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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10 항쟁은 우리가 만들자"

[현장] "일손 멈추고 동맹휴업해 다시 모입시다"

이날도 어김없이 촛불들이 일어섰다.

8일 저녁 8시 30분 경, '72시간 릴레이 촛불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서울 도심을 장악했다. 경찰은 여지없이 세종로를 꽁꽁 봉쇄했지만 시민들은 청와대로 향하는 발걸음을 이틀 뒤에 있을 '100만 국민행동'까지 잠시 미뤄뒀다.

비에 젖어 축축한 서울광장에서 간단한 정리집회를 마치고 일어선 시민들이 남대문을, 명동을, 청계천과 을지로를 돌았다. 이들이 다시 서울광장으로 결집하는 동안 인파는 3만으로 불어났다. 그야말로 눈덩이다.
▲ 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인 시민들. 저녁까지 빗방울이 그치지 않는 날씨였지만 사람들은 어김없이 촛불을 들고, 비에 젖은 풀밭에 모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와 '이명박은 물러나라'을 외쳤다. ⓒ뉴시스

"우리가 얻은 건 승리의 확신"

이들이 거리 행진을 시작하며 낭독한 결의문은 이날 행진의 목적이 어디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72시간 동안 우리에겐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명박 심판의 목소리를 더욱 높였고 자율규제 꼼수에도, 주사파 배후라는 거짓도 촛불을 끌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수십만의 대행진 과정에서 국민들의 항의를 보였고 즐거운 축제의 장을 보였다. 만만공동회를 통해 국민 의견 수렴과정을 거치면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보였다.

이제 우리는 오늘로서 72시간 릴레이를 마치지만 국민들에게 참여를 호소한다. 노동자들은 일손을 멈추고 학생들은 동맹휴업을, 상인들은 저녁 장사를 철시하고 시청앞으로 모이자. 차량을 가진 시민들은 낮 12시, 오후 6시에 일제히 경적을 울리자. 9일에서 10일까지 청와대, 한나라당, 조중동에 항의글을 보내자. 모바일 폰을 통해 6.10 참가 메시지를 친구들에게 보내자.

이명박 대통령에게 경고한다. 잘 들어라. 국민을 이기는 대통령은 없다. 국민을 상대로 싸우는 대통령은 절대 지지받을 수 없다. 6월10일 100만 촛불이 켜질 것이다. 그때까지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 대책위가 제시한 7대 조건을 충족시키는 재협상을 선언하라. 그것만이 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유일한 길이다. 국민들의 정당한 저항권을 폭력으로 막는다면 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을 명심하라.

이명박 대통령의 눈과 귀가 번쩍 뜨일 때까지 100만 개의 촛불을 준비해 6월 10일 7시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6월10일에 다시 봅시다"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흥겨운 '헌법 1조'에는 다 같이 어깨를 들썩였다. 친구, 연인, 아이의 손을 잡고 산책하듯 도로로 나선 시민들. 그러나 그들은 "이명박은 물러나라", "유월십일 시청으로", "국민들이 승리한다" 등 네 박자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일요일 저녁 한산한 거리였지만, 거리의 행인들도 걸음을 멈추고 묵묵히 행진을 지켜보았다.

참가자들을 이끄는 마이크에선 "2008년 6.10 항쟁은 우리가 만들자", "우리가 2008년 6.10 항쟁의 주역이다"는 발언이 계속됐다.
▲ 오후 7시까지 이어진 72시간 국민행동. 오후 7시 촛불집회를 앞둔 광장에서는 군데군데 함께 온 시민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띠었다. 또 국민대책회의가 마련한 주무대 이외에 진보신당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한 '칼라TV' 토론회, 포털사이트 '다음' 이명박 탄핵 국민운동본부의 자유발언대 등에도 수십~수백 명의 청중이 몰렸다. ⓒ프레시안

'100만 항쟁'에 대한 결의는 연단 아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72시간 동안 텐트를 치고 꼬박 참여했다는 서명국 씨(40). 그는 버너, 난로, 매트리스까지 준비한 '촛불쟁이'다. 그는 "나흘 동안 큰 앞마당이 있는 집에서 일상을 보낸 것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서 씨는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정부는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계속 이런 식으로 하면 5년 내내 시민들의 촛불이 계속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3 두 남학생은 "어디에 가도 도무지 살 수 없을 것 같은 답답한 마음에 나왔다"고 말했다. 그 중 한 학생은 "물가가 점점 올라 학생들이 사먹을 수 있는 것도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 광우병도 문제지만 수퍼마켓을 가도 살 수 있는 게 없다고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고3이 물가를 걱정하게 된 나라. 신영호 씨(45)와 박미자 씨(43) 부부가 느끼는 위기는 더하면 더했다. 신 씨는 "쇠고기도 중요하지만 공기업 민영화가 큰 일"이라며 "쇠고기는 선택할 가능성이라도 있지만, 전기, 수도, 가스 민영화는 선택권도 없이 닥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신 씨는 "정부가 계속 이렇게 한다면 우리 딸이 6월에 1학기를 마칠 때 대통령도 같이 1학기까지만 하고 임기를 마치게 될 것"이라며 "시민의 저항운동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말마다 꾸준히 촛불집회에 참석해 온 최은경 씨(37)는 "배후 얘기를 할 때 나는 내 친구들을 설득해서 나온 나를 잡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운을 뗐다. 최 씨는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나왔겠나. 누구나 같은 생각"이라며 "지금 정부의 발표는 하나의 쇼 같다.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내용은 없고 보여주기 위한 '생 쇼'를 하는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꼬집었다.

그는 10일 100만 국민행동의 성공 여부에 대해 "당연히 많이 모여야 하지 않겠나"라며 "직장에서 밤 11시에 끝나더라도 달려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채감' 때문에 나왔다는 이도 있었다. 하강욱 씨(34)는 "집에서 뉴스를 보면 경찰과 대치한 맨 앞의 시민들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그들에게 힘을 실어주려 계속 나온다"고 했다. 그는 "경찰의 강경진압이 무섭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보태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앞선다"고 말했다.

대열에 막혀 정체돼 있던 차량 중에는 피켓을 차창에 붙여놓고, 촛불을 함께 밝힌 버스, 트럭 운전기사들도 눈에 띠었다. 또 '5박자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찬성한다는 표시를 보내는 차량도 많았다.
▲ 거리 행진에 나선 시민, 그리고 이들의 행진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차량 운전기사 모두 같이 촛불을 켰다. 시민들은 촛불을 켠 차량 앞에서 환호를 보냈고, 이에 운전사는 '5박자 경적'으로 화답했다. ⓒ프레시안

한 시간 가량 서울의 도심 곳곳을 누비며 '홍보전'을 수행한 시민들은 밤 10시 경 서울광장으로 다시 모여 72시간의 대장정을 평화롭게 마무리했다. 세종로 앞 대로를 아예 봉쇄해버린 경찰 버스 앞으로 다가간 시민들도 있었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일찍 자리를 떴다. 이들은 헤어지며 생면부지의 서로에게 이렇게 다짐했다.

"수고 많았습니다. 6월 10일에 꼭 다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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