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만 감독의 데뷔작 <걸 스카우트>가 개봉 첫 주말 전국 16만 2천여 명을 모으는 수준에 그쳤다. 성급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흥행 실패'라는 딱지를 붙여도 무리는 아닐 것 같다. 개인적으로 <걸 스카우트>가 이 정도 흥행에 머무는 것이 아깝다. 한국 사회의 양극화의 풍경을 장르적 틀 안에 담아내면서도 꽤 짜릿한 전복의 쾌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나는 이 영화가 비교적 잘빠진 대중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중 관객은 이 영화를 외면했다. 크게 세가지 이유가 작용했다고 본다. 우선, 홍보 마케팅 면에서 <걸 스카우트>는 실패했다. 노란색 바탕에 네 명의 여주인공이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을 나열한 포스터부터 왠지 '싼티'난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내 주변에서도 <걸 스카우트>는 왠지 '안땡긴다'고 말씀하는 분들이 많았다. 조금 더 도발적이고도 직설적인, 그러면서도 시의적인 연결 고리를 끌어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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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스카우트 |
둘째로, 배급 타이밍이 썩 좋지 않았다. 하필 <쿵푸 팬더>와 <섹스 앤 더 시티> 등 할리우드 기대작들이 한꺼번에 간판을 내거는 시점에 정면 대결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5월 내내 이어진 지지부진한 한국영화의 행렬 속에서 이 영화 <걸 스카우트>가 크게 차별화된 국면 전환의 시그널로 인식되지 못했다는 것도 문제다. 그만큼 분위기가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물론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내용 면에서 대규모 흥행을 견인하기엔 살짝 무리였다는 생각도 든다. 곗돈 떼인 서민 아줌마들의 악다구니는 처절하게 답답한 우리의 현실을 상기시킨다. 영화는 그들의 처절함을 해학적 액션 활극으로 수렴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만, 결정적으로, <걸 스카우트>의 파워풀 아줌마들은 <우생순>처럼 코트 위에서 우정과 연대를 나누는 '멋진' 아줌마들이 아니다. 토끼 눈알 붙이며 살다가, 머리 끄댕이 잡으러 나선 생활형 아줌마들은, 아무리 영화적으로 포장했다지만, 절로 한숨 나오게 만드는 리얼 캐릭터들이다. 현실이 잔인해질수록, 관객들은 그 잔인한 현실을 잊게 해줄 환상 체험을 갈망하기 마련이다. 사실, 영화는 그런 환상 체험을 가장 값싸고도 편리하게 제공해온 매체가 아니던가. 똑같이 여성 4인방을 내세우긴 했으나, 전혀 차원이 다른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라. <걸 스카우트>의 질퍽질퍽한 봉촌 3동 아줌마들은 감히 꿈도 못꿀, 명품 패션과 가끔 사랑, 그리고 자주 쾌락에 목숨 거는 뉴요커들의 '쿨'하고 '럭셔리'한 일상이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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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앤 더 시티 |
물론 그들도 지지고 볶는다. 그러나 그들이 상처 받는 것은 현실의 구질구질함 때문이 아니라 넘치는 감정과 더 넘쳐나는 재화 속에서, 사랑과 명품, 욕망과 가치를 혼동하거나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신발장 하나면 족한다"던 캐리가 빅의 뜻엔 아랑곳 없이 명품 결혼식을 향해 치달아 가면서도, "당신이 '나'와 결혼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열증적 모순어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 거창하게 말해,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좌절의 크기만큼 물질적 상승 욕망도 커지기 마련이다. 그런 면에서 <걸 스카우트>와 <섹스 앤 더 시티>는 정 반대의 지점에 놓여 있는 셈이다. 만약 캐리와 사만다, 샬롯과 미란다가 봉촌 3동 아줌마들을 만나게 된다면, "어머,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세상에 있구나." 대경실색할 게 뻔하다. 그리고 봉촌 3동 아줌마와 같은 이들을 가까이에 둔 우리들은 저 뉴욕 거리를 나풀거리며 걷는 언니들의 호사스러운 고민과 거침 없는 쾌락 추구형 일상을 침 흘리며 바라본다. 하여 흥행 면에서도 <걸 스카우트>는 안 되고, <섹스 앤 더 시티>는 됐다고 분석한다면 너무 멀리 나아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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