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시간 연속 집회 이틀째인 6일,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경복궁 방향으로 향하는 길은 하루 종일 전경 차량으로 물 샐 틈 없이 가로막혀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흥겨운 분위기는 이날 하루 내내 이어졌다. 이날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 근처는 신명이 넘치는 장터였다. 곳곳에서 음악 공연이 열렸고, 만화가들은 캐리커처를 그렸다. 또 광장 한 켠에서는 장사꾼들이 나와 우의를 팔고 있었다. 김밥을 파는 상인들도 행인들을 향해 "김밥이 한 줄에 2000원"이라고 외쳐댔다.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아이들은 두려운 기색 없이 경찰 차량 사이를 돌아다니며 낙서를 하고 차량에 쓰인 글들을 읽어 내렸다. 소풍 나온 듯 미리 김밥을 싸들고 나온 가족도 눈에 띄었다.
시청 광장 한 복판에 있는 북파공작원 출신자 모임과 길목을 틀어막은 경찰만이 '전투 상황'이었다.
홍대 앞 인디밴드도 나섰다. 문화연대와 홍대 라이브 클럽 '빵', 마포FM이 주도해 인디밴드 14팀이 모였다.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자, 서울 광장 근처에 있던 수천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강렬한 록 음악 리듬에 맞춰 할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분위기가 달아올랐을 즈음, 신명을 주체하지 못한 한 시민이 무대 앞에 나가 팔굽혀펴기를 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행사 기획에 참여한 문화연대 송수연 활동가는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거의 매일 열린 촛불문화제가 열렸지만, 기억에 남는 무대 공연이 드물어서 아쉬웠다"라며 거리 공연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공연을 준비하고 있던 '치즈스테레오'의 보컬 이동훈 씨는 "우리가 거창한 생각을 갖고 나온 것은 아니다"며 "어린 학생들도 나온 역사의 현장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해야 나중에 내 자식에게도 부끄럽지 않겠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만화가들도 뭉쳤다. 공연이 이어지는 무대 바로 옆에는 만화가들이 무료로 그려주는 캐리커처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시사만화가 정재훈 씨(우리만화연대 사무국장)는 "지친 시민들에게 웃음을 주고 싶어서 캐리커처와 무료 페이스 페인팅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지난 1일 새벽 만화가 박권웅 씨가 경찰의 집단 구타로 큰 부상을 입은 것에 대한 공분이 만화가들 사이에 퍼져 있다. 만화가들은 이날 오후 경찰의 강경진압을 규탄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데 이어, 오는 9일에는 현재 시국을 그린 만화 작품을 실사출력해 시청앞 광장에 내걸 계획이다.
청계광장에서도 공연이 이어졌다. 밴드 'The Moon'의 보컬 정문식 씨는 간주 중 "따라해 볼까요. 이명박은 물러가라"고 외쳐 큰 호응을 받았다.
강렬한 리듬의 곡이 끝난 후, 정 씨는 "방금 공연한 곡 제목이 '터닝포인트'다. 이번 72시간 집중 집회가 지금까지의 촛불 집회를 바꾸는 터닝포인트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하루 전부터 서울시청 앞 광장을 차지하고 있던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북파공작원 출신자 모임)은 이날 저녁 모두 철수했다.
전체댓글 0