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후 2시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 앞. 발언에 나선 울산의대 조홍준 교수는 "21년 전인 1987년, 호헌 철폐를 외치던 생각이 난다"며 이 같이 말했다.
흰 가운을 입고 모여있던 150여 명의 의사, 한의사, 약사, 치과의사, 간호사를 비롯해 보건의료계열 대학생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손에는 5222명의 보건의료인이 서명한 '제2의 6월 항쟁을 위한 시국선언문'과 손피켓이 들려 있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 전면 재협상과 의료민영화 정책 즉각 중단을 요구하는 선언문이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21년 전처럼 거리로 행진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 역시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청와대 진입로를 막고 있던 경찰은 촛불집회가 예정된 서울시청으로 향하는 행진마저 "무조건 안된다"며 가로막았다. 인도 행진마저 가로막힌 의료인들은 "평화 행진 보장하라", "불법 경찰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연신 외쳤다.
오는 10일, 6월항쟁 21주기에 맞춰 열리는 촛불집회 '100만 국민행동'을 이틀 앞둔 날이었다.
"소나기는 피해도 국민의 분노를 피할 순 없다"
이날 발언에 나선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는 "어제 이명박 대통령이 '소나기는 피하면 된다'라고 말하면서 우이독경에 새로운 단어를 하나 추가했다. 국민이 한달 넘게 거리에서 외친 데에 대한 답이 이것이었다"고 질타했다.
이어 황상익 교수는 "이 대통령은 몇 달전 국민을 섬기겠다고 했다. 그것이 진심일까 했었다. 대통령은 어제 처음으로 그리고 앞으로도 듣지 못할 말을 했는데 그게 진심이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국민이 모두 먹지 않겠다는 쇠고기를 먹이겠다는 이 대통령과 깨끗하게 헤어지자"며 "소나기는 피할 수 있어도 국민의 분노와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홍준 교수도 "정부는 의료 민영화를 안 한다고 하지만 민영의료보험회사에 국민의 건강 정보를 주려하고 있고 또 영리 병원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 교수는 "이제 의료인이 국민의 건강이 아니고 투자자의 이윤을 위해 일해야 할 때가 다가온다. 투자자를 위한 병원이 지어지면, 질적으로 달라질 것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식코>는 우리나라에서 현실이 될 가능성 충분히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이번 사태를 통해서 민주주의가 국민의 건강권을 유지하는 데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이제 의료인들도 건강권 투쟁과 민주주의를 얻고자 하는 투쟁이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고 투쟁에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명 지키겠다는 국민 짓밟는 정부가 민주 정부인가"
이들은 선언문에서 "지금 국민은 거리에 나와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거대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며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민심을 외면하고 국민의 외침을 경찰의 폭력과 군화발로 짓밟고 있으며,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전면개방과 의료민영화 정책을 강행하려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유럽이나 일본 등 광우병 발생국가들에서 시행하는 동물사료 금지, 도축소 또는 위험도축소 전수검사에 비교해 볼 때 미국소가 광우병 위험이 있다는 것은 국제적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또 "국민건강보험은 1987년 6월 항쟁에서 국민들이 흘린 피와 거리에서의 투쟁으로 얻어낸 것"이라며 "그러나 건강보험을 붕괴시킬 대형보험회사들이 실손형 보험상품 허용, 공사보험의 정보공유라는 이름으로 개인질병정보를 보험기업에 넘겨주겠다는 비상식적 정책이 이명박 정부 아래 추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겠다고 나온 국민을 폭력으로 짓밟는 정부가 민주정부인가"라며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을 무효화하고 전면 재협상에 나설 것과 의료 산업화, 의료민영화정책을 중단할 때까지 국민과 함께 투쟁한다"고 선언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이들은 시청 앞까지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 행진을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되지 않은 행진"이라는 이유로 차도는 물론 인도까지 가로막았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우석균 실장은 "분명 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아무 이유없이 행진을 불허했다"며 "경찰이 인도까지 막을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항의했다. 현장에 있던 한 경찰은 "왜 행진을 막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가만히 있으라"며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국민의 건강, 생명 위협하는 진압 중단해야"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연일 계속되는 촛불 집회 현장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 소속 의료인들이 참석해 경찰 진압 과정의 위험성을 지적했다. 이들은 "20m 이내 물대포 발사에 타박상을 입고 고막이 손실된 환자가 많았으며, 화재 진압에 쓰는 소화기를 직접 분사해 피해를 입은 시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특히 할론소화기의 경우 점막을 자극해 호흡계에 곤란을 일으켜 천식 증세가 있던 시민이 병원에 실려갔다고 증언했다. 또 동영상이 공개돼 사회적 파장을 불러 일으켰던 '군홧발' 진압에 대해서도 "이 같은 폭행은 뇌진탕 등 시민이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는 충격을 준다"며 "시민의 건강과 생명에 위협을 주는 진압 방식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