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저녁, 수십 만명의 시민이 촛불을 들고 나선 행렬은 광화문에서 남대문까지 길게 이어졌다. 그러나 '물샐 틈' 없이 봉쇄된 경찰의 컨테이너와 버스벽 앞에서 거리 행진은 멈춰야 했다. 시민들은 스프레이와 플래카드를 동원해 컨테이너 박스에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를 조롱했고, 녹슨 바리케이드는 곧 '유희의 도구'로 전락했다.
그때 어디선가 스티로폼 박스들이 날라져 왔다. '컨테이너를 넘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자극한 그 스티로폼은 그러나 비폭력을 외치는 참가자 앞에서 되돌아가야 했다. 참가자들이 못 올라오도록 경찰이 발라놓은 그리스에 대한 안전사고의 우려도 컸다.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이를 지켜본 인권단체들이 답답함에 "민주주의는 차벽을 넘는다"라는 주제로 자유 발언대를 벌인 시각은 오후 10시 경.
토론은 점점 커졌다. '그냥 이대로 집회를 즐기자', '스티로폼으로 높은 연단을 쌓자', '컨테이너를 넘어가자' 등 각종 의견이 나왔다. 마이크를 통해서만 얘기가 터져나온 건 아니었다. '비폭력'과 '민주주의의 계단을 만들자' 등 서로 상반된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도 있었다.
11일 오전 1시, 마침내 스티로폼 연단이 만들어졌고 토론이 이어졌다. 오전 3시, 한 참가자가 스티로폼으로 만든 계단을 타고 컨테이너 위에 오르자 환호성과 비난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오전 5시. '깃발만 올리자'로 의견이 수렴됐고, 1시간 가량의 '깃발 퍼포먼스'가 진행된 뒤 집회는 끝났다.
촛불의 답답함, 컨테이너 앞에서 폭발하다
많은 언론은 일제히 이 사건을 '성숙된 민주주의, 비폭력 집회 문화 정착'이라고 보도했다. 많은 이들이 긴 토론과 사고 없이 끝난 집회에 '감격'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논란은 사실 간단치 않다. 그것은 이날 컨테이너와 스티로폼 논쟁이 단순히 이날 하루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40일 넘게 이어지는 촛불 집회의 방식을 놓고 참가자들의 토론은 점차 격렬해지고 있다.
폭력·비폭력 논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경찰이 거리 행진을 벌이던 시민들을 연행하면서부터였다. 특히 청와대로 행진 방향을 돌린 지난 5월 31일, 물대포와 방패를 동원한 폭력 진압이 이뤄졌고, 이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놓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논란이 불붙었다.
'평화'의 이미지로 정착한 촛불 집회를 공권력과 일부 언론이 불법이라고 몰아세울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찰과 마찰은 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경찰이 버스를 동원해 청와대 주변에 철옹성을 쌓아올리는 것 자체를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는 폭력이며 이에 저항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모래주머니를 이용해 차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10일 경찰이 설치한 3~4층 높이의 컨테이너는 그런 의미에서 논쟁의 절정에 있었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5시까지 '끝장 토론'이 벌어진 것도 집회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지켜보던 이들의 답답함의 표출이었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촛불 집회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안 된다" vs "질긴 놈이 이긴다"
당시 현장에서 토론에 참여했던 인권단체연석회의 박진 활동가는 "컨테이너가 민주주의적 저항을 가로막고 있는데, 오히려 누리꾼이 평화 시위를 해야 한다면서 시민의 분노를 가로막았다"며 "그렇게 하면 언제까지고 심리적 장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게 비폭력이 아니라 폭력에 저항하는 게 비폭력이라는 의견을 제안한 것"이라며 "현장에 있던 스티로폼 박스를 이용해 연단 퍼포먼스를 해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도 "허가된 공간에서만 주장할 수 있고, 그걸 넘으려 하면 폭력의 딱지를 붙여 가로막는다면 200~300만 명이 모여도 마찬가지"라며 "이렇게는 절대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폭력을 외치는) 선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오히려 의도치 않게 이 정부를 변호하고 지키게 된다"며 "청와대를 가겠다는 게 공격하자는 얘기는 아니지 않나. 열기가 이 안에 갇혀서, 우리만의 싸움으로 끝나선 안된다"고 말했다.
반대의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집회 현장에서 아코디언 공연을 하던 한 음악인은 "주변인 중에 폭력에 상처를 받고 돌아간 사람도 많다"며 "많은 이들이 그런 마음으로 나왔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축제 같은 집회라면 계속 나올 것"이라며 "프랑스 68혁명 때에도 집회장 주변에서 재즈 공연이 펼쳐졌다고 한다. 음악인은 음악으로 저항하는 거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민도 "우리가 더 질기다. 질긴 놈이 이긴다"를 연호하며 촛불 집회로도 충분히 시민들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즐거운 촛불은 '비폭력'과 '정책적 성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
결국 깃발 흔들기로 마무리된 지난 10일 집회가 그 자체로 성과를 남긴 건 부인할 수 없다. 이 같은 토론 문화가 생활 속에서 활성화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도 하나의 과제로 남게 됐다. 박진 활동가는 "올라간 게 뭐 그리 중요하겠나. 컨테이너 자체가 굉장한 폭력이라는걸 시민들이 보여줬던 것 자체가 갈등의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물이었다. 민주주의 토론을 거칠지만 제대로 실현한 장이었다"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 달째 촛불 집회가 계속되는 데도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불가'를 고집하는 정부는 변함없고, 촛불을 든 시민의 답답함은 목까지 차 있다. 한 참가자는 "주위 사람들이 '너 촛불 집회 가서 대체 하는 게 뭐냐'라고 물어볼 때마다 속상하다"고 토로했다. 촛불 집회가 처음으로 거리 행진으로 번진 것도 '허용'된 공간에서 '허용'된 형태로 주장하다가는 달라지는 게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즐거운 축제 같은 촛불 집회를 부정적으로 보는 참가자는 거의 없다. 그러나 그 긍정의 언어를 정부가 도통 못 알아듣는다는 데에서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다. 촛불 집회 참가자를 '친북 좌파, 주사파'라고 칭한 이명박 대통령과 차벽을 컨테이너로 진화시킨 경찰은 시민들에게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을 안겨줬다. '청와대로 가느냐 마느냐'는 논쟁이 소모적인데도 끝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어쩌면 정부가 쇠고기 문제를 끝없이 '고민'하고 있는 점이나, 지난 11일 민영화와 대운하를 후순위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촛불의 힘을 의식한 정부의 성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미국산 쇠고기 재협상 불가 방침은 여전히 그대로이고, 시민들이 촛불을 내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집회 때마다 새로운 참가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촛불이 당분간 계속될 것임을 예상케 한다.
여기까지 왔듯, 앞으로도 촛불 집회는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보여주며 계속될 수 있을까? 즐거운 촛불은 '비폭력'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정책적 성과도 이뤄낼 수 있을까? '촛불'의 고민은 커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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