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거리에서도 촛불은 타오를 수 있을까? 18일 오후 내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안개처럼 내려앉았던 질문이다. 보수 언론은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어 조바심 냈다. 지난 40여 일 동안 촛불을 밝혀왔던 시민들은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에 목말랐다.
이날 저녁, 비옷을 입은 시민들이 하나둘씩 광장에 모이면서 답이 드러났다. 장마가 시작됐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42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이날, 1000여 명의 시민이 모였다.
"취임 4개월만에 지지율 7.4% 기록한 '747'정권"
이날 촛불을 들고 모인 시민들은 "폭우가 쏟아져도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또 촛불의 열기가 식고 있다고 보도하는 <조선>, <중앙>, <동아> 등 보수 언론에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시민들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 반대라는 주장에만 머물러 있던 상태를 벗어나 민영화, 경쟁 위주 교육정책, 대운하 추진 등 이명박 정부 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으로 관심사를 넓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계속 추락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날개 없이 떨어지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에 대해 이야기한 이들은 많았다. 이날 연단에 오른 한의사는 "이명박 정부는 747정권"이라고 말했다.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지지율을 7.4%를 기록한 세계에서 유일한 정권"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장맛비에 촛불 꺼진다?"…"촛불은 지치지 않는다"
이처럼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정권에 대해 백기사를 자청한 지식인들이 있다. 튀는 발언으로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작가 이문열 씨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보수 언론은 장마가 촛불 집회의 열기를 식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박원석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이 시민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장맛비가 계속 되고 있다. 지치지 않을 자신이 있으시냐"라고. 뜨겁게 달궈진 "네"라는 대답에 고무된 박 실장은 "조·중·동과 보수논객들이 촛불을 끄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하지만 우리는 승리하고 있다"라고 외쳤다.
박 실장은 "우리는 40여 일 동안 물대포와 방패와 곤봉, 명박산성도 이겨내며 이 자리를 지켜왔다"면서 "국민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자율규제'를 이야기하는 정부의 거짓과 기만에 대해 잘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광우병 문제만이 아니라 대운하, 민영화 등 이명박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막기 위해 계속 촛불을 들도록 호소했다.
"정부의 기만적인 말장난…국민이 원하는 것은 오직 '재협상'"
자율규제, 추가 협상 등의 표현으로 국민을 헷갈리게 하는 정부의 기만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는 계속 터져 나왔다. 연단에 오른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재협상"이라고 못박았다. 정부가 국민에게 기만적인 대응을 하고 있다고 거듭 지적한 강 의원은 "김종훈 대표가 미국에서 받아오는 결과는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외면한 어림없는 수작"이라고 외쳤다.
이어 강 의원은 "폭우도 촛불을 끌 수 없다. 국민의 행복을 가리키는 시대의 등대불인 촛불은 누구고 끌 수 없다"고 말했다.
장마를 계기로 촛불의 열기가 시들기를 바라는 보수 언론의 속내를 꼬집은 이들은 많았다. 이날 사회를 맡은 윤희숙 씨도 그 중 한 명이다. 윤 씨는 "지난 10일, 100만 명의 시민이 모여 20일까지 재협상 시한을 제시했다. 그래서 국민은 지금 기다리는 중이다. 그런데 (보수 언론은) 마치 촛불의 열기가 식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대고 있다"며 "촛불이 꺼지는 날은 이명박 정권이 승리하는 날이 아니라, 정권이 퇴진하고 촛불이 승리하는 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촛불 집회도 6·10 집회처럼"
적어도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정부가 20일까지 재협상 방침을 내놓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래서 국민대책회의와 시민들은 20일부터 시작되는 '48시간 연속 비상국민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21일에는 대규모 촛불집회가 예정돼 있다.
이날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거리를 지나는 다른 시민들에게 '48시간 연속 비상국민행동'과 21일 촛불집회에 참가하도록 호소했다.
행사를 마친 뒤, 시민들은 시청을 출발해 명동과 종로, 광화문을 돌아 다시 시청으로 이어지는 행진을 벌였다.
행진 대열 속에서 "이명박 정권 심판" 등의 구호를 외치던 시민 강영수 씨는 "지난 10일 집회에 백만 명이 모였다. 보수 언론과 정부는 그처럼 많은 인원이 모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게다. 21일 집회에도 10일 집회에서처럼 많은 시민이 참여해서 보수 언론과 정부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라고 말했다.
"지금 촛불 꺼지면, 이명박 정부에 잘못된 교훈 남긴다"
대학생 이지선 씨도 "촛불이 지금 꺼지면, 이명박 정부에게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한다. 오히려 정부가 고집을 부리며 버티다보면, 국민의 반대도 누그러진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지금은 촛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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