부 강경한 목소리를 무작정 따를 수는 없다. 처음 국민들이 만들어낸 촛불 집회는 저항이자 축제의 성격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이 방식을 근본적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물론 특정 전술의 변화 필요성은 있다. 다수 의견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국민들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책회의는 다수 의견을 취합하고 이를 따르는 것뿐이다.

만약 내일 '명박산성'이 다시 지어진다면 우리는 '국민토성'을 만들어 청와대를 대한민국에서 고립시켜버릴 계획이다. 지금 모래주머니를 계속 만들고 있다. 시민들에게도 내일 나올 때 모래주머니를 갖고 나와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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