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이무영 감독에게서 문자가 날아 왔다. "<아버지와 마리와 나> 시사가 열립니다. 이번에는 아주 많은 도움이 필요합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5~6년 전 쯤 우연한 술자리에서와, 그가 진행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가 전부였는데, 용케도 나를 기억하고 문자를 보냈으니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신작 개봉을 앞둔 그의 심정이 그만큼 '절박하다'는 반증일 터, 두번째 연출작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2002)의 '파란만장한 흥행 실패' 이후 무려 6년간의 절치부심 끝에 내놓은 작품이니 당연한 노릇일 것이다. 이무영은 방송인이자 팝칼럼니스트이며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이다. 한마디로 다재다능한 그는, 실제로 보면 꽤 다정다감하고 살가운 미소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나는 그가 '바른생활 사나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휴머니스트>나 <철없는 아내...>같은 컬트적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이 살짝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하긴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기타노 다케시도 영화 감독으로 돌아가면 가끔 전위적인 영화를 만든다), 어쨌든 이번에 내놓은 영화는 그의 평소 이미지와 그나마 가장 매치가 잘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또한, 이 영화를 챙겨 본 김태훈 씨(그는 자신이 "이무영 감독과 절친한 사이"라고 주장한다)의 표현대로 "이무영 감독 영화 가운데 가장 낫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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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마리와 나>는 제목에서 암시하듯 세 인물이 주축이다. 약에 절어 사는 전직 록커인 아버지 태수(김상중)와 록커를 꿈꾸는 그의 고교생 아들 건성(김흥수), 그리고 부자 사이에 불쑥 끼어든 괴상하지만, 어쨌든 예쁜 소녀 마리(유인영)와 그녀의 아이가 한 지붕 아래 모여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대마초를 못 끊어 틈만 나면 '빵'에 들어갔다 나오는 태수를 아들 건성은 한심해 하면서도 내심 자랑스러워 한다. 그에게 아버지는 가족은 나몰라라 하는 난봉꾼이되, 그에게 음악성을 물려준 멘토이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여전히 질정 없이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싶어하고, 아들은 철 못든 아버지를 틈만 나면 힐난하다. 10대 미혼모로 설정돼 있는 마리는, 이들 가운데 얹혀 살면서 두 사람을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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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마리와 나 |
언뜻 대안 가족 공동체를 내세운 휴머니즘 드라마로 비쳐지는 스토리다. 아직 스타일을 논할만큼의 필모그래피를 쌓진 못했지만 이무영의 전작들에 비하면 확실히 많이 노골노골해졌다. 허나 이무영이 어딜 가겠나. 그는 이번에도 사회적 통념에 대한 나름의 전복을 시도한다. 태수와 건성의 갈등을 통해 '대충대충 건성건성' 사는 것도 꽤 좋은 삶의 방식이 아니겠냐며 '근면'이라는 미덕에 조소를 보낸다.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타워 팰리스는 바로 그 '근면'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축된 물질적 욕망의 바벨탑처럼 보이는데, 현실의 관계 안에서 바벨탑의 근면한 거주민들은 게으른 패자들에 대한 폭력적 타자화에 익숙해 있다. 건성건성의 철학을 실천에 옮기는 '자발적 루저' 태수는 바로 그 바벨탑에 보내는 조소이자 저항의 아이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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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마리와 나 |
게다가 대마초, 즉 마리화나를 피우는 예술가들에 대한 진정한 동조의 시선까지 얹고 있으니, <아버지와 마리와 나>라는 제목은 <아버지와 마리화나>로 바꿔도 무방할 것이다(실제로 그런 연상 효과를 노리고 제목을 지은 것 같다). 물론 그렇게 하면 대마초 흡연을 현행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당연히 여러 말들이 나오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김부선과 전인권의 대마초 피울 권리를 옹호하는 나로선, 이무영의 문제 제기에 동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무영은 세상이 쉽게 타자화하는 세 사람의 인간 군상을 통해, 그들 모두 각자의 삶의 주인이며, 그러므로 그들이 택한 삶의 방식은 존중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것은 소수자에 대한 포용의 메시지임과 동시에 예술적 치기의 근원을 상기하려는 감독의 읊조림처럼 들린다. 마구 들이대지 않고 조용히 응시하는 이무영의 세 번째 작품은, 살짝 심심하고 때론 작위적인 구석이 거슬리긴 하지만, 꽤 경청할만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6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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