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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새벽, 그들은 민주주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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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쟁의 새벽, 그들은 민주주의를 배운다

[6.10 촛불항쟁]정부를 밀어낸 비폭력의 힘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신명이 넘쳐흘렀다. 열정이 터져 나왔다.

광화문 네거리 '광장'은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었다. 노랫가락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옆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축제 속 시민들은 거리의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스님은 징을, 대학생은 노래를

퇴계로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출근을 잊은 직장인과 전공 서적을 덮은 대학생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자유를 만끽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다. 도로 한 가운데서 신명나는 풍물 소리가 넘쳐났다. 징을 잡은 것은 스님이었다. 노동자는 옆에서 꽹과리를 두들겼다. 흥을 못 이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박수를 치며 어깨춤을 췄다.
▲스님이 대중과 어울렸다. 대학생은 넥타이를 맨 선배들과 합류했다. 고교생들도 밤을 잊은 채 거리를 활보했다. 민중이 다시 깨어났다. ⓒ프레시안

인도는 돗자리까지 준비한 아주머니들의 차지였다. 이웃 동네 사람들끼리 온 듯 한 아주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의 미래를 걱정하고 밥투정하는 남편 흉을 봤다.

이명박 정부가 시민들을 두려워하며 쌓은 컨테이너 앞. 컨테이너는 이미 시민들의 차지였다.
▲컨테이너는 시민들의 조롱으로 순식간에 색깔이 바뀌었다. 정부의 '80년대식' 대응을 시민들은 비웃었다. ⓒ프레시안

광화문 한 가운데 새로운 관광 명소가 생긴 듯했다. 정부를 조롱하는 온갖 낙서가 컨테이너에 가득 찼다. 사람들을 삼삼오오 모여 컨테이너를 배경으로 기념사진 촬영을 하느라 바빠보였다. 정부의 모든 행동은 그저 조롱거리에 불과해 보였다.

컨테이너 앞은 대학생들의 차지였다. 기말고사 부담은 잊은 듯했다. 학생들은 민중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대학생들은 컨테이너 앞에서 '즐길' 줄 알았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대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했지만 많은 대학생이 현장을 지키고 있었다. ⓒ프레시안

대학가에서 가장 많이 불리던 '바위처럼'의 가락에 맞춰 학생들이 신나게 춤을 췄다. 한켠에서는 '쥐를 잡자' 놀이가 이어졌다. 학생들은 모꼬지를 나온 듯했다. 학생들 사이를 찹쌀떡 상인이 돌아다녔다.

학교 간 경쟁심도 대단해 보였다. 한 학교에서 학생 혼자 나와 춤을 추자 옆에 있던 학교는 신입생 6명이 한꺼번에 나왔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를 지켜보던 학생 하나는 후배들을 만나러 온 졸업생에게 일어서서 노래할 것을 권유했다.

자동차가 쌩쌩 달리던 도로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신명난 사람들이 자유를 만끽할 따름이었다. 보도블럭에 앉아 다정히 얘기를 나누던 한 연인은 "앞으로 이거(시위) 끝나도 매주 주말마다 여기 개방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축제 속, 우리는 민주주의를 배운다

컨테이너 앞에는 예비군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그 앞에는 '평화의 라인'이라는 종이가 붙은 선이 쳐져 있었다. 한 예비군은 "인화물질이 컨테이너에 묻어 있어 안전을 위해 우리가 선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앞에서는 시민들의 열띤 토론이 두 시간 넘게 이어졌다. 토론에서 결정된 '스티로폼 발언대' 구상은 즉각 실행에 옮겨졌다. ⓒ프레시안

하지만 불만을 가진 사람도 많아보였다. 실제 그 동안 인터넷 공간에서는 예비군의 역할을 두고 끊임없는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현장에서도 평화의 라인을 두고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나는 어차피 오르지도 못할 것을 왜 막냐는 거야. 난 이해를 못하겠어. 내가 자세히 보니까 예비군들이 프락치야. 봐봐. 정부 편을 드는 거나 마찬가지잖아?"

"아니, 여기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래요? 이 사람들이 시민 안전을 지켜주겠다고 나선 거잖아요?"
▲6.10 촛불항쟁의 불꽃은 도로를 수놓았다. 이 불꽃은 어디로 갈까. ⓒ프레시안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도 논쟁이 일어났다. 한 남성은 "나는 끝나지 않은 민주주의를 이룩하려고 나왔어요. 그런데 왜 저 사람들(예비군)이 나를 통제해?"라고 말했다. 다른 여성이 말을 받았다. "인화물질 있어서 위험하다잖아요?"

토론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풀밭 한 가운데에 대학생 열 명 정도가 둘러 앉아 얘기를 나눴다. 이번 사태에 대응한 총학생회의 방식에 대한 비판과 반박이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컨테이너 앞에는 아예 커다란 토론 광장이 펼쳐졌다. 인터넷포털 다음의 '아고라'가 도로 위에 생긴 듯했다. 인권활동가들이 만든 '민주주의는 컨테이너를 넘어선다'는 주제의 토론회였다.

다양한 주제를 놓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눴다. 누군가는 대책회의의 투쟁 방식에 대한 불만을 털어놨다. 이어서 나온 사람은 비폭력의 정의가 무엇인지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예비군이 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조·중·동에 대한 비판도 여과 없이 쏟아졌다. 경찰의 폭력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진지하게 이뤄졌다. 한 사람의 발언이 끝날 때마다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토론 말미에 한 사람이 외쳤다. "오늘 같은 기회는 흔치 않습니다. 언제 또 100만 명이 모입니까? 나도 비폭력을 주장하지만 경직된 비폭력은 정답이 아닙니다. 저 컨테이너 앞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새로운 저항의 방식을 찾읍시다."

그의 말에 여러 사람이 맞장구를 쳤다. '새로운 저항의 방식'에 대한 논의가 즉석에서 벌어졌다.

곧 컨테이너 앞에 스티로폼 계단을 쌓자는 결론이 났다. 오전 1시, 스티로폼 발언대가 컨테이너 박스 앞에 오르고 있다. 토론으로 결정된 방식이다.

11일 새벽 광화문 네거리. 소란스러운 듯 보여도, 무질서하게 느껴져도 시민들은 컨테이너 앞에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를 배우고 소통하는 법을 익히고 있었다. 컨테이너 장벽을 쌓은 정부는 배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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